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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 애들에게 머리칼 뜯긴 과학자…정재승 바꾼 그 사건 [오밥뉴스]

중앙일보

입력 2021.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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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강연을 하나 했을 뿐인데, 뜻밖의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그의 손을 잡았고, 머리카락을 뜯어갔다. 왜 아이들이 이렇게 하는 걸까. 이 우연한 경험이 그의 10월을 바꿔놨다. 정재승(49) 카이스트(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정재승 카이스트(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가 지난 18일 오후 대전 자택 서재에서 책으로 사람인(人)을 만들어 포즈를 취했다. 김성태 기자

정재승 카이스트(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가 지난 18일 오후 대전 자택 서재에서 책으로 사람인(人)을 만들어 포즈를 취했다. 김성태 기자

17~18년 전 어느 날. 한 지방 소도시 도서관에 강연을 나갔다. 그런데 반응이 뜻밖이었다.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기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왔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300~400명. 그냥 ‘인기’가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알고 보니 아이들이 아무도 과학자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지방에만 가도 아이들이 과학자를 보기 힘들거든요. 과학자를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과학을 꿈꿀 수 있을까요? 너무 충격적이기도 했고 뭉클했어요. 서울만 가면 이곳저곳에 있는 행사인데 지방에 사는 아이들에겐 기회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는 그 길로 ‘10월의 하늘’이라는 행사를 열고 있다. 매년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하루, 전국에 있는 50개 도서관에서 100명의 과학자가 강연 기부를 한다. 올해로 12년째를 맞았다. 그는 “우연히 트위터에 이런 경험이 있다고 글을 올렸더니 300명의 과학자가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2010년에 시작해 지금껏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돈 한 푼도 오가지 않고, 별다른 조직 없이 움직인다. 그는 “기억으로 가입하고 망각으로 탈퇴하는 느슨한 방식”이라고 했다. ‘1년의 364일은 재능을 세상에 청구하되, 하루만 재능 기부를 소풍 가는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강연하자’는 취지에 화답한 사람들로 매년 기적처럼 10월의 마지막 하루, 전국에서 과학자들의 강연이 이뤄진다. 홈페이지(www.octobersky.org)에서 강연 소식을 알 수 있다.

12년째 이어지는 10월의 기적 

정재승 교수는 전국 50개 도서관에서 과학자들이 재능기부를 하는 '10월의 하늘' 행사를 올해도 연다. 올해는 10월 30일 과학자들이 아이들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선다. 김성태 기자

정재승 교수는 전국 50개 도서관에서 과학자들이 재능기부를 하는 '10월의 하늘' 행사를 올해도 연다. 올해는 10월 30일 과학자들이 아이들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선다. 김성태 기자

‘10월의 하늘’이란 이름은 영화에서 따왔다.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탄광촌에 있던 꼬마 아이들이 스푸트니크호 발사를 TV에서 보고 로켓을 쏘아 올리는 꿈을 갖게 되거든요. 매번 실패하지만 나중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로켓사이언티스트가 됩니다. 결국 어린 시절에 우주와 자연,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껴봤는가가 중요한 인류의 문제,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애를 쓰는 일로 이어진다는 얘기잖아요.”

그는 10월의 하늘을 매년 열게 된 이유에 대해 자신이 ‘책을 계속 쓰는 이유’라고도 했다. 과학자들의 삶을 접하게 된 아이들이 과학을 꿈꾸도록 하게 하는 것,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란 얘기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린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외에 아이들을 위한 과학서적을 꾸준히 내고 있다. 지난 2019년 내놓은 아이용『정재승의 인간탐구 보고서』는 최근 7권까지 나왔다. 누적 30부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정재승의 인류탐구 보고서』도 지난 7월 내놨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학문이 ‘인간에 대한 과학’”이라며 “외계인의 시선으로 우리 인간을 한발 떨어져 낯설게 보게 하기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7권. 사진 아울북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7권. 사진 아울북

딸 셋을 둔 그는 부모의 뇌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모의 뇌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부모의 뇌가 아이들에 관해 가장 중요하게 두는 가치는 ‘생존과 안전’으로, 도전을 격려하고 위험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해보라고 조언하는 부모가 드물어요. 때론 부모의 조언이 아이들의 꿈을 제한할 수도 있고요. 카이스트에 입학한 모범생들의 뇌에서 부모들의 뇌를 엿보기도 합니다.”

