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구경 시켜달라" 특명···소련·中 빗장 푼 '북방외교' [노태우 별세]

중앙일보

입력 2021.10.27 00:01

업데이트 2021.10.2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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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북방외교를 추진했다. 동구권 국가와의 수교 및 협력을 통해 한국의 외교 지형을 대폭 넓히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 동서 냉전의 한복판에 한반도가 놓여 있었단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외교 구상이었다. 사진은 1988년 제 13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 [대통령기록관]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북방외교를 추진했다. 동구권 국가와의 수교 및 협력을 통해 한국의 외교 지형을 대폭 넓히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 동서 냉전의 한복판에 한반도가 놓여 있었단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외교 구상이었다. 사진은 1988년 제 13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 [대통령기록관]

“우리와 교류가 없던 저 대륙국가에도 국제협력의 통로를 넓게 할 것입니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2월 취임사를 통해 한국 외교지형의 다변화를 정권 차원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가깝게는 남북 통일을, 멀게는 중국·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와의 공격적인 수교를 통해 세계의 중심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게 노 전 대통령이 구상한 북방외교의 핵심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줄곧 북방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결과 5년간 총 37개국과 수교를 맺는 성과를 이뤘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 『전환기의 대전략』을 통해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당면 목표와 최종 목표를 설정했는데, 당면 목표는 남북 통일이고 최종 목표는 우리의 생활·문화권을 북방으로 넓히는 것이었다”며 “생활·문화권을 넓히면 우리는 동북아의 변방 국가가 아니라 명실공히 중심국가로서의 위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어 냉전의 최전선이었단 점을 감안하면 북방외교는 파격적인 구상이었다.

남북 '큰 그림' 그린 북방외교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7.7 선언을 통해 한국은 중국 및 소련과, 북한은 미국 및 일본 등 서방과 관계를 개선하자는 방안을 내놨다.[대통령기록관]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7.7 선언을 통해 한국은 중국 및 소련과, 북한은 미국 및 일본 등 서방과 관계를 개선하자는 방안을 내놨다.[대통령기록관]

북방외교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의지는 1988년 7·7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7·7 선언에는 ▶남북 상호교류 확대 ▶이산가족 생사 확인 및 상호 방문 ▶남북 교역 문호 개방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북정책이 담겼다. 또 북한은 미국·일본 등 서방과, 한국은 중국·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한다는 방안도 포함됐다. 남북이 모두 외부와의 개방·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한반도 통일을 이끄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게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마침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준비 중이었다. 더구나 동서 냉전으로 ‘반쪽 올림픽’에 그쳤던 모스크바올림픽(1980년)과 LA올림픽(1984년)과 달리 서울올림픽엔 동서 양 진영의 160여개국이 참가했다. 냉전 종식을 알리는 축제가 된 셈이다. 실제 서울올림픽은 ‘동서 화합의 장’으로 자리매김했고, 공산권 국가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

수교 기폭제 된 88올림픽 

동서 화합의 장이 된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엔 속도가 붙었다. 사진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동서 화합의 장이 된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엔 속도가 붙었다. 사진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이같은 분위기는 서울올림픽 4개월 후인 1989년 2월 1일 당시 호른 줄러 헝가리 외무담당 국무장관의 방한으로 이어졌다. 줄러 장관의 방한을 통해 한-헝가리 수교 의정서가 체결됐고, 같은해 3월엔 헝가리에 서울무역사무소가 설치됐다. 물론 헝가리와의 수교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당초 한국과의 수교를 망설였던 헝가리를 설득하기 위해 노태우 정부는 1억2500만 달러의 은행 차관을 제공하면서 총력전에 나섰다.

헝가리와의 외교 관계 수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뒤 다른 동구권 국가와의 수교가 잇따랐다. 1989년 11월 폴란드를 시작으로 1989년 12월 유고슬라비아와 수교를 맺은 이후 체코슬로바키아(90년 3월), 불가리아(90년 3월), 몽골(90년 3월) 등 북방외교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문제는 공산외교 종주국이자 북방외교의 핵심이었던 소련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대소련 설득전은 1990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주모스크바 영사사무처장으로 부임할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며 “연내에 모스크바 구경 좀 시켜달라”고 언질했다. 소련과의 수교를 추진하라는 의미였다.  

“모스크바 구경 좀 시켜달라”

1990년 12월 옛 소련 크레믈린궁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1990년 12월 옛 소련 크레믈린궁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계속된 설득 끝에 같은해 5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수석 외교보좌관이었던 아나톨리 도브리닌이 방한했다. 사실상 소련과의 수교를 위한 사전 작업이 9부 능선을 넘는 순간이었다. 한 달 뒤인 1990년 6월 노 전 대통령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역사상 첫 한·소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후 같은 해 9월 최호중 당시 외무부 장관이 뉴욕 유엔본부에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상과 회담을 개최하며 한-소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을 공식화했다.

북방외교의 두 번째 문턱은 중국이었다. 당초 노 전 대통령은 공산권 국가 중 중국과의 관계 확립이 가장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라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며 중국과의 수교를 위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했다. 천안문 사태로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과 극심한 갈등 국면에 돌입했고, 한국에 대한 경계심도 커졌다. 또 당시 중국과 대만 간 갈등이 깊어지며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선 한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대만과 단교를 해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 놓였다. 중국과의 수교를 위한 설득전이 장기화한 이유다.

난공불락 中, 3년 만에 수교 공식화

1992년 8월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 참석한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양상곤 중국 국가주석. 당시 노 대통령은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해 한중 정상회담을 했다. [중앙포토]

1992년 8월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 참석한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양상곤 중국 국가주석. 당시 노 대통령은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해 한중 정상회담을 했다. [중앙포토]

결국 한·중은 천안문 사태 3년이 지난 1992년 8월에서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된 이후엔 남은 문제들이 자연스레 해소됐다. 수교 한 달 뒤 한국 정부가 줄곧 요구했던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이 자리에서 양국 관계 증진 방안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협력방안이 논의되는 등 한·중 교류·협력의 시대가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에 북방외교 구상의 시발점이자 최종 목표였던 남북통일을 이루진 못했다. 하지만 북방외교가 동서 냉전 속에서 갈등 일변도였던 남북 관계 완화에 기여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1989년 9월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해 자주·평화·민주 등 통일 3원칙을 제시했다. 1990년엔 두 차례에 걸쳐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고, 냉전 종식 기류와 함께 1991년 9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성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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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최종 합의한 것 역시 노태우 정부 대북정책의 주요 성과에 해당한다. 이 합의서는 남북 양측이 처음으로 주권국으로서 상호 실체를 인정한 공식 문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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