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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건희 회장 1주기…‘승어부’ 다짐한 이재용 경영보폭 넓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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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 이건희 회장 49재를 지내기 위해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를 찾아 스님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 이건희 회장 49재를 지내기 위해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를 찾아 스님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의 1주기 추도식이 25일 경기 수원시 선영에서 치러진다. 유가족 중심으로 조용한 추모식이 예정된 가운데 그동안 ‘잠행’ 모드를 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보폭을 넓혀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수원 선영서 조용한 추도식 예정  

25일 재계와 삼성 등에 따르면 고 이건희 회장의 1주기 추모 행사는 코로나19 여파로 조촐하게 진행된다. 이날 경기 수원시 선영에서 예정된 추도식엔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과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삼성의 주요 경영진은 시차를 두고 묘소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측은 이날 회사 차원의 별도 행사는 예정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단 이 부회장이 1주기를 맞은 소회와 특별한 경영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어 주목된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고 이 회장 타계 후 ‘조용한 추모’ 기조를 이어왔다. 그는 가석방으로 출감한 후 지난달 초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 명작’ 전시가 열린 국립현대미술관과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이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기증품을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고용과 투자 확대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 출소 후 삼성은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4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주도하는 ‘청년희망 ON 프로젝트’ 간담회에 참석해 앞으로 3년간 4만 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녹록지 않은 대내외 환경

이 부회장과 삼성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당장 취업제한 조치로 경영 활동에 제약을 안고 있는 데다 삼성물산 합병 관련 의혹 등 2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또 12조원대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으로 홍라희 전 관장 등이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SDS 등 2조1500억원 규모(8일 종가 기준) 삼성 계열사 주식을 처분 신탁 계약을 했다.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는 리스크도 안고 있다.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각축전은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은 세계 D램 시장의 40%를 차지하며 ‘초격차’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선 갈 길이 멀다.

특히 대표적인 시스템 반도체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선 세계 1위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TSMC는 미국에 이어 일본에 반도체 공장 설립을 발표하는 등 지금까지 1000억 달러(약 117조원)대 투자 계획을 내놓고 앞서 달리고 있다.

“뉴 삼성 만들어 존경하는 아버지께 효도”

하지만 삼성전자는 미국의 제2파운드리 공장 부지 결정조차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이 이르면 다음 달 미국 출장길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공장 부지로 5곳이 검토되고 있지만 텍사스주 테일러시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테일러시 의회는 최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위한 세제 혜택과 용수 지원 등을 포함한 지원 결의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 부회장은 미국 정부 관계자, 기업인 등을 두루 만나 투자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투자·고용 방안 주요 내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투자·고용 방안 주요 내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삼성전자]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특집 기사를 통해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의 목표처럼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4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려면 (이 부회장이) 거침없는(ruthless) 면모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고용 확대, 반도체 생태계 조성 같은 큰 그림을 구상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그는 지난해 말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최후 진술에서 고 이 회장의 영결식 추도사에 나온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라는 표현을 언급하면서 “(회사를) 선대보다 크고 강하게 키우는 게 최고의 효도라는 말씀”이라며 “경쟁에서 이기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신사업을 발굴해 사업을 확장하는 것도 당연한 책무지만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 삼성에 대한 의지도 분명히 했다. 이 부회장은 “촘촘한 준법 시스템을 만들고, 산업 생태계가 건강해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 만들겠다”며 “국격에 맞는 새 삼성을 만들어 너무나도 존경하는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론 이 부회장이 그동안 12월 이뤄지던 임원 인사를 앞당기고, 조직 개편을 단행해 강력한 쇄신을 주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일부에선 이 부회장의 구속수감 기간 중 최소한의 인사만 이뤄진 만큼 주요 사업 분야에서 상당 폭의 임원 인사를 예상하기도 된다.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 [사진 삼성전자]

“책임경영 강화할 체질 개선 필요해”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전기자동차·인공지능·빅데이터·메타버스 등 4차산업혁명 시대에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삼성으로선 위기이자 기회”라며 “이 부회장이 냉철하고 과감한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주도해 우선 파운드리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사업을 키우고, 연구개발 인재를 육성하는 등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걸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 부회장 구속 여파로 총수 부재 상황에서 장기적인 의사 결정이 ‘올스톱’ 되는 삼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삼성전자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이사회가 단기 실적 관리만 해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제 삼성은 CEO·이사회 등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방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며 “삼성이 글로벌 위상에 맞게 ESG(환경·사회적 가치·지배구조) 중 특히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이 부회장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10월 25일 78세로 별세했다.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해 신경영을 진두지휘하면서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가전사업 등을 세계 1위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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