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원자재 대란인데…文정부서 해외 자원개발 예산 3분의 1토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각국이 원자재 확보 경쟁에 뛰어들면서 국제유가를 비롯한 광물 가격이 치솟고 있지만, 한국은 거꾸로 발을 빼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해외 자원개발 지원 예산은 출범 초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들어 정부가 민간 기업의 해외 자원개발에 지원한 예산은 한 푼도 없다. 정부가 자원 공기업의 재무 개선을 이유로 해외 광산을 서둘러 매각하고 있는 가운데, 민간 기업이 자원개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민간 기업의 해외 자원개발 융자지원 예산으로 349억원을 편성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개발 비리 여파로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던 2016년을 제외하고 보면 역대 가장 적은 돈이다.

2017년 1000억→2021년 349억 

문재인 정부의 해외 자원개발 지원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의 해외 자원개발 지원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동안의 해외 자원개발 지원금 예산 편성액을 보면 현 정부의 자원개발 정책 방향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산업부는 2017년 관련 예산으로 1000억원을 편성했다. 이후 2018년에는 700억원으로 삭감했고, 2019년에는 절반 수준인 367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369억원으로 전년보다 2억원 늘긴 했지만, 올해는 349억원으로 20억원이 감소했다.

현재의 해외 자원개발 융자 제도는 2016년 전까지 ‘성공불융자’라는 이름으로 한 해에 4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편성되기도 했다. 성공불융자는 전략적 가치가 높지만 위험이 큰 사업에 민간 기업이 진출해 성공하면 정부가 융자 원리금에 특별 부담금까지 받고, 사업에 실패하면 융자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정부가 올해 편성한 349억원 중 1~9월에 실제 집행한 금액은 ‘0원’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먼저 지출하고 추후에 융자금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현재 신청 현황을 보면 올해 짠 예산은 모두 집행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올해와는 달리 지난 4년 동안 해외 자원개발 융자 예산은 매년 불용액이 발생했다. 정부 지원금이 다 쓰이지 못했다는 건 해외 자원개발에 민간 기업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켈·리튬 등의 광물 자원이 배터리 등 주력 산업의 핵심 소재로 수요가 늘고 있고, 석유·가스 가격도 꾸준히 오르고 있는데도 정부 지원금을 타서 사업을 벌이는 기업이 적다는 이야기다.

원자재 가격은 급등 

광물종합지수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광물종합지수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최근에는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격한 오름세를 보이면서 해외 광산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유연탄·철·동·희토류·코발트 등 산업·전략적으로 중요한 광물 15종의 가격 변동을 지수화한 광물종합지수(2016년 1월 평균=1000)는 이달 18일 3086.64로 최고치를 찍었다.

경기 상황에 민감한 구리(동)의 국제 가격도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 기준 26일(현지시간) t당 9988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평균 가격보다 61.6% 올랐다. 4차 산업의 핵심 광물로 꼽히는 니켈 가격은 전년 평균 대비 48.6%, 망간은 112.9%, 코발트는 78.9% 상승했다. 국제유가(서부텍사스유)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배럴당 84.65달러에 거래되며 7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주요 광물 가격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주요 광물 가격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민간 기업이 해외 자원개발에 소극적인 것은 정부 정책의 결과다. 업계 관계자는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현지 당국은 한국의 민간 개발기업과 자원 공기업이 함께 들어오기를 바라는데, 정부가 공기업의 해외 자원개발을 끊다시피 해 민간도 덩달아 진출이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투명한 절차 없이 자원개발을 밀어붙인 결과로 공기업의 재무 위험이 급증한 뒤부터 해외 자원개발과 자원외교는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났다.

文정부서 해외 자산 13개 매각 

자원 공기업은 더 이상의 재무 악화를 막기 위해 주요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해광업공단은 현 정부 들어 13개의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매각(일부 매각 포함)했다.

대표적으로 한국석유공사는 2009년 7억 달러(약 8300억원)에 사들인 페루 석유회사 ‘사비아 페루’를 올해 236만 달러(약 28억원)에 매각했다.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은 지난 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경영 악화에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실적도 차츰 개선해가고 있고 자구 노력도 계속하겠지만, 정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당시 한국광물자원공사)이 2016년 매각한 페루 마르코나 광산의 건설 전 모습. 중앙포토

한국광해광업공단(당시 한국광물자원공사)이 2016년 매각한 페루 마르코나 광산의 건설 전 모습. 중앙포토

지난달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한국광해관리공단이 통합해 출범한 한국광해광업공단은 광물공사가 보유했던 호주 와이옹 유연탄 광산과 멕시코 볼레오 구리 광산 등 모든 해외 자산의 매각을 추진하는 중이다. 또 앞으로 직접적인 해외 자원개발에 나서지 않을 계획이다.

공기업 등 공공 부문의 해외 자원개발 역량이 한계를 맞이한 상황에서 민간의 자원개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해외 자원개발 공기업의 자원 확보 전략은 단순 물량 위주의 성과지향적 투자에 치우쳤다”며 “시장 원리에 덜 민감한 공기업 특성상 방만한 투자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자원개발 체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원개발 전문가인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해외 자원개발은 ‘안정적인 자원 확보’를 넘어 ‘비축’의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필수 물자를 국내에 비축해 놓는 것처럼, 해외 현지 매장량을 국내에 안정적으로 도입할 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가격이 올랐을 때도 가격 변동성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이어 “자원개발은 현 정부가 씨를 뿌리면 다음 정부가 물을 주고, 그다음 정부에야 수확할 수 있는 장기 정책”이라며 “정부가 해외 광산을 급히 매각할수록 국내 산업계는 원료 확보전에서 밀리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