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갇힌 평양시민" 김련희 기구한 10년, 다큐로 찍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26 11:21

업데이트 2021.10.26 15:06

새 다큐 '그림자꽃'으로 21일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승준 감독은 "살아남은 세대가 소멸해가는 지금 남북 분단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다큐 감독으로서 고민해왔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새 다큐 '그림자꽃'으로 21일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승준 감독은 "살아남은 세대가 소멸해가는 지금 남북 분단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다큐 감독으로서 고민해왔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련희씨는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됐지만 거의 100% 북쪽 정체성을 갖고 있었어요. 탈북하는 여러 시스템에서 피해자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죠.”
세월호 참사 당시 기록을 치밀하게 재구성한 단편 ‘부재의 기억’으로 지난해 한국 다큐멘터리 최초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이승준(50) 감독이 새 작품을 들고 나왔다. 27일 개봉하는 ‘그림자꽃’. “남한에 갇힌 평양시민” 김련희(52)씨 이야기를 담은 다큐다.

27일 개봉 다큐 ‘그림자꽃’ 이승준 감독
세월호 다큐로 지난해 美아카데미 후보
신작선 원치 않게 탈북민 된 김련희씨 조명
북미 최대 다큐영화제 핫독스 초청돼 호평

김련희씨 사연 보도한 CNN "비통하다" 

‘그림자꽃’은 2011년 자신의 간 치료를 위해 중국의 친척집에 갔다가 브로커에 속아 남한에 오게 됐다는 김씨의 삶을 좇는다. 평양에 의사 남편과 외동딸을 둔 김씨는 원치 않게 탈북민이 됐다며 한국 입국 직후 북한 송환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밀항, 여권 위조, 자살 시도까지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런 사연은 김씨가 2015년부터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북송을 호소하면서 CNN‧BBC·가디언 등 외신에도 보도됐다.

'그림자꽃'은 10년간 남한 사회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평양시민 김련희씨의 사연을 좇았다. 제목은 “본래 꽃이 가져야 할 향도 색도 없는” 그림자 같은 꽃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가족이 없는 곳에 홀로 있는 김련희 씨의 쓸쓸함을 담았다. [사진 엣나인필름]

'그림자꽃'은 10년간 남한 사회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평양시민 김련희씨의 사연을 좇았다. 제목은 “본래 꽃이 가져야 할 향도 색도 없는” 그림자 같은 꽃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가족이 없는 곳에 홀로 있는 김련희 씨의 쓸쓸함을 담았다. [사진 엣나인필름]

지난 21일 중앙일보에서 만난 이 감독은 “저희 어머니가 평양 출신이기도 하고, 남북 분단 문제는 다큐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이 있었다”면서 “대한민국 다큐 감독들은 북한 사람들을 촬영할 수가 없다는 게 치명적이다. 그러던 중에 김련희씨 기사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2015년 8월 김씨가 생계를 위해 일하던 경북 영천 플라스틱 재생공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첫 인터뷰 땐 감정이 격앙돼 펑펑 울더군요. 그 고통의 깊이가 어마어마하구나. 이 작품을 언제 끝내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아니어서 시간이 흐르면 많은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이후 4년간 카메라를 들었다. 남한 국민이 된 김씨가 계속해서 북한에 가려 하면서 간첩으로 기소되고 법무부 보호관찰 대상자가 돼 출국을 금지당한 과정도 그렸다. 베트남대사관에 무작정 찾아가 망명 신청을 하고, 평창동계올림픽에 온 북한선수단에 사정하는 김씨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만 흘린다.

