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셋 코리아

누리호 발사가 남긴 위대한 유산

중앙일보

입력 2021.10.25 00:39

업데이트 2021.10.25 01:12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광형 KAIST 총장·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

이광형 KAIST 총장·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

1988년 가을로 기억한다. 어느 날 KAIST 전자공학과 최순달 교수가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말했다. “우리도 인공위성을 쏩시다. 내가 여름 방학에 영국 서레이대학 가서 일주일 공부해 봤는데, 별거 아닙디다.” 나를 포함한 젊은 교수들은 터무니없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최 교수를 포함한 교수진의 전공은 인공위성과 거리가 멀었다. 최 교수는 학생들을 파견해 배우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게시판에 모집 공고문을 붙이는 것이었다. 모집 대상은 KAIST 3학년생이었다. 생소한 분야라 지원자가 있을지 걱정했다. 다행히 도전정신이 충만한 학생들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9명이 선발됐다. 이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전사들이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과학기술 뒷받침 없인 번영 없어
우수 인력 키우는 우대정책 절실

영국에 도착한 학생들은 빠른 속도로 위성 제작 기술과 위성 통신 기술을 배웠다. 대학원생도 아닌 대학생들이 어떻게 그런 공부를 하느냐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드디어 위성 제작 단계가 됐다. 영국 현지에서 모든 부품을 사서 위성을 조립하고 작동 연습을 했다. 그다음에는 모든 부품을 가지고 한국에 왔다. 영국에서 해봤던 그대로 조립했다.

이제 하늘로 쏘아 올릴 차례다. ‘우리별 1호’라 이름 붙였다. 1992년 프랑스 발사체에 실어 올렸다. 우주로 올라간 우리별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대한민국이 위성 보유 국가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어 발사된 우리별 2호는 영국에서 배운 지식을 응용해 한국에서 만들었다. 3호는 완전히 우리 손으로 설계해 제작했다.

우리별의 기술 도입 방식은 대한민국 기술 도입의 전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실용 위성 아리랑 1호도 처음에는 미국 현지에 가서 제작했다. 그 뒤에 2호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 독자 기술로 소화 흡수했다. 고속열차 KTX도 처음에는 프랑스에서 수입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첨단기술을 처음에는 사지만, 두 번 다시 사지 않는 나라가 됐다.

이번에 발사한 우주 발사체 누리호도 마찬가지다. 2009년 나로호를 발사할 때는 1단 로켓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도움을 받았다. 두 차례의 실패 경험을 딛고 2013년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기술로 할 차례였다. 우리는 순수 국산 기술로 제작한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해 700㎞ 근처 우주에 올렸다. 마지막에 위성을 예정된 궤도에 올리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것은 작은 일로 보인다. 가장 어려운 1단, 2단, 3단의 엔진을 정상적으로 점화시키고 원하는 고도에 올린 것이다. 로켓 기술은 군사 기술에 직결되기 때문에 선진국 견제가 심한 기술이라 더욱 값지다.

대한의 아들딸들은 한번 마음먹으면 결국 해낸다. 인공위성·KTX·원자력·반도체·자동차·전투기 기술을 배울 때 누구도 쉽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귀동냥해서 배우고, 곁눈질해서 배우고, 심지어 훔쳐보기도 했다는 에피소드가 수도 없이 많다. 이들이 기술을 개발할 때는 초대형 태극기를 걸어 놓고 마음을 다지는 일이 일반화돼 있다.

내년 출범할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애국심과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과학자들을 계속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 파격적 우대 정책으로 우수 인력이 몰려들게 해야 한다. 모든 것이 과학기술로부터 나오는 현대사회에 국가 평화·번영을 위한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느낌이다. 그동안 선진국 놀이터였던 우주에 우리도 이제 명함을 내밀었다. 북한이 쏘아대는 미사일도 별거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다음 달 외국 출장이 예정돼 있다.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꼭 말해줘야겠다. 만나는 해외 교포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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