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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역사의 죄인" 野 "북방정책 성과"…엇갈린 정치권 반응 [노태우 별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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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0년 10월 13일 민생치안 확립을 위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0년 10월 13일 민생치안 확립을 위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소식에 정치권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고인의 생전 활동과 치적에 대해서는 여야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與 “12·12 주역, 독재자”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이용빈 대변인 명의 서면브리핑을 통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에 가담한 역사의 죄인”이라고 발표했다.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군사독재를 연장했고, 부족한 정통성을 공안 통치와 3당 야합으로 벗어나고자 했던 독재자”라는 평가도 했다.

다만 민주당은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중국 수교 수립 등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퇴임 이후 16년에 걸쳐 추징금을 완납하고, 이동이 불편해 자녀들을 통해 광주를 찾아 사과하는 등 지속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그의 마지막은 여전히 역사적 심판을 부정하며 사죄와 추징금 환수를 거부한 전두환 씨의 행보와 다르다”는 입장도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재헌씨는 지난 2019년 8월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사과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회에 걸쳐 광주를 찾았다. 2020년 5월, 지난 4월 등 3년 연속 아버지 이름으로 헌화·참배를 하고 올 5월에는 광주에서 5·18 연극을 관람했다.

광주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의원들은 “노태우씨의 국가장 예우와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한다”는 기자회견문을 배포했다. 조오섭(광주 북구갑) 의원과 윤영덕(광주 동남갑) 의원은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받은바 있는 중대 범죄자”라고 노 전 대통령을 규정하면서 “국민이 용서하지 않고 역사적 단죄가 끝나지 않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료원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료원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복잡하고 민감한 여권 내 기류를 의식한 듯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입장은 늦게서야 나왔다. 그는 성남의료원을 방문한 뒤 관련입장을 묻는 기자들에게 “나중에, 캠프와도 상의해보고 (입장을 밝히겠다)…”라고만 했다가 4시간여 후 쯤 페이스북에 애도의 글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 현대사에 빛과 그늘을 함께 남겼다”며 “고인의 자녀가 5.18영령께 여러 차례 사과하고 참배한 것은 평가받을 일”는 내용이었다. 이 후보는 27일 오후 2시쯤 빈소에 조문을 갈 예정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고인의 딸인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개인적 인연을 공개했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 당대표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노 전 대통령 딸인) 노소영씨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조의를 표하고 내일 (빈소에) 찾아간다고 말했다”면서 “노재헌씨의 사과문에 대해서 내가 잘했다고 평가를 해주고 격려를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노소영씨는 나와 비슷한 또래”라며“인천시장 때(2010년) 노소영씨의 전시회를 도와주며 중앙일보에 둘이 한 면짜리 인터뷰를 했다”고 덧붙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지난 4월 22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희쟁자들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는 모습(왼쪽). 오른쪽은 지난 2014년 11월 26일 해군사관학교 교정에서 열린 제117기 해군 해병대 사관후보생 임관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손녀 최민정씨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뉴스1]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지난 4월 22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희쟁자들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는 모습(왼쪽). 오른쪽은 지난 2014년 11월 26일 해군사관학교 교정에서 열린 제117기 해군 해병대 사관후보생 임관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손녀 최민정씨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뉴스1]

野 성과 강조하며 “영면 기원”

야권은 보다 차분한 반응이었다. 국민의힘은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허은아 수석대변인)고 시작한 공식 구두논평에서 “고인은 후보 시절인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였고, 그리하여 직선제 하에서 대통령에 선출됐다”는 점을 먼저 짚었다. 이어 “재임 당시에는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북방외교 등의 성과도 거두었다”면서 “하지만 12.12 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을 탄생시킨 점,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서의 민간인 학살 개입 등의 과오는 어떠한 이유로도 덮어질 수 없다”고 평가했다.

경선 중인 대선 주자들도 한결같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날 국립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재직 중 북방정책이라든가, 냉전이 끝나갈 무렵 우리나라 외교의 지평을 열어주신 것은 의미 있는 성과였다”며 “굉장히 오랜 세월 병마에 시달려오신 것으로 안다. 영면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 시절 가장 잘한 정책은 북방정책과 범죄와의 전쟁이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보수진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던 북방정책은 충격적인 대북정책이었고, 범죄와의 전쟁은 이 땅의 조직폭력배를 척결하고 사회 병폐를 일소한 쾌거였다”고 고인을 평가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故 김영삼 대통령 묘역 참배를 마친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10.26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故 김영삼 대통령 묘역 참배를 마친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10.26 국회사진기자단

유승민 전 의원도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별세하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기 바란다. 유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 역시 “노태우 전 대통령님께서 향년 89세로 별세하셨다.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며 큰 슬픔을 마주하신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적었다.

한편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전두환과 함께 12ㆍ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며 내란죄를 범한 큰 오점이 있는 분이지만 마지막 떠나는 길인 만큼 예우를 갖추고자 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역사를 잊은 정치에는 미래가 없다”며 “역사의 그늘을 깊게 성찰하며, 이제 87년 체제를 넘어 전환의 정치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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