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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 칼럼

이재명의 부동산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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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천화동인 1~7호는 성남 대장동에서 11만%라는 믿기 어려운 수익률을 올렸다. 하지만 국민이 놀라는 대목은 또 하나 있다. 예전에는 부동산 투기꾼 하면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며 재개발 딱지나 청약통장을 사 모으는 ‘복부인’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풍경이 다르다. 검찰에 출두하는 대장동 사건의 주범들은 한결같이 전문직 엘리트들이다. 모두 고급 정장을 쫙 차려입은 변호사·회계사·기자 출신들이다.

이런 최고급 인력들이 부동산에 몰려간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4년 동안 부동산은 최고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반도체나 2차 전지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작년 반도체·휴대폰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41조원. 이에 비해 지난 한 해 민간보유 토지가치는 772조원이나 올랐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585조원)보다 많다. 부동산에 젖과 꿀이 흐르며 모든 산업을 압도한 것이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이다. 전직 대법관·특검·청와대 민정수석·검사장, 현직 국회의원까지 대장동에 탐욕스런 빨대를 꽂았다.

갈수록 사나워지는 부동산 민심
검찰 불신에다 특검 찬성 압도적
이 캠프는 중도층 확장을 위한
부동산 차별화 엄두조차 못 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강남훈 한신대 교수를 “기본소득 스승”이라 부른다. 강 교수는 오히려 김부겸 국무총리와 가깝다. 경북고 친구다. 서울대 시절에는 경제학과와 정치학과로 전공은 달랐지만 허름한 방에서 함께 자취를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줄곧 진보 노선을 함께 걸었다. 이 캠프의 정책 공약에서 또 한 명 눈여겨볼 인물은 김태동 정책고문이다. 김대중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그는 ‘문재인 정권 부동산 저격수’라는 김헌동 경실련 본부장과 친형제 사이다.

강 교수와 김 정책고문은 지난달 묘한 행보를 했다. 강 교수는 인터넷 신문에 기본소득 기고문을 실으면서 현 정부의 25차례 부동산 정책 실패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국은행 국민 대차대조표를 인용해 “지난해 민간보유 토지 가치 상승분 772조원은 국내총생산(GDP)의 40%나 되는 규모”라고 했다. 과도한 부동산 불로소득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김 정책고문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 정부가 군사정권보다 못한 정책으로 세계 최악의 부동산 지옥을 만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같은 진영끼리 예상을 뛰어넘는 독한 표현이다.

이재명 캠프는 당초 경선 때부터 현 정부의 부동산 실패와 확실하게 차별화하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강 교수의 기고문과 김 정책고문의 인터뷰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이 후보도 경선 막바지에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대장동 사태는) 국무총리로 계신 동안 집값이 폭등해서 개발업자들의 이익이 3~4000억원 늘어난 것”이라고 역공했다. ‘문재인’이라는 고유명사만 뺐지 사실상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선을 그은 것이다.

하지만 대장동 사태가 운명을 갈랐다. 이 후보는 문 대통령과 같은 배를 타게 됐다. 국정 지지율 40%에다 검찰 수사권을 쥔 문 대통령과 맞서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묻어가야 할 판이다. 어제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문제는 부동산 민심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9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1천639만원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6억708만원) 대비 두 배나 올랐다. 무주택자와 2030세대의 분노와 좌절이 깊어지고 있다.

그제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부동산에 대한 죄송함의 크기는 천근의 무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상승세가 둔화하고 지역별로 부분부분 집값이 떨어지는 민감한 상황”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공식 통계인 부동산원 통계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실거래가 신고를 종합하는 만큼 시장의 변동성에 둔감하고 시차가 1~2개월 발생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경실련이 “서울 아파트 중위값이 3년간 52% 뛰었다”고 했을 때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공식 통계로는 14.2% 올랐다”고 우긴 것도 이런 맹점 때문이다. 이번에는 거꾸로 아파트값이 내려도 내년 대선 때까지 제대로 잡히지 않을 수 있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사태에 “털어도 나올 게 없다”며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핵심 주범이 내던진 휴대폰을 못 찾았고 성남시청도 뒤늦게 압수수색했다. 어설프게 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여기에 정영학 회계사는 자유롭게 참고인으로 왔다 갔다 하고 남욱 변호사는 기자들을 향해 “커피 한 잔 사드리겠다”며 여유를 부린다. 이런 풍경들이 모두 국민정서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부자들의 땅을 밟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는 말이 나돌 때 민심이 사나워지고 나라가 흔들렸다. 지금은 대장동이 그 진앙이다.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연거푸 헛발질하고 이 후보는 눈부신 방어전을 펼쳤다. 민주당은 “이재명의 압도적 완승”이라 자랑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대장동 특검 찬성은 여전히 64%이고, 반대는 27% 선에서 꿈쩍도 않고 있다. 검찰 수사를 향한 눈초리는 차가와지고 중도층 확장을 위한 부동산 정책 차별화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의 대장동 딜레마가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