그는 특히 “말 잘 듣는 아이는 혁신가가 될 수 없다”며 부모의 뇌를 설명했다. 이하는 그와의 일문일답. ※서면과 줌 인터뷰를 기반으로 재구성했다.

부모가 되는 순간, 인간의 뇌는 바뀌나.
우리의 뇌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우선 20~30대에는 인지적 유연성이 좋다. 그러다가 40~50대가 되면서 인지적 유연성(※상황이 바뀌었을 때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와 전략을 바꾸는 능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하면 나의 성공모델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내가 살아왔던 삶의 성공모델이 이후의 세대에게도 적용되리라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부모로서의 뇌는 그럼 어떤가.
부모 뇌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식의 안전, 생존을 추구한다. 그러니까 모든 부모는 자식이 도전하려는 것을 막는다. 왜냐하면 보호와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모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라고 조언하기보다 기존 사회 틀에서 안전한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다. 그러기에 부모 조언의 대부분은 안전에 맞춰있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부모의 말을 듣고 훌륭한 혁신가가 되는 경우는 없다. 부모는 이미 검증된, 잘 짜인 길을 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부모의 말을 착하게 잘 듣는 효자, 효녀는 대개 우리나라에서 제 역할을 잘한다.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부모와의 불화, 적절한 무시, 좋게 이야기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잘 된 사람들이다.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좋은 아이만은 아니라는 말인가.  
우리의 부모, 우리 세대는 부모 말을 충실히 잘 듣는 아이들이 필요한 사회였다. 문제는 다음 세대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지 않나. 안정적으로 잘 짜여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려는 노력보다는 혁신가를 필요로 하는 세상이다. 부모의 조언이라는 것은 항상, 자기 성공모델을 기준으로 조언하기 때문에 부모의 조언이 반드시 아이에게 유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나.
(웃음) 뇌의 세 번째 특징이 있다. 나를 인식하는 뇌의 영역, 자식을 인식하는 뇌 영역이 특히 아시아 사람들의 경우는 가깝다. 다시 말하면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아이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엄마를 생각하는 뇌가 (나를 인식하는 뇌 영역과) 붙어있다. 서양인의 경우는 이 부분이 떨어져 있다. 부모와 자식은 깊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데, 한편 아시아인의 뇌 구조로 보면 부모가 아이를 과도하게 통제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이니까, 그런 경향이 생긴다.
정재승 교수의 대전 자택 서재. 도서관을 방불케한다. 김성태 기자

정재승 교수의 대전 자택 서재. 도서관을 방불케한다. 김성태 기자

부모와 자식의 분리가 안 된다는 말씀인데.
그러기에 ‘부모가 뭘 해야 하나’가 정말 중요한 질문이 된다. 아이의 미래가 결정되는 데 있어 너무 중요한 일이다. 아이의 삶이 있는데도 우리는 내 탓, 내가 잘못 키운 것을 생각한다. 아이의 결정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실수하더라도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이 부모지 우리가 아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40~50대 부모는 자신의 생존전략이 다음 세대인 자녀들에게 적용되기 힘든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맞이하게 되는 세상은 우리가 경험한 세상과는 다르다. 그러니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그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배우고, 부모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하며, 타인의 욕망을 기웃거리지 않는 삶을 살도록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만들어 ‘대체 불가능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줘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인간탐구 보고서』를 1권부터 재미있게 봤는데, 아이 책을 쓴 계기가 있나.
온 가족 함께 자동차 여행하기를 아주 즐겼는데, 딸 셋이 차 뒷좌석에 타면 제일 먼저 “아빠, 재밌는 것이 얘기해줘”라고 늘 아우성쳤다. 운전하는 내내 이야기를 지어내 아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까르르 웃게 하기도 했는데, 제일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만한 과학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책을 낸다면 그건 인간에 대한 과학이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지구를 점령하기 위해 온 외계인들의 시각에서 본 ‘인간 관찰기’인데, 정작 책이 출간될 무렵이 되니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다. 벌써 7권까지 나왔다.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외계인의 시선에서 아이들이 인간의 '뇌'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구성했다. 30만부 넘게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사진 아울북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외계인의 시선에서 아이들이 인간의 '뇌'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구성했다. 30만부 넘게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사진 아울북

