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역할을 모색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경선 관련 언급이 부쩍 잦아졌고, 선대위 구성을 염두에 둔 발걸음이 빨라졌다. 당 안팎의 눈치를 보며 미뤄뒀던 당내 인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경선이 시작된 후 한동안 이 대표는 관련 발언을 최소화하는 등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대신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과 관련해 1인 시위를 하는 등 총구를 외부로 돌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당내 후보들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서며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전두환 발언’에 대해선 “선을 긋겠다”고 했고, 이어진 ‘개 사과’ 논란에 대해선 SNS에 “참담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의 사과가 있기 전)당 지도부 차원에서 ‘전두환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전달했다”고 귀띔했다. 이 대표는 최근 경선 토론에서 후보들 간 난타전이 벌어지자 라디오 인터뷰에서 “못 볼 걸 본 것 같다”며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11월 5일 후보 확정 뒤 발족될 당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도 이 대표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24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찬 회동을 했는데, 김 전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선대본부를 어떻게 구성할지 이 대표의 생각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재 풀에 대해서 의견교환을 했다”면서도 구체적 방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당내에선 “후보 선출 후 선대위를 꾸리면 구성에 자연히 후보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으니 사전 조율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 대표는 25일엔 5개월 간 공석으로 뒀던 지명직 최고위원에 윤영석 의원(경남 양산갑ㆍ3선)을 임명했다. 윤 의원은 앞서 6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이 대표와 경쟁했다가 예비경선에서 탈락했는데, 당내에선 상대적으로 중립ㆍ온건파로 꼽힌다.
윤 의원이 임명된 지명직 최고위원직은 당초 이 대표가 국민의당과의 합당을 염두에 두고 비워둔 자리다. 하지만 합당이 물 건너가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독자 출마 선언이 유력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현재 안 대표의 행보를 보면 (국민의당에 대한)배려가 가능하지 않은 시점인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표는 당 지도부 산하에 ‘국민검증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에 김진태 전 의원을 임명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8월 당내 후보들의 네거티브 대응 등을 위한 국민검증단 설치를 주장했지만 당시엔 일부 최고위원들이 "윤 전 총장 등 특정 후보에 대해 공격의 빌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출범에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최근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등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관련된 의혹이 계속 제기되면서 상시적 검증위 설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대장동 TF가 지금까지 발굴한 여러 문제점을 바탕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대선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국민검증특위로 확대개편할 것”이라며 “과거 의정활동 경험이나 수사 경험 등이 있는 김 전 의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증특위는 대장동 등 이재명 후보와 관련한 의혹을 파헤치는 역할을 하게될 것”이라며 “당내 후보에 관한 걸 다루는 건 아닌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성친박으로 과거 인사청문회 등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날을 세웠던 김 전 의원의 이력 때문에 윤 전 총장 측에선 “김 전 의원을 단장으로 내세우는 게 맞느냐”는 불편함도 감지됐다. 다만 지도부 관계자는 “(김 전 의원에 대해)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에서 특위 출범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