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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암살자' 살얼음 얼면, 도로 바닥에 뜨는 빨간 네글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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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고속도로 안전 지키는 신기술 ①  

야간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색 살얼음 경고문자. [출처 한국도로공사]

야간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색 살얼음 경고문자. [출처 한국도로공사]

 #. 제법 매서운 추위가 느껴지는 겨울 어느 날 새벽, 영동고속도로에 있는 한 교량에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살얼음은 대형교통사고를 유발하는 탓에 '도로 위 암살자'로도 불린다.

 이때 살얼음 주변 도로 바닥에 '결빙위험'이라는 붉은색 경고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50여m 전방에서 이를 발견한 운전자가 속도를 낮춰 조심스럽게 살얼음 구간을 통과한다.

#. 같은 시각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다리에서도 살얼음이 얼었다. 그러자 살얼음 주위 도로 표면에 얼음결정체 형태의 파란색 문양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이를 확인한 운전자가 역시 속도를 낮춰 위험 구간을 무사히 지나간다.

살얼음을 조심하라는 얼음결청체 형상의 경고문양. [출처 한국도로공사]

살얼음을 조심하라는 얼음결청체 형상의 경고문양. [출처 한국도로공사]

 이 같은 상황은 실제 도로에서 벌어진 건 아니다. 경기도 동탄의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이하 연구원)에 있는 도로주행 시뮬레이터를 통해 구현한 실험장면이다.

 연구 과제명은 '온습도 감응형 노면색상 변화 기술'로 기온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시온도료를 활용해 살얼음 위험 구간의 도로 바닥에 경고문 또는 경고문양을 띄우는 내용이다.

 평상시에는 흰색이지만 살얼음이 얼 가능성이 큰 온도가 되면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변해 운전자가 멀리서도 알아보기 쉽게 표시된다. 온도 변화에 반응하는 민감도는 플러스마이너스(±) 1℃ 이내, 색상 정확도는 98% 이상이 목표다. 시온도료는 온도계에서 많이 사용 중이다.

살얼음 경고문자와 문양은 평소엔 흰색으로 보인다. [출처 한국도로공사]

살얼음 경고문자와 문양은 평소엔 흰색으로 보인다. [출처 한국도로공사]

 지난 18일 연구원에서 만난 공유석 차장은 "현재는 도로 위에 설치된 전광판에만 결빙주의 문자를 표시하는데 운전자들이 별 관심 없이 지나친다"며 "살얼음이 언 도로 표면에 경고문이 뜨게 되면 주의 환기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연구원에 설치된 도로주행 시뮬레이터를 통해 실험을 진행했다. 2360㎡의 실험센터를 꽉 채우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시뮬레이터는 180억을 투입해 2019년 완공됐다. 프랑스 제품으로 도로 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

 연구원은 11월 말까지 고속도로 2~3개 구간(교량)에 경고 문구와 문양을 설치해 본격적인 시험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교량은 평지보다 온도가 빨리 떨어지고 얼음이 잘 언다.

도로공사가 보유한 국내 최대규모의 도로주행시뮬레이터. [사진 한국도로공사]

도로공사가 보유한 국내 최대규모의 도로주행시뮬레이터. [사진 한국도로공사]

 구간별로 200m 간격을 두고 문구나 문양을 3개가량 넣게 된다. 실제 운영 중인 도로에 해당 표지를 적용하는 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게 연구원 측 설명이다.

 이러한 기술을 개발하는 건 살얼음으로 인한 사고와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모두 7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친 상주영천고속도로 연쇄 추돌사고(2019년 12월)가 대표적이다.

2019년 12월 14일 발생한 상주영천고속도로 연쇄추돌사고 현장. [연합뉴스]

2019년 12월 14일 발생한 상주영천고속도로 연쇄추돌사고 현장. [연합뉴스]

 새벽에 땅이 살짝 젖을 정도로 내린 가랑비가 살얼음으로 변하면서 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교통사고를 유발한 것이다. 공 차장은 "노면색상 변화 기술이 좀 더 일찍 개발돼 사고구간에 적용됐더라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공사는 시험구간의 운영 효과를 분석해 성능이 입증되면 전국 고속도로의 200여개 살얼음 위험 구간에 이를 확대할 예정이다. 주로 그늘지거나 습기가 많아 살얼음이 얼기 쉬운 지점들이다.

 이를 통해 2019년 기준으로 무려 44%에 달하는 고속도로의 살얼음 교통사고 치사율(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을 2023년까지 절반가량으로 낮추겠다는 게 도로공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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