결국 책이 ‘나의 뇌를 이해하면 나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나’로 느껴지던데.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나.
맞다. 아이는 가족 친구와 소통하면서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타인의 행동을 짐작하고, 감정을 나누며 공감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배운다. 그래서 이 시기에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이 ‘인간에 대한 과학’이다. 정체성과 사회성이 형성되는 시기기 때문이다. 
사춘기 뇌 부분은 부모도 좀 읽었으면 할 정도로 재밌던데, 실제로 뇌를 아는 것이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됐나.
물론이다. 흔히들 사춘기를 ‘호르몬의 요동’ 시기로 파악하는데, 그 시기 뇌 변화를 이해하면 아이들에 대응하는 방법에 큰 도움이 된다. 사춘기를 잘 보내는 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균형 잡힌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아직 충분히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발달하지 않다 보니, 타인에겐 지나치게 엄격하면서 자신에겐 한없이 너그럽기도 하고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면서 자기 허세가 강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의사결정하고, 실수와 후회를 통해 성장한다. 부모는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녀들이 ‘안전하게’ 많은 실수를 하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나 역시 그러려고 애쓰고 있다.
비슷한 질문인데 자녀를 키울 때 공부한(※정 교수는 물리학과 뇌과학을 공부했다) 부분들로 인해 양육이 수월하기도 했나.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무엇이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키우는 데엔 많은 도움이 됐다. 미국에 있는 동안 소아정신과에서 교수로서 소아·청소년들의 정신질환을 연구했는데, 부모와의 적절한 관계 형성을 제대로 못 해 생긴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사교육은 부모들의 불안을 먹고 성장한다. “아직도 준비를 안 하고 계십니까?”라며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정보를 퍼뜨리고 사교육에 의존하게 한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법을 적용해 2시간 동안 20문제를 풀 때보다 혼자 궁리하며 3~4문제를 풀 때 아이들의 사고는 더 깊어진다. 
아이들이 과학을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무엇보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과학 점수로 아이들의 실력을 재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에 나가면 50분 안에 20문제를 실수 없이 풀어야 할 상황은 없다. 천천히 생각해도 되고, 모르면 동료들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된다. 학창시절 점수로 수학, 과학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문과, 이과 구분은 뇌의 한쪽을 자물쇠로 잠그는 행위다. 학교에서 수학 과학을 우주, 자연, 생명, 의식의 경이로움을 만끽하면서 배우고, 그것을 탐구해온 학자들의 역사로서 배웠다면 누구라도 수학과 과학의 매력에 빠졌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 모든 영역에 호기심과 깊은 이해를 가지고 스스로 세상을 탐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점수로 한 줄 세우는 문화 속에서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긴 어렵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학교 교육이 내일의 사회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별로 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한 줄 세우기의 맨 앞에 인공지능이 서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정재승 교수는 수학, 과학 점수로 아이드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김성태 기자

정재승 교수는 수학, 과학 점수로 아이드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김성태 기자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책 100권 읽기' 권하는 정재승
카이스트에서 융합인재학부 학부장을 맡고 있는 정재승 교수는 학생들에게 책 100권을 읽게 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내도록 하고 있다. 우주, 생명, 인간, 사회, 기술과 예술 등의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는 학생들에게 사회 문제, 지구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수업에도 3년간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그는 책을 출간하고, 학생들에게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도록 하는 것을 ‘소통’으로 표현했다. 그의 설명이다.

“몇 해 전, 과학자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저널 『네이처』에 논문을 출간했을 때는 정말 ‘내가 이러려고 과학자가 되었구나’싶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은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는 날 과학적 진보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인류가 ‘시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인류가 과학적으로 진보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과학적 성취를 만들어내는 것 못지 않게, 우리 사회가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과학의 성취를 이해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애쓰는 것도 과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비로소 과학은 완성된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으면 한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과학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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