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법률전쟁' 좋아 보이나, 미래산업 발목잡는 플랫폼 규제[Law談-구태언]

중앙일보

입력 2021.10.26 05:00

디지털 시장에서 국부 형성에 중요한 요소는 플랫폼 사업자를 육성해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를 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초(超) 연결-비대면-초 개인화’를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시장에서 다수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시장(Market)’의 역할을 하는 필수적 요소가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인 카카오가 기업 운영 방향성을 제시하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서울 시내의 카카오T 택시. 뉴스1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인 카카오가 기업 운영 방향성을 제시하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서울 시내의 카카오T 택시. 뉴스1

이 플랫폼의 가치를 일찍이 깨달은 미국은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1990년대부터 완화해 세계 디지털 시장을 주름잡는 거대 플랫폼 기업들을 육성해 냈다. 소위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로 대변되는 미국의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전 세계 기업 순위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EU(유럽연합)와 일본은 이들 미국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공세에 토종 플랫폼 기업들이 거의 전멸해 법률로 이들을 탄압하는 ‘법률 전쟁’을 치르고 있다.

디지털 시장에서 전 세계를 호령하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가 출현하는 이유는, 디지털 시장이 전 세계 국가에 동시 진입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는 초기에는 검색이나 메신저와 같은 유용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이용자 수를 늘린 후 점차 이용자들이 원하는 모든 서비스를 장악해 나간다. 그러면서 이용자들의 빅 데이터를 장악해 고객 이탈을 막는 ‘락인(Lock-in)’ 전략을 취하게 된다.

세계 디지털 시장을 선점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는 결국 전 세계의 콘텐트(Content), 국민의 개인정보(Privacy), 그리고 해당 서비스와 관련된 금전(Money)을 의미하는 ‘CPM’을 장악하게 된다. 특히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게 한 국가의 디지털 시장을 장악당하는 경우 해외 플랫폼 사업자가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로 인해 CPM이 해외로 이전돼 결국 해당 국가의 데이터와 국부가 특정 해외 국가로 빠져나가고, 그 국가는 ‘좀비 국가’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국가의 빅데이터에서 CPM이 빠져나가 영혼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갖지 못한 좀비 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 내에서 생산되는 콘텐트와 개인정보, 관련 자금이 다수의 해외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흘러 들어가 국가 경제 주권의 미래가 위험해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회나 정부는 국내의 플랫폼 기업을 역차별하고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도 소위 ‘플랫폼 국정감사’라 불릴 만큼 플랫폼 기업들을 불러 야단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 플랫폼 기업들이 한국의 미래 경제 주권을 지켜주는 첨병 역할을 한다는 분석과 격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럽은 미국의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CPM을 빼앗기고, 이를 막을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공정거래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소위 구글세, 저작권법을 무기로 하여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일본은 법률 전쟁을 벌이지는 않지만, 자국 경제가 미국의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장악당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새로운 서비스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스타트업도 함께 발전해야만 한다. 거대한 물의 압력을 버텨내는 댐을 살펴보면 큰 돌과 작은 돌, 모래와 진흙이 골고루 존재하여 서로 각자의 역할을 맡아 힘을 합쳐 거대한 물의 압력을 버텨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내 거대 플랫폼 사업자로서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기업들이 메꾸지 못하는 빈 곳들을 각종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맡아 이를 메우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수월하게 거대 지배적 플랫폼의 공세를 막아 국내의 국부와 데이터들을 수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감사 대상기관 종합감사에 출석,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감사 대상기관 종합감사에 출석,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그러나 한국은 글로벌 선진국에서 모두 가능한 중요 서비스들이 규제에 묶여 시도해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원격 진료와 같은 의료 산업을 혁신할 수 있는 서비스부터 주택 공유, 자동차 공유, 주방 공유와 같이 과잉 공급을 줄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는 한국에서 형사 처벌될 수 있는 금지 산업이다. 이와 같은 규제를 만들어 온 주역인 정부와 국회도 궁여지책으로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개선을 시도해 보고 있지만, 주무 부처들의 규제 완화에 대한 반대는 철옹성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것은 “혁신 산업은 전통산업과 상생방안을 마련해 와야 한다”는 논리다. 혁신 스타트업이 상생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는가? 기술의 발전으로 신 기술을 채택한 세력이 구 세력을 무찌르고 가족과 재산을 빼앗아 온 것이 역사의 현실이고 우리는 외세에 의해 35년간 주권을 빼앗긴 쓰라린 경험마저 갖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관치 산업의 정점에 서서 경쟁 상대가 되고 있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대 플랫폼과 싸워야 하는데 정부와 싸우고 있는 우리 스타트업들에게 마음껏 활약할 기회를 주자. 새로운 시대의 생산 수단을 만드는 혁신 산업과 경쟁하지 못한 전통산업의 이주 대책은 정부와 국회가 수립해야 한다.

로담(Law談) 칼럼 : 구태언의 Tech & Law
기술혁신의 시대에 법 규제는 어떤 철학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전통 산업과 혁신가들의 갈등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떻게 해법을 준비해야 하는지 바람직한 관점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구태언 변호사가 중앙일보 로담(Law談)에서 디지털 칼럼 '구태언의 Tech & Law'를 새로 연재한다. 본인 제공

구태언 변호사가 중앙일보 로담(Law談)에서 디지털 칼럼 '구태언의 Tech & Law'를 새로 연재한다. 본인 제공

※ 구태언 법무법인 린 테크앤로우 부문장(대한특허변호사회 회장)/대한변협 지식재산권·IT 전문변호사/벤처기업협회 자문위원/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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