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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마지막 시정연설…1만1300자중 자화자찬이 7800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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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수 있다는 낙관과 긍정의 힘으로 위기를 헤쳐왔다…세계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경제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장연설에서 지난 4년반동안의 국정운영, 한국 경제의 현 상황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다.

이날 연설은 임기를 6개월여 남겨둔 문 대통령의 마지막 시정연설이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604조 4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당부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사실상 자신의 성과를 홍보하는데 할애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시정연설 키워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시정연설 키워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날 연설문 1만 1300여자의 중 예산안 처리 당부에 앞서 배치한 성과 홍보 관련 내용은 8200여자에 달했다. 이중 긍정적 내용은 7800자 분량이었던 반면 한계를 인정한 부분은 400자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제시하면서 ‘위기’와 이에 대응하는 ‘회복 및 극복’이란 말을 각각 33차례씩 반복했다. 이날 연설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들로,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위기 극복’을 이번 정부의 최대 성과로 내세우고자 한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예를 들어 “임기 내내 국가적으로 위기의 연속이었다”며 북한의 도발 상황, 일본의 수출규제와 공급망 재편, 코로나 등을 제시한 뒤 “판을 바꾸는 대담한 사고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며 더 큰 도약을 이뤄냈다”고 자평하는 형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위해 입장하며 박수를 받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위해 입장하며 박수를 받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성과가 없었던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평화의 문을 여는 반전의 계기로 삼았다. 3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상 최초의 북ㆍ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며 평화의 물꼬를 텄다”고 했고,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선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이 자립하는 역전의 기회로 바꾸었다”고 포장했다.

방역에 대해선 “세계적 코로나 위기 속에서 K방역은 국제표준이 됐으며, 대한민국이 방역 모범국가로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코로나 대응에 대해서도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에 모든 역량을 쏟았다. 전례 없는 확장재정을 통해 국민의 삶과 민생을 지키는 버팀목 역할을 했고 빠르고 강한 경제회복을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성과를 소개하면서 경제(32회), 지원(27회), 고용ㆍ일자리(18회), 성장(8회) 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반면 분배(0회), 평등(1회) 등 정부 초기 관심사와 관련된 말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40분에 달한 연설에서 나온 자성이나 반성이 담긴 내용은 한 단락에 불과했다. 현 정권의 아킬레스 건으로 꼽히는 부동산과 불공정 이슈였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부동산 문제는 여전히 최고의 민생문제이면서 개혁과제”라며 “더욱 강한 블랙홀이 되고 있는 수도권 집중현상과 지역 불균형도 풀지 못한 숙제”라고 말했다. 부동산 실패를 인정한 말이지만, 지난 5월 취임 4주년 기자회견 때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죽비를 맞은 것”이라고 했던 것에 비해 수위가 낮아졌다.

문 대통령은 이어 “불공정과 차별과 배제는 우리 사회의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며 “미래 세대들이 희망을 갖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마지막까지 미해결 과제들을 진전시키는데 전력을 다하고, 다음 정부로 노력이 이어지도록 하겠다. 국회도 함께 지혜를 모아달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매번 주요 성과로 내세워왔던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아직 대화는 미완성”이라며 경색 국면을 돌파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관련 언급을 줄이면서 통일ㆍ북한(각 0회), 남북ㆍ한반도(각 1회) 등 관련 단어도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2022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2022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대장동 문제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서도 별 말이 없었는데, 이와 관련한 언급이 없었던 건 이번 시정연설이 처음이다.

연설 내내 ‘대장동 특검’ 수용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었던 국민의힘은 연설이 끝난 뒤 “고장난 라디오처럼 자화자찬만 했다”(허은아 수석대변인)고 비판했고, 정의당은 “자화자찬 K시리즈에 가려진 K불평등은 외면한 연설”(이동영 수석대변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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