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영국'이 英여왕 버렸다, 55년만에 대통령 선출

중앙일보

입력 2021.10.24 15:30

업데이트 2021.10.24 15:33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군주로 모셨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국가 원수직에서 해촉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55년 만이다. 바베이도스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샌드라 메이슨(72) 총독을 첫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CNN 등이 22일 보도했다. 상원과 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당선된 메이슨은 여왕을 대신해 국가 원수에 오른다.

영국 식민지였던 바베이도스의 첫 대통령 샌드라 메이슨(오른쪽) 총독. 바베이도스가 수십년간 군주로 모셨던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국가원수직에서 해촉된다. AFP=연합뉴스

영국 식민지였던 바베이도스의 첫 대통령 샌드라 메이슨(오른쪽) 총독. 바베이도스가 수십년간 군주로 모셨던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국가원수직에서 해촉된다. AFP=연합뉴스

바베이도스 첫 여성 총리인 미아 모틀리는 선거가 끝난 뒤 성명에서 “이번 선거는 (공화국으로 가는) 국가의 여정에서 매우 중대한 순간”이라며 “우리는 우리 가운데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우리 자신의 가치를 상징하는 매우 열정적인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선언했다. 메이슨 당선인은 영국 독립 55주년인 내달 30일 취임식을 갖고 4년의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29년 만에 英 여왕 지운 식민지국

1625년부터 영국 치하에 있었던 바베이도스는 인구 30만도 안 되는 작은 국가다. 식민지 시절 영국 농장주와 흑인 노예들이 이곳으로 이주했고, 현재 인구의 90%가 아프리카계다.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입헌군주국으로 존속해 엘리자베스 2세를 군주로 섬겼다. 영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카리브해의 영국’이라고도 불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100만명이 찾았을 정도로 인기 관광지다. 세계 최고 부자 가수인 미국 팝스타 리한나가 이곳 출신이다.

영국의 옛 식민지국이 여왕을 국가원수에서 배제한 건 이번이 약 30년 만이다. 독립 후 입헌군주제를 폐지한 국가로는 가이아나(1970년)와 트리니다드토바고(1976년), 도미니카(1978년) 등이 있고 지난 1992년 모리셔스가 마지막이었다. 바베이도스도 1998년부터 공화국 전환을 추진했지만, 몇 차례 무산됐다. 그러다 메이슨 총독이 지난해 9월 의회 개원연설에서 “식민 잔재를 완전히 청산할 때”라며 왕정 폐지 계획을 발표했다.

최초 女 법률가서 첫 대통령으로

1998년 12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의장 시절 샌드라 메이슨이 마닐라의 인권 포럼에서 연설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1998년 12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의장 시절 샌드라 메이슨이 마닐라의 인권 포럼에서 연설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메이슨은 바베이도스 최초의 여성 법률가다. 19세이던 1968년 중등학교 교사로 취직한 뒤 투자은행 바클리즈에서 일하다가 1975년 신탁 관리 변호사를 거쳐 3년 후 바베이도스 여성 최초로 판사로 임용됐다. 1991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창설 멤버로 의장까지 지냈고, 카리브공동체(CARICOM) 위원을 역임했다. 베네수엘라 대사와 대법관까지 지낸 그는 ‘여성 최초’ 기록을 끊임없이 세웠다. 2014년엔 바베이도스인 최초로 영연방 사무국 중재재판소 위원이 됐고, 여왕의 추천에 따라 2018년 바베이도스 8대 총독이 됐다.

바베이도스의 이번 체제 전환은 국가 안팎으로 정치적 이득이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 국제분야 싱크탱크인 대서양위원회의 와짐 물라 박사는 로이터에 “작은 개발도상국에서 더 큰 정통성을 갖춘 국제정치 일원으로서 위상이 올라가고 현 정권도 더 단합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다른 옛 식민국들이 뒤따라 전환할 가능성에 대해선 “각국의 득실이 다르다”며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한편 바베이도스는 입헌군주제 폐지 후에도 영연방 국가로 남겠는다는 방침이다. 모틀리 총리는 “공화국으로 전환하기로 한 결정이 영국의 과거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영국 군주와의 관계가 지속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영국 왕실은 “(공화국 전환은) 바베이도스 정부와 국민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현재 호주와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12개 이상 국가의 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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