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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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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고색창연했던 단성사에서의 두 시간은 특별했다. 낯설게 들리던 ‘소리’는 극이 흐르면서 귀를 집중시키고 어깨춤을 자아내더니 종국에는 기어이 눈물을 뽑아냈다. 한국영화가 천대받던 시절, 그 못지않게 괄시받던 판소리를 주제로 삼은 그 영화 ‘서편제’(1993)가 흥행 기록을 경신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좋은 영화였다. 한국인의 한(恨)을 기반으로 한 이청준의 처연한 이야기가 잘 극화돼 심금을 울렸고, 한국의 수려한 풍광을 담아낸 영상미도 빼어났으며 춘향가·심청가 같은 판소리 가락에 양념처럼 더해진 진도아리랑도 맛깔났다.

하지만 무명 배우들의 판소리 영화가 투자자 구미를 당기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임권택 감독의 손을 잡아준 이 영화의 제작자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은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영화는 예술품인 동시에 공산품이다. 제작비와 상품성이 없으면 세상에 선보일 가능성도 작아진다. 돈을 조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 과정을 총괄 관리하면서 때로는 제2의 감독 역할까지 해야 하는 이가 제작자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드문 스타 제작자였다. 그는 임 감독과 동행하며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장군의 아들’(90), ‘개벽’(91), ‘태백산맥’(94), ‘축제’(96), ‘취화선’(2002) 등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작품을 잇달아 만들어냈고 적지 않은 성공을 거뒀다.

이 대표의 작품들이 특히 주목받은 건 거기에 전통만 담긴 게 아니라서다. 대금·피리·신시사이저가 조화를 이룬 김수철의 음악, 장승업의 필선을 스크린에 재연한 촬영기법 등의 혁신은 신세대의 시선도 잡아끌었다. 아예 두 시간짜리 ‘판소리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진 ‘춘향뎐’(2000)은 과감한 실험 정신의 소산이었다. 국악과 양악의 화학적 결합으로 주목받는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풍류대장’의 원형이 거기에 있었다.

이 대표는 스스로 “예술가가 아니라 영화 장사꾼”이라고 겸양했지만, 그의 장사 수완과 투자 감각이 없었다면 숱한 명작들이 빛을 보지 못했을 거다. 한국의 셀즈닉, 브룩하이머, 와인스타인이라 불릴 만한 이 대표가 지난 24일 83세 나이에 별세했다. 그가 만든 발판 위에 서서 세계를 휩쓸고 있는 후배들이 그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