ADVERTISEMENT

"與 눈치본 김진욱의 자충수"…공수처 '고발사주' 수사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체포영장·구속영장이 연이어 기각되면서 ‘고발 사주 의혹’ 수사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법조계에선 “여권의 ‘빨리빨리 강제수사하라’는 주문에 소환 조사 없이 체포·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전례 없는 시도를 한 김진욱 공수처장의 자충수”란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영장을 기각한 법원은 ‘범죄 혐의 소명 부족’까지 지적했다. 출범부터 물음표가 붙은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또 체포영장 기각 이후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대해 “인권 수사를 강조한 공수처가 오히려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27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출근하고 있다. '고발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공수처가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는 타격을 받게 됐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27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출근하고 있다. '고발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공수처가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는 타격을 받게 됐다. 뉴스1

‘손준성 신병 확보 → 윗선 수사’ 계획 차질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 수사와 관련해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또 손 검사 및 김웅 국민의힘 의원 등에 대한 소환 일정도 조율 중이다. 손 검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검사와 수사관 등에게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근거자료 수집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또 고발장을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 측에 전달한 혐의도 있다.

하지만 손 검사의 신병을 확보한 이후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공수처의 계획에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영장 기각 과정에서 공수처의 수사 미비가 드러났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성명불상자에게 문제의 고발장 작성을 시켰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했지만 작성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못했다. 또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압수수색을 통해 고발장 원본 등의 물증은 확보하진 못했다고 한다.

이에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공수처의 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공수처가 손 검사의 혐의에 대해 구속이 필요할 만큼 소명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7일 오전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대기하던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7일 오전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대기하던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위원장, “법조인으로서 적절하게 진행된 것 아냐”

‘절차’ 문제도 공수처에 뼈아픈 대목이다.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를 자임한 것과 어울리지 않는 행보라는 비판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해 지난 20일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다. 이후 사흘만인 23일 손 검사에 대한 조사도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는 결국 체포·구속 영장이 잇달아 기각되는 전례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법조인 출신인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체포 영장이 기각되고,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라는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별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법조인으로서 찬성할 만한, 적절하게 진행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손 검사의 수사에 대한 비협조적 태도 등을 영장 청구 이유로 들었지만, 수사 편의를 위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속영장은 절대 수사의 편의를 위해 청구해서는 안 된다”라며 공수처의 행태를 꼬집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전날 성명을 통해 “피의자가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인신을 구속하는 영장을 거듭 청구해 (공수처가)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23일 청구한 뒤 25일 오전 구인영장이 발부됐으나 언론에 알려지기 직전인 25일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손 검사 측 변호인에게 영장 청구 및 구인영장 발부 사실을 통보한 것을 두고도 적절치 못한 처사라는 시각이 있다. 손 검사 측 변호인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26일 오전 공수처 모 검사가 손 검사에 대한 구인장을 집행하며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바로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팀의 방침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상부 지침으로 늦게 통보하였다’거나 ‘미안하다’와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故 김영삼 대통령 묘역을참배를 마친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故 김영삼 대통령 묘역을참배를 마친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공수처 강조한 ‘선진 수사’와 동떨어져”

공수처를 둘러싼 정치적 편향성 논란은 더욱 커졌다. 고발사주 의혹 수사의 피의자이면서 국민의힘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사법부가 공수처의 ‘속 보이는 정치공작’에 제동을 건 것”이라며 “공수처가 아니라 공작처”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출일(다음달 5일)이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실 수사 및 무리한 영장 청구 등과 같은 비판에 직면한 만큼 여권이 고발사주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하는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가 쉽지 않게 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까지 공수처의 행보를 보면 초보 수사 기관으로서의 한계만 드러내고 공수처가 강조한 ‘선진 수사’와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식의 행태가 이어지면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더 커질뿐 아니라 향후 공수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