"남북 모든 문제 정치·이념적인 것으로 변질" 

핀란드 다큐 감독 미카 마틸라의 도움으로 평양에 사는 김씨 딸과 남편의 일상도 다큐에 담았다.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 성사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2016년 겨울, 2017년 가을 두 차례 찍은 평양 장면을 김씨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헤어질 때 10대였던 김씨의 딸은 어느새 직장인이 됐다. 평양에 간 재미교포 지인을 통해 김씨와 가족 간에 페이스북 화상통화가 예기치 않게 이뤄지는 순간도 다큐에 나온다.
“엄마 언제 오느냐”는 딸에게 기약 없는 답변을 반복하는 김씨의 무너져가는 눈빛까지 이 감독은 놓치지 않았다. 이 감독 자신도 10대 딸을 둔 아빠였다. “얼마나 억울할까. 다신 안 오잖나. 애가 커나가는 시간은. 가족은 같이 부딪히면서 밥도 먹고 싸우기도 하면서 커가는 건데 그런 걸 못 봤으니까. 뭐로도 보상이 안 되는 것”이라면서다.

평양에 두고 온 김련희씨 남편과 외동딸 사진. 다큐엔 김련희씨가 중국 휴대폰으로 평양의 딸과 통화하며 울먹이는 장면도 나온다. [사진 엣나인필름]

평양에 두고 온 김련희씨 남편과 외동딸 사진. 다큐엔 김련희씨가 중국 휴대폰으로 평양의 딸과 통화하며 울먹이는 장면도 나온다. [사진 엣나인필름]

연출의 변에서 그는 “남북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정치적, 이념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한 개인의 소망조차 그 틀 안에서 판단되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남북이 서로 다른 것만 찾고 비판하며 60년 넘게 지내왔는데 이제 좀 비슷한 것을 찾읍시다, 그런 걸 보여주려는 마음도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가 끝나는 시점은 어떻게 정했나.  
“해피엔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하고 최고조였다. 가겠구나, 조만간. 그랬는데 김련희씨의 그 희망이 꺾어졌다. 그런 다음에도 희망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이게 현실이라면 대한민국 사회가 좀 주목해볼 시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2019년 봄 보충촬영까지 마쳤다.”

오스카 간 세월호 다큐 960만 조회 "김련희씨도 알려지길"

지난해 ‘부재의 기억’은 아카데미 수상은 불발됐지만, 유튜브에서 지금껏 960만회 넘게 조회되며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문제들을 재조명했다. 제작에 참여한 미국 비영리 미디어그룹 ‘필드 오브 비전’과 이를 공유한 미국 매체 ‘뉴요커’ 계정 등을 통해서다.

이승준 감독은 “1993년에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를 북으로 송환했고, 2000년에도 63명이 정치적 결단으로 북송했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조금 통이 클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련희씨 하나 올려보내면 탈북자 중에 가겠다는 사람이 또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 가서 체제 선전에 이용될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더라”면서 “대한민국이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한다. 오는 과정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조사해서 돌려보내고. 가서 체제 선전에 이용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는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실 정치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순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야지 무엇이든 시작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승준 감독은 “1993년에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를 북으로 송환했고, 2000년에도 63명이 정치적 결단으로 북송했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조금 통이 클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련희씨 하나 올려보내면 탈북자 중에 가겠다는 사람이 또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 가서 체제 선전에 이용될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더라”면서 “대한민국이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한다. 오는 과정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조사해서 돌려보내고. 가서 체제 선전에 이용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는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실 정치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순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야지 무엇이든 시작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작에 이어 2019년 완성한 ‘그림자꽃’도 그해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개봉지원상 2관왕에 오른 바 있다. 지난해 북미 최대 다큐영화제인 캐나다 ‘핫독스’에도 초청돼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를 바라는 한 여성의 욕망에서 한반도의 복잡한 정치, 선전, 역사 속에 놓인 더 큰 욕망을 관찰하게 된다”고 호평받았다. 이 감독은 “지난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 다큐영화제에서 미국 프리미어를 하고 관객과의 대화도 했다”고 말했다.

“다큐가 해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저는 듣는 역할이죠. 김련희씨와도 촬영하지 않을 때 스태프들과 같이 밥 먹고 TV 보며 북한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더 많았어요. 다큐가 개봉해서 다시 한번 이슈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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