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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하나, 수만명 맞먹는다"…尹·洪 유리한 여론조사 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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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왼쪽부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 유승민 전 의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의원. 뉴스1

왼쪽부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 유승민 전 의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의원. 뉴스1

국민의힘은 지난 8월 말 세부적인 경선 규칙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 경선을 시작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이른바 ‘경선 버스’에 태우는 데만 집중했지, 정작 중요한 여론조사 방법 등에 대해선 후보자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개문발차(開門發車)'한 것이다.

경선 초기 여론조사 ‘역선택’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국민의힘 경선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정홍원)는 지난 9월 5일 여론조사 문항에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지 않는 대신 3차 경선 때 단순 선호도 조사가 아닌 경쟁력 조사를 한다는 큰 틀의 방향만 제시해 갈등을 봉합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그 후로 두 달 가까이 3차 여론조사 문구를 어떻게 할지 확정하지 않았다. 결국 당원 투표와 똑같은 비중으로 최종 후보 선출에 50% 반영되는 국민 여론조사(11월 3~4일)를 여드레 앞둔 26일에야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경선 막판 승부가 접전 양상으로 흐르면서 국민의힘 안팎에선 “여론조사 방식이 이번 경선의 최대 뇌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홍준표 의원은 지난 23일 “끝까지 기상천외한 여론조사를 고집한다면 중대 결심을 할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①‘4지 선다’냐, ‘양자 대결 4번 반복’이냐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은 서로 다른 여론조사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윤 전 총장 측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지사와 국민의힘 경선 후보 4명을 각각 따로 따로 맞붙이는 ‘양자 대결’을 원하고 있다. 쉽게 말해 후보 4명에 대해 ‘이재명 대 ○○○’를 각각 조사하자는 것이다. 반면 홍 의원 측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맞설 국민의힘 후보로 다음 중 누가 가장 경쟁력 있느냐’는 식으로 묻는 ‘4지 선다’ 대결을 원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두 후보 측이 원하는 게 엇갈리는 이유는 핵심 승부처를 서로 달리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2차 경선 때 당원 투표에선 윤 전 총장이 앞섰고, 여론조사에선 홍 의원이 앞섰다는 게 중론이다. 전·현직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을 다수 확보한 윤 전 총장으로선 당원 투표에서 차이를 벌리고 여론조사에서는 격차를 줄이는 방식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공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가상 양자 대결에선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의 차이가 크지 않다. 반면 당원 투표에서 상대적으로 쫓아가는 쪽인 홍 의원 입장에선 여론조사에서 격차를 벌리는 방식이 낫다고 보고 있다. 당원 투표에서 설사 지더라도 여론조사에서 격차를 늘리면 승산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열이 명확하게 드러날 ‘4지 선다’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②변별력과 계산법 문제

직관적이고 단순한 방식인 ‘4지 선다’에 비해 양자 대결을 네 번 조사하는 방식은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양자 대결 방식으로 하면 네 후보 모두 이재명 지사와의 격차가 크지 않아 좁은 구간에 다 몰려 있다”며 “변별력을 어떻게 줄 거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양자 대결 방식의 경우 그동안 대선 경선에서 쓰지 않은 방식이라 그 결과를 어떻게 반영할지도 정해진 게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익명을 요청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양자 대결을 네 번 물어서 숫자가 나오면 그걸 어떻게 환산할지가 가장 큰 숙제”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식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 식을 놓고도 논쟁이 이어질 수 있어서 매우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

③역선택과 재질문 문제

국민의힘은 이미 ‘역선택’ 문제를 놓고 극한 갈등을 겪었지만 마지막 여론조사를 앞두고 이 문제가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고 있는 윤 전 총장 측은 “4지 선다형은 이재명 지지자가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방식”(권성동 의원)이라며 역선택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지난 22일 선관위 소위원회 회의 때 윤 전 총장 측에서 ‘4지 선다 방식으로 하되 질문 전에 먼저 정권 교체에 찬성하느냐고 묻자’는 절충안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홍 의원은 “이미 논의가 끝난 역선택 문제를 다시 거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선관위 입장에서도 이미 두 달여 전 결론을 낸 역선택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어서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처음 물었을 때 ‘없음’ 또는 ‘모름’이라고 답한 경우 다시 질문을 할지 말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일반 여론조사의 경우 ‘없음’이나 ‘모름’으로 답한 경우도 따로 통계 처리를 한다. 하지만 당내 경선 여론조사 때는 이런 조항이 없다. 그래서 보통 한두 번 재질문을 통해 답을 유도한다. 당원 투표에도 ‘없음’ 항목이 없기 때문에 합산하기에도 좋은 방식이다. 문제는 이렇게 할 경우 유불리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배철호 위원은 “재질문을 몇 번 할지가 숨은 쟁점이 될 수 있다”며 “처음에 없음이나 모름으로 답하는 경우는 대체로 중도층이나 무당층이기 때문에 재질문은 상대적으로 홍준표 의원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 때는 재질문을 한 번 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1대1 맞수토론’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1대1 맞수토론’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④“문구 하나가 당원 몇 만명 동원 맞먹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방식을 정하는 문제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론조사 1%포인트가 당원 수천 명과 마찬가지고, 여론조사 문구 하나가 당원 수만 명을 동원해야 하는 수준과 맞먹는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경선 규칙에 대해 말을 아끼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무엇을 결정하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예측가능한 방식이어야 한다”며 “정당정치나 당 역사 속에서 전례없는 방식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언론 인터뷰에서는 “완전 새로운 방식, 국민들이 들어본 적도 없는 방식을 내놓으면 큰일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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