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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팅옌 초대 주한 中대사 “盧 선견지명…지울수 없는 큰 공 세워”

중앙일보

입력

장팅옌(張庭延·85·사진 왼쪽) 초대 주한 중국 대사(1992~1998년 재임)가 1992년 당시 한국을 방문한 자오퍄오추(趙朴初) 중국불교협회 회장의 청와대 노태우 대통령 접견에 배석하고 있다. [사진 출처 『출사한국(出使韓國)』, 2004, 산둥대출판사]

장팅옌(張庭延·85·사진 왼쪽) 초대 주한 중국 대사(1992~1998년 재임)가 1992년 당시 한국을 방문한 자오퍄오추(趙朴初) 중국불교협회 회장의 청와대 노태우 대통령 접견에 배석하고 있다. [사진 출처 『출사한국(出使韓國)』, 2004, 산둥대출판사]

장팅옌(張庭延·85) 초대 주한 중국 대사(1992~1998년 재임)는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에 “선견지명을 지닌, 지울 수 없는 큰 공을 세운 분”이라며 애도했다.

“한·중 수교, 관계 발전 양호” 높이 평가 #노 전 대통령에 직접 신임장 제정 회고 #2000년 산둥성 노씨 마을 방문 동행도 #회고록선 “中에 특별한 감정 지녔던 분”

1992년 한·중 수교 협상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사 부국장으로 교섭 실무를 담당했던 장팅옌 대사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1992년 9월 15일 노 대통령께 직접 신임장을 제정했다. 이후 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동행하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노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전했다. 장 대사는 “(신임장 제정)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났다. 모두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영원히 잊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중 수교와 관계 발전은 양호하다”고 양국 관계를 높이 평가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선견지명을 지닌, 지울 수 없는 큰 공을 세웠다”고 강조했다.

장팅옌(張庭延·85) 초대 주한 중국 대사(1992~1998년 재임)와 탄징(譚靜) 부부. 장팅옌 대사는 중국 외교부 아주사 부국장, 탄징 여사는 아주사 1등 서기관으로 1992년 한·중 수교 중국측 협상단에 참가했다. [사진 출처 『출사한국(出使韓國)』, 2004, 산둥대출판사]

장팅옌(張庭延·85) 초대 주한 중국 대사(1992~1998년 재임)와 탄징(譚靜) 부부. 장팅옌 대사는 중국 외교부 아주사 부국장, 탄징 여사는 아주사 1등 서기관으로 1992년 한·중 수교 중국측 협상단에 참가했다. [사진 출처 『출사한국(出使韓國)』, 2004, 산둥대출판사]

한·중 수교의 산파역을 맡았던 장 대사는 노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주한 대사를 마친 뒤 출판한 회고록 『출사한국(出使韓國)』에서 “노 대통령은 취임 후 국제·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깊이 살핀 뒤, 한반도의 오랜 평화와 최종적으로 통일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 ‘북방정책’을 제시하고 중국·소련·동구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적었다.

장 대사는 수교에 앞서 고인을 직접 만났다. 장 대사는 또 다른 저서 『지난 추억을 찾아서(往事雜憶)』에서 “처음 노태우 대통령을 만난 것은 한·중 수교 전인 1991년 11월 첸치천(錢其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수행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제3차 장관급 회의에 참석했을 때다. 중국 외교부장의 서울 방문은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파격 접견’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장 대사는 한·중 수교 교섭과정에서 고인의 공을 강조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수교 담판을 매우 중시해, 사안을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직접 묻고 (이상옥) 외교부 장관을 통해 직접 지시했다”고 기록했다. 한·중 수교 협상 당시 상대방이 알아챌 정도로 수교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강한 의욕을 잘 보여준다.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과 부인 김옥숙 여사가 2000년 6월 중국 산둥성의 루좡촌의 노국국군묘(盧國國君墓)를 찾아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제로만보(齊魯晩報)]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과 부인 김옥숙 여사가 2000년 6월 중국 산둥성의 루좡촌의 노국국군묘(盧國國君墓)를 찾아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제로만보(齊魯晩報)]

장 대사는 특히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인 2000년 중국 산둥(山東)의 노씨 시조묘를 찾은 사연을 소개하며 “중국에 특별한 감정을 품었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장 대사는 1998년 이임 직전 노 전 대통령이 마련한 환송연 참석을 위해 연희동 자택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중국을 다시 방문하기를 희망했고, 장 대사는 귀임 후부터 그의 방중 준비에 들어갔다. 장 대사는 우선 산둥성의 도움을 받아 대량의 역사 자료부터 찾았다. 노씨의 원류가 강(姜)씨의 분파임을 확인했다. 강태공(姜太公)의 11대 손인 강희(姜希)가 산둥 루좡(盧庄)에 정착한 뒤 성을 노씨로 바꾼 사실을 확인했다. 다시 1000여 년이 흐른 뒤 노씨의 후예가 한국의 신라 시대에 전라남도 광주로 이주했다는 것도 찾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오른쪽)이 2000년 6월 중국 산둥성의 루좡촌을 찾아 현지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로만보(齊魯晩報)]

노태우 전 대통령(오른쪽)이 2000년 6월 중국 산둥성의 루좡촌을 찾아 현지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로만보(齊魯晩報)]

이후 노 전 대통령의 방중은 2000년 6월 7일 성사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베이징·충칭(重慶)·구이린(桂林)·시안(西安)을 거쳐 6월 16일 산둥성 지난(濟南)에 도착해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노씨 집성촌인 루좡은 산둥성 수도인 지난시에서 멀지 않은 창칭(長淸)구에 위치했다. 특히 창칭진(鎭)은 인구 약 2만 명 가운데 90%가 노씨 성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방문하자 마을 사람들은 길가에 줄지어 서서 성대한 환영 집회를 열었다. 그날 산둥성 정부는 특별히 ‘세계 노씨 원류 연구회 창립 대회’를 열었다. 전 세계 곳곳의 노씨 후예 수백 명을 초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노씨의 후손으로 이곳을 찾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며, 한·중 수교에 공헌한 것이 일생 중 가장 보람찬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은 루좡의 노왕묘를 참배하고 네 그루의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다. 이후 칭다오(靑島)로 가는 길에는 강태공의 사당과 의관을 묻은 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장 대사는 이날 산둥을 찾은 뒤 노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더욱 깊어졌다고 회상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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