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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과 영향 줄까봐 참다가···공무원 목숨 위협하는 직장 갑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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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통영해양경찰서 소속 A경장이 업무 소외를 힘들어하다 극단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측은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가 ‘미필적 고의로 직권남용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했다. 유족들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사망한 게 분명한데도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B씨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입사 후 성희롱과 갑질, 부당한 지시 등에 대해 신고를 했지만, 오히려 징계를 받았다. 지방노동위원회가 B씨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인정했지만 사내에서 따돌림은 계속되고 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근로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서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24일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공공기관 4명 중 1명은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에 노출됐다고 응답했다. A씨처럼 극단 선택에 이르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6일에도 인천경찰청 소속 30대 경찰관이 동료들을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2일에는 안성교육청 소속 공무원 C씨가 “내가 죽으면 갑질과 집단 괴롭힘 때문이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공공기관 괴롭힘 당사자 “참거나 모른 척 했다” 77%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달 7~14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중앙·지방 공공기관 종사자의 26.5%가 ‘있다’고 답했다. 고용이 안정적인 공공기관에 입사하고도 직장갑질 문제를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공공기관 근로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뒤 대응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진료나 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36.2%로 같은 질문에 대한 직장인 평균(29.8%)보다 높았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는 답변도 76.7%로 직장인 평균(72.7%)보다 높았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66.7%),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6.2%) 등을 꼽았다.

수도권 지역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 중인 D씨도 “같은 팀 상사 갑질로 스트레스가 극심하다”며 “주변에선 녹음하고 증거를 모아서 감사관실에 넘기라는 조언도 하는데, 인사 고과에 영향이 있을까 봐 섣불리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지난해 7월 ‘갑질금지법’ 개선을 촉구하는 모습. 뉴시스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지난해 7월 ‘갑질금지법’ 개선을 촉구하는 모습. 뉴시스

“신고하면 해결된다는 믿음 심어줘야”

직장갑질119 측은 “올해 1월에서 9월까지 접수된 이메일 1694건 중 공공기관 제보는 174건으로 전체의 10%를 넘었다”며 “상명하복과 위계질서가 강한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정부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갑질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경우 ▶피해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으로 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비밀누설 금지 ▶불리한 처우 금지 등을 이행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된다고 나와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현실에서는 ‘신고를 이유로 한 보복’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결국 극단적 선택이 발생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고하면 해결된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가해자는 회복하기 어려운 징계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도 조직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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