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바꿔야 한다” 이런 ‘이재용 신년사’ 언제쯤 나올까[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10.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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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이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1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1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글자 수로는 994자, 200자 원고지로는 여섯 장이 조금 넘는 분량이다. 느릿느릿 소리 내 읽어도 6~7분이면 충분할 듯싶다. 이 짧은 글을 완성하는 데 통상 두세 달이 걸렸다고 한다.

지난 2014년 1월 2일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 명의로 발표한 신년사 얘기다. 이 글은 고인이 그해 5월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 삼성 회장 자격으로 내놓은 마지막 대내외 메시지다.

이 회장은 이후 6년5개월여 간 투병하다 지난해 10월 25일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그는 삼성의 신경영을 지휘하면서 반도체와 스마트폰, TV, 디스플레이 등을 세계 1위에 올려놓은 ‘경제 거목’으로 불린다.

이건희식 메시지 경영의 요체  

재계에선 매년 초 오너경영인 명의의 신년사를 내놓는다. 뼈대는 단순하다. 임직원을 향한 새해 덕담이나 격려, 경기 전망과 사업 계획 및 경영 방침, 임직원 당부사항, 사회에 대한 책임·교감 등이 순서에 맞춰 매끄럽게 정리돼 있다.

삼성은 매년 초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신년 하례식에서 전문 성우가 신년사를 낭독하고, 영어·중국어·일본어 등으로 번역·전파해 내용을 공유했다고 한다. 그만큼 신년사는 이건희식 메시지 경영의 핵심 요소라는 얘기다.

이건희 삼성 회장(가운데)이 2014년 1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사장단 신년 하례식에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왼쪽),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오른쪽)의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이건희 삼성 회장(가운데)이 2014년 1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사장단 신년 하례식에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왼쪽),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오른쪽)의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이 회장은 생전에 이해가 쉬우면서도 간결한 표현을 즐겨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시대 인식과 통찰력을 보여줬다. 사회공헌 선도(1994년), 디자인 경영 선언(1996년) 등이다.

1990년대 초 삼성 비서팀장을 지낸 정준명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이 전하는 말이다.

“신년사를 공개하기까지 두 달가량 준비했다. 최종 발표 전까지 문구를 숱하게 다듬었는데도, 이 회장이 아주 한참 뒤에 ‘그 표현은 조금 완곡하게 고쳤어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문구 하나하나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의 신년사는 삼성이라는 조직과 사회, 국가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다.”

2014년 이 회장이 제시한 화두는 ‘다시 한 번 바꾸자’였다. 모두에서 신경영 20주년의 성과를 격려하면서도, “신경영 20년간 글로벌 1등이 된 사업도 있고, 제자리걸음인 사업도 있다”며 “선두 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사업구조와 기술, 시스템 혁신을 주문했다. 또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리자”고 강조했다. 이날 신라호텔에서 열린 하례식 무대에는 ‘한계 돌파’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녹음 통해 “한치도 틀림없이 하라” 강조  

이 회장의 또 다른 경영 수단은 ‘반복 또 반복’이었다. 그는 당시 신년사에서 “지난 20년간 양(量)에서 질(質)로 대전환을 이루었듯 이제부터는 질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사업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나가자”고 당부했다.

그동안 양에서 질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는 격(格)을 높여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바로 직전인 2013년 6월 신경영 20주년에 맞춰 발표한 기념사를 재강조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녹음을 통해 자신의 발언을 임직원에게 공유하라고 지시했다. 원대연 전 제일모직 사장의 말이다. 그는 1993년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때 삼성물산 구주본부장 자격으로 현장에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에서 둘째) 올 1월 초 평택2공장을 방문해 연구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에서 둘째) 올 1월 초 평택2공장을 방문해 연구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그동안 여러 번 말을 했는데 아래로 전파가 안 됐다. 나의 말이 한 치도 틀림없이 전달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때부터 소형 녹음기로 이 회장의 육성을 녹음했다. 3주일 내내 폭포수 같은 격변을 쏟아냈다. 지독한 반복을 통해 변화와 쇄신을 주문한 것이다. 이른바 ‘녹음 경영’이 전문경영인 중심의 자율경영 체제로 바뀐 것은 3년여가 지나서다.”

2015년 이후 전문경영인 명의 신년사

삼성전자는 2015년 이후 전문경영인 이름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 부회장 명의의 신년사, 다시 말해 보다 응축된 이재용식 경영 메시지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재계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후 고용·투자 확대, 준법경영, 사회적 책임 강화 등을 강조하면서 조심스럽게 경영 보폭을 넓힐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편 이 부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 관장 등 삼성 일가는 25일 경기도 수원의 선영에서 이 회장 1주기 추도식을 열 예정이다. 삼성 사장단 중 일부만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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