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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왕치산을 버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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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 6월 중국 서북부 옌안(延安)시 교외의 캉핑(康平)촌 토굴을 찾았다. 젊은 왕치산(王岐山·73) 사진이 보였다. 안내원은 당시 시진핑(習近平·68) 중국 국가주석이 왕치산 국가부주석과 한 차례 여기서 만났다고 귀띔했다. 둘은 2012년 권력 서열 1위와 6위로 다시 만났다. 반(反) 부패 캠페인을 주도했다.

한국에서도 왕치산은 ‘소방대장’으로 유명하다. 금융위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부패 척결까지 능란한 해결사여서다. 2017년 당 대회에서 ‘칠상팔하’(67세 잔류, 68세 은퇴)에 걸려 은퇴했다. 이듬해 3월 의전 서열 8위의 국가부주석으로 부활했다. 이후 낮은 자세를 보이며 자중했다. 최근 잇단 뉴스가 왕치산을 불러냈다.

이달 2일 푸정화(傅政華) 전 사법부장(장관)이 체포됐다. 중국에서 거물의 체포는 윗선을 노린다. 공안·사법을 총괄하는 정법위 전·현직 1인자 멍젠주(孟建柱)·궈성쿤(郭聲琨)을 예상했다. 곧 푸정화의 베이징 공안국 부국장 근무와 왕치산의 베이징 시장 임기가 겹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왕치산(앞줄 오른쪽) 국가부주석이 과거 7차 당 대회 개최지를 방문해 촬영한 사진. 옌안 캉핑촌 토굴에 걸려있다. 신경진 기자

왕치산(앞줄 오른쪽) 국가부주석이 과거 7차 당 대회 개최지를 방문해 촬영한 사진. 옌안 캉핑촌 토굴에 걸려있다. 신경진 기자

13일 중앙기율위는 중앙순시조가 25개 금융기구 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현대판 암행어사가 출두한 격이다. 왕치산은 금융 부총리를 역임했다. 금융권은 시진핑 1기 반부패 무풍지대였다.

20일 중국에서 뉴스 작성에 인용할 수 있는 ‘화이트 리스트’가 발표됐다. 당국이 보증한 1358개 매체가 열거됐다. 2016년보다 4배 늘어난 숫자다. 유독 한 매체가 빠졌다. 언론인 후수리(胡舒立)가 창간한 ‘차이신왕(財新網)’이다. 권력 비판도 거침이 없었다. 후수리의 뒷배는 왕치산이다.

왕치산의 위기는 지난해 10월 둥훙(董宏) 중앙순시조 전문위원의 낙마부터 드러났다. 둥훙은 왕치산의 집사였다. 지난해 런즈창(任志强) 전 위안화(遠華) 그룹 이사장도 낙마했다. 코로나19 직후 권력자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글을 발표한 뒤다. 법원은 부패 혐의를 씌워 18년 형을 선고했다. 런즈창도 왕치산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왕치산은 투항했다. 올해 4월 보아오(博鰲) 포럼에서다. “내 역할은 임시 사회자다. 임시 사회자 역시 꽤 중요하다. 시진핑 주석의 치사 순서를 알려서다. 우리 중국, 우리 주석에 대한 높은 존중을 보여준다.” 몸을 바싹 낮췄다.

내년 가을 중국판 대선인 20차 당 대회가 열린다. 권력 재분배가 시작됐다. 5년 전에는 쑨정차이(孫政才) 정치국 위원이 낙마했다. 다시 현역 정치국 위원 낙마설이 나돈다. 공고진주(功高震主·공이 높으면 황제를 불안하게 한다)라고 했다. 왕치산은 무탈히 하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