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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실크로드 서라벌, 서역인 마음 사로잡았을 듯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류희림의 천 년 신라 이야기(7) 

경주엑스포 대공원 입구를 들어서면 ‘길 위에 길을 열다 코리아 실크로드’라고 적힌 거대한 실크로드 기념비를 만나 볼 수 있다.

신라역사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트를 선보이는 경주엑스포 대공원 입구에는 왜 하필 신라를 상징하는 다른 유물과 문화가 아닌 실크로드 기념비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관람객이 많다.

경주엑스포대공원 입구에 위치한 실크로드 기념비와 경주타워. [사진 경주엑스포]

경주엑스포대공원 입구에 위치한 실크로드 기념비와 경주타워. [사진 경주엑스포]

이외에도 82m 경주타워 전망 층 가운데 위치한 오아시스 정원은 실크로드 중 중앙아시아 사막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오아시스를 상징하는 콘셉트와 분위기로 자리해있고,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 내 ‘세계의 문’ 전시 콘텐트는 실크로드 선상에 있는 다양한 국가의 독특한 문의 모양을 모아 둔 형상이다.

이처럼 신라와 실크로드에 관련된 콘텐트가 경주엑스포 대공원 곳곳에 자리해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신라와 실크로드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신라는 한반도를 최초로 통일한 저력의 국가다. 신라가 전성기를 누리던 8세기 수도 서라벌은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이슬람 제국 바그다드, 당나라 장안과 함께 세계 4대 도시로 이름을 알렸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 내에 전시된 실크로드 상의 각국의 문의 모양을 모아둔 '세계의 문'.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 내에 전시된 실크로드 상의 각국의 문의 모양을 모아둔 '세계의 문'.

왜 신라 서라벌은 세계 4대 도시가 됐을까. 한반도를 통일한 업적은 우리 역사 속에 남은 대단한 것이지만, 전 지구적으로 본다면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신라, 특히 서라벌이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교역이다. 무역이 서라벌을 세계 속으로 이끈 힘이다.

동방의 작은 나라인 신라에 이역만리 나라의 물건과 이것을 가져온 외국 상인이 들르고, 신라에서 만들어진 물건과 문화는 국제무대로 나가 활발하게 교류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동양과 서양의 문명을 연결하던 통로였던 실크로드의 한쪽 끝 지점에 신라가 위치해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방법은 실크로드 이외에도 바닷길과 몽골을 중심으로 한 초원길 등 다양했지만, 앞서 나열한 세계 4대 도시의 위치를 다시 살펴보면 실크로드를 따라 형성된 만큼 세계 무역의 중심이 실크로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 서라벌에서 출발해 당나라 장안을 통해 중국대륙을 지나고 이슬람 제국 바그다드에서 중앙아시아의 문화를 만나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통해 동양의 문화가 유럽 깊숙이 퍼져나갔다.

경주엑스포대공원 경주타워 전망층에 전시돼 있는 '로만글라스' 복제품.

경주엑스포대공원 경주타워 전망층에 전시돼 있는 '로만글라스' 복제품.

일각에서는 중국에서부터 실크로드가 이어진다고 하지만, 발굴되고 있는 신라유물들은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 중국이 아닌 신라임을 보여준다. 신라시대에 조성된 고분이나 사찰 등에서 발견되는 아라비아와 페르시아풍의 공예품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이 대표적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로만글라스 유물이다. 유럽에서 사용되던 술병과 흡사한 모양과 터키색이라고 불리는 영롱한 푸른색은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특징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발굴된 보물 635호 ‘경주 계림로 보검’은 신라의 대외 교류를 보여주는 보물이다. 금선과 금 알갱이를 붙인 세공방법은 유럽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신라로 전파된 것으로 황금보검의 주인은 외국에서 들어온 보검을 소유할 만큼 높은 신분의 신라인으로 추정된다.

경주 괘릉과 서역인의 형상을 한 무인상 모습.

경주 괘릉과 서역인의 형상을 한 무인상 모습.

아랍 상인이 신라에 거주했다는 증거는 처용가나 경주 괘릉에 있는 페르시아인 석상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 38대 왕인 원성왕(785~798)의 왕릉인 ‘괘릉’에는 서역 인의 모습을 한 독특한 모습의 무인상이 자리해 있어 서역과의 폭넓은 교류를 증명한다.

페르시아 문헌에서도 신라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븐 쿠르다드비가 기록한 ‘도로와 왕국총람’에는 ‘신라는 황금이 풍부하고 물이 맑고 기후가 좋아 한번 방문하면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유물과 기록을 통해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무역에서 신라가 한 축으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크로드 속 신라를 기념하는 행사도 있었다. 지난 2013년에는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를 통해 실크로드의 두 축. 터키 이스탄불과 대한민국 경주를 오가는 문화교류 축제를 펼쳤고, 2015년에는 ‘실크로드경주 2015’를 경주엑스포 대공원에서 개최했다.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진 작품 ‘오징어 게임’이 해외의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듯 신라 문화 또한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에서부터 이어진 국제 교류의 역사를 가진 신라의 후손으로 지금의 글로벌 문화의 중심이 되기까지 기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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