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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다·전력난·저성장 속 5년 만에 돌아왔다, 中 ‘권위인사’ 정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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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현장 시찰에 배석한 류허(맨 왼쪽)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 [중앙포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현장 시찰에 배석한 류허(맨 왼쪽)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 [중앙포토]

질문 ‘파이 키우기’와 ‘파이 나누기’를 어떻게 볼 것이며, 공동부유(共同富裕)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일각에서 공동부유를 곡해해 ‘한 솥 밥 먹기’, ‘평균주의’, ‘부자 털어 거지 돕기’라고 한다.…공동부유는 게으름뱅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근로와 혁신을 장려해 부자가 되자는 취지다.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소득분배 개혁을 통한 ‘파이 나누기’다.…자선 등 3차 분배는 강제가 아니다. 국가 세금 징수 정책에서 적당한 인센티브를 줘서 ‘부자 털기’라는 오해를 막아야 한다.”
인민일보 25일자에 실린 권위인사 인터뷰. [인민일보 캡처]

인민일보 25일자에 실린 권위인사 인터뷰. [인민일보 캡처]

최근 발표된 3분기 중국 경제 성장률이 4.9%로 예상치를 밑돌고, 부동산 기업 헝다(恆大)의 과도한 부채 폭탄, 세계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한 전력난 등 중국 경제 곳곳에서 위기설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 관영매체에 신비의 ‘권위인사’가 5년 만에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1940년대 마오쩌둥의 인민일보 필명 #위기설 2015~16년 당시 세 차례 등장 #“시진핑 반대파 공격 차단 위한 조치”

24일 밤 중국 관영 신화사는 ‘중국 경제의 열 가지 질문(十問中國經濟)’이란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송고했다. 신화사는 “최근 열 가지 사회적 우려와 뜨거운 문제를 정리한 뒤 권위인사를 인터뷰해 답변을 받았다”며 성장률, 소비·투자, 대외 무역, 공급측 구조개혁, 전력난과 에너지 안보, 글로벌 공급망 조정, 공동부유, 반(反)독점 규제, 빈곤 탈피, 금융위기 방지 등의 각종 현안에 대한 ‘권위인사’의 생생한 답변을 보도했다. 1만2000여 자에 이르는 장문의 기사는 다음날인 25일자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12면과 13면에 전문이 게재됐다.

신비로운 중국의 ‘권위인사’는 지난 중국 경제 위기설이 고조되던 2015년과 2016년에도 등장했다. 국내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고위 소식통과 중국의 ‘권위인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2015년 5월 25일과 2016년 1월 4일자 인민일보 2면에 실린 권위인사의 인터뷰 기사 [인민일보 캡처]

2015년 5월 25일과 2016년 1월 4일자 인민일보 2면에 실린 권위인사의 인터뷰 기사 [인민일보 캡처]

2016년 5월 9일자 인민일보 1면. 권위인사의 인터뷰 기사 “(13차 5개년 계획) 시작 첫 분기의 트렌드를 묻는다(開局首季問大勢)”가 실렸다. [인민일보 캡처]

2016년 5월 9일자 인민일보 1면. 권위인사의 인터뷰 기사 “(13차 5개년 계획) 시작 첫 분기의 트렌드를 묻는다(開局首季問大勢)”가 실렸다. [인민일보 캡처]

먼저 최근 ‘권위인사’가 등장했던 때로 돌아가 보자. 2015년 5월 25일자 인민일보는 2면에 ‘중국 경제의 다섯 가지 질문(五問中國經濟)’이란 기사를 권위인사 인터뷰라는 굵은 부제와 함께 실었다. 이듬해인 2016년 1월 4일에도 역시 2면에 ‘공급측 구조성 개혁의 일곱 가지 질문(七問供給側結構性改革)’이란 제목 하에 권위인사를 부제로 명시해 실었다. 이어 같은해 5월 9일자에 1면과 2면에 “(13차 5개년 계획) 시작 첫 분기의 트렌드를 묻는다(開局首季問大勢)”는 인터뷰를 싣는 등 ‘권위인사’는 1년 새 세 차례 등장했다.

당시 중국 경제는 부동산 과열과 해외 자본의 유출로 위기설이 고조되고 있었다. 특히 당시 ‘권위인사’는 U자형 회복을 언급한 리커창(李克強) 총리와 달리 L자형 추세를 이야기해 중국 지도부 사이의 노선차를 드러냈다. 당시 언론은 ‘권위인사’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류허(劉鶴) 부총리를 지목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 본인이 경제를 보는 관점과 정치적 입장을 대표한 것으로 파악했다. 당시 베이징의 한국 외교 소식통은 “중국 내 전문가 의견을 수합한 결과 권위인사는 시진핑 생각과 일치한다”며 “1940년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권위인사라는 필명으로 기고한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관심 속에 2016년 인민일보 해외판이 운영하는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스토리)인 협객도(俠客島)가 ‘권위인사’의 호칭, 진화, 계승 세 측면으로 나눠 분석한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협객도는 “1946년 인민일보 창간 이후 지금까지 ‘권위인사’는 1606편의 문장에 1771차례 등장한다”며 “초기 ‘중공(중국공산당) 권위인사’ 명의의 글은 열정이 넘치고, 단호한 태도가 『마오쩌둥 선집』의 문체와 일치한다”고 했다. 마오쩌둥 사후에는 개혁개방이 시작된 11기 3중전회 이후 ‘권위인사’의 이미지가 온건해지면서 ‘혁명’에서 ‘건설’로 전환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협객도는 ‘권위인사’를 등장시킨 보도 방식에 대해 “신비감 때문에 문장이 더욱 감동적”이라며 “혁명전쟁 시대에 왜 ‘권위인사’를 사용했는지 잊어선 안 된다. 용어에서 투쟁의 책략을 볼 수 있다. 고위급 지도자가 관점을 발표할 필요가 있을 때, 드러내 말하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번에 등장한 ‘권위인사’ 역시 5년 전 류허 부총리와 동일 인물일까? 이에 대해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는 26일 같은 인물이 아닐 것으로 추정했다. 즉 5년 전 ‘권위인사’ 보도가 인민일보에 처음 실렸던 것과 달리 전날 밤 국무원 산하의 관영 통신인 신화사가 먼저 보도했기 때문이다. 또 5년 전 ‘권위인사’ 인터뷰 기사가 인민일보 1면과 2면에 게재됐던 것과 달리 지면 위치도 12~13면으로 뒤로 이동했다. 인민일보 지면의 위치는 인터뷰이의 정치적 지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5년 전과 달리 이번에 등장한 ‘권위인사’의 신분은 하향 조정 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왜 지금 ‘권위인사’가 다시 등장했을까. 중국 경제 속사정에 밝은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앙일보에 “이번 ‘권위인사’ 보도는 내용보다 시점이 중요하다”며 “만일 내년 가을 열릴 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권력 연장을 둘러싸고 당내 반대파가 있다면 경제 문제로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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