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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2012년 경찰 ‘국정원 댓글 수사’의 기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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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1팀장

정효식 사회1팀장

그날 밤이 그런 날이었다. 2012년 대선 사흘 전 12월 16일 밤 11시. 역사가 바뀐다는 느낌을 받은 날이다. 여당 박근혜 후보와 야당 문재인 후보 간 마지막이자 첫 양자 TV토론이 끝난 직후였다. 문 후보의 상당히 우세한 토론으로 막판 역전 가능성이 보인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수서경찰서장이 국가정보원 직원 불법 댓글 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속보가 터졌다. “국정원 여직원이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발표로 국정원 댓글 사건은 ‘야당의 국정원 여직원 불법 감금사건’으로 뒤바뀌었다. 12월 19일  박근혜 후보가 예상(?)대로 문 후보를 108만표(3.6%포인트) 차로 따돌리고 당선했다.

경찰이 2012년 12월 불법 댓글 혐의로 국정원 여직원의 노트북을 압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경찰이 2012년 12월 불법 댓글 혐의로 국정원 여직원의 노트북을 압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우리는 당시 경찰 발표가 거짓임을 알고 있다. 서울경찰청 디지털포렌식팀이 여직원의 노트북에서 인터넷 댓글 작업을 하는 데 사용한 아이디·닉네임 40여개가 담긴 메모장 파일을 찾아냈고, 이를 이용해 ‘오늘의 유머’ ‘보배드림’ 등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실도 확인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당시 경찰이 “댓글을 찾지 못했다”라는 희대의 거짓 발표에 활용한 논리가 소위 ‘분석 범위 제한’이다. 여직원이 노트북을 임의제출할 때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전자정보 중 2012년 10월 이후 3개월간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글과 관련된 전자정보’로 한정해 분석에 동의했기 때문에 하드디스크에서만 비방·지지 글을 찾아야 한다는 거였다. 여직원이 인터넷 게시판 게시글 및 댓글 작업 일지를 따로 노트북에 저장해놓지 않는 한 “있더라도 찾지 않겠다”란 말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결국 검찰의 국정원 댓글수사를 통해 재판에 넘겨졌고 2018년 4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 유죄를 확정받았다. 6년간 5번의 재판 끝에 불법 선거운동 관련 인터넷 게시글·댓글 93건, 찬·반 클릭 1003건, 트위터 활동 10만 6513건이 인정됐다. 별도로 정치관여 관련 게시글·댓글 2027건, 클릭 1200건, 트위터 28만 8926회가 유죄 확정됐다. 원 전 원장은 2017년 국정원 심리전단 외에 민간인 댓글 부대에 국고 63억원을 사용한 혐의(직권남용·국고손실)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달 파기환송심에서 추가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잘못된 역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바로 잡힌다. ‘문워크(뒷걸음질) 수사’‘압수수색 제외, 범위 제한’ ‘반쪽·축소 기소’ 논란을 낳고 있는 검찰 대장동 수사가 9년 전 국정원에 대한 경찰 수사의 재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