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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고려청자는 누가 만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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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우리는 고려청자를 대단한 문화유산으로 자랑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누가 만들어 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그 기술이 장인들의 집안 내에서만 전수되다가 대가 끊겨서 소멸하고 말았다고 하는 것은 흔히 듣는 이야기다. 고려청자를 만들어낸 훌륭한 발명가와 기술자들이 누구였고 과연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들은 단순히 오랜 세월이 흘러서 잊힌 것이 아니라, 아마 그 당시에도 사회적으로 알려지거나 존경받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고려청자와 대조되는 예로 영국의 웨지우드 도자기가 있다. 그 회사는 1759년에 설립됐으며, 당시 만 30세도 안 되었던 조사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가 설립자였다. 웨지우드는 잉글랜드 시골에서 가난한 도공의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 앓은 홍역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면서도 도예에 대한 집념을 키웠다. 기존의 도자기를 개선하는 새로운 공법을 손수 개발하고 신제품을 생산하여 젊은이가 자기 이름을 당당히 걸고 물건을 팔았다.

청자·금속활자 발명가 잊혀져
장인들을 천시해온 우리 전통
사업주보다 기술자가 중요해
모든 분야의 전문가를 아껴야

웨지우드는 독학으로 배운 과학지식을 응용해보는 실험도 거듭하며 갈수록 훌륭한 도자기를 구워냈다. 그러면서 과학 연구도 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사람이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누리며 학계에서도 존경받게 됐다. 도자기 굽는 가마 속의 높은 온도도 측정할 수 있는 특수 고열용 온도계를 고안한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그는 특유한 기술과 예술적 감각을 인정받아 영국 왕실의 공식 도예가로 지정됐으며 러시아 황실에까지 도자기를 공급하는 등 국제적 명성을 떨쳤다. 웨지우드 도자기가 우리 고려청자에 비할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 훌륭함과 그것을 창조해낸 사람의 위대함을 그 당시 영국에서는 제대로 알아줬던 것이다. 그렇게 기반을 다졌던 웨지우드 회사는 2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신제품을 만들어내며 번창하고 있고, 웨지우드는 영국이 자랑하는 위인으로 굳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장인을 천대하여 하인 부리듯이 이용만 했지 그 사람들의 업적을 알아주고 아끼는 문화가 없었던 듯하다. 고려청자뿐 아니라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는 금속활자 등 여러 기술적 업적을 보면, 그 기술을 누가 개발했다는 이름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알려진 것이 장영실 정도다.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이 어찌 그 한 사람뿐이었을까. 수많은 인재가 크게 작게 거들지 않으면 새로운 기술은 개발될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세종대왕이 훌륭해서 장영실을 시켜서 이것저것 발명하도록 했다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는 자랑삼는 역사도 진짜 내용은 잘 모르고 있다. 이러한 무지함을 벗어나고자 근래 일부 역사학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예로 전북대 소속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서 총괄하여 현재 10년 이상 추진해온 작업이 있다. 이 연구의 결과는 30권짜리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전집으로 출간 중이며, 지금까지 발간된 책자를 필자도 영국에서 연구실에 소중히 모셔놓고 있다.

그뿐 아니라 국립과학관이나 기상박물관등 곳곳에서 한국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를 알아내어 보전하자는 노력이 일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역사학자들의 값진 노력과 성과도 언론이나 일반인의 주의를 별로 끌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옛날이야기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이 극도로 발달하여 삼성이나 LG가 스마트폰, 평면스크린 TV 등이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지만 우리 국민은 그것이 누구의 공로인지 전혀 모른다. 삼성 회장이 누구인지는 다들 알지만 삼성전자에서 기술을 발달시킨 천재적 공로자들이 누구인지 일반인은 알 수가 없으며,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근래에 우리 경제는 기술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여러 가지 기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20세기 말부터 조선·제철·자동차 등 그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게 됐다. 그런데 그런 업적을 평할 때 다들 들먹거리는 것은 사업주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사업을 잘할 수 있게 정책을 세워준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다. 왜 기술적 성취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을 관리해준 사람들만 유명해지고 존경받는 것일까.

스포츠를 보면 정반대이다. 실제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유명하지 그 선수를 잘 관리하여 돈을 버는 구단주는 유명하지 않다. 축구팬들은 손흥민을 보고 열광할 뿐, 그가 속한 토트넘의 구단주는 누구인지도 대개들 잘 모른다.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고 타당한 것 같다.

무언가 잘할 줄 아는 전문가들을 존경하고 아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연예계나 스포츠를 넘어서 모든 분야, 특히 기술분야에 대하여 형성될 필요가 있다. 재주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일에 무한정 헌신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들이 이룩해주는 기술적 전통은 상황이 좀 악화하면 고려청자처럼 사라져버릴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고려청자의 우를 이제 그만 범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