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찾아온 불면의 밤, 50년만에 맨발로 걷던 날 생긴일 [맨발로 걸어라]

중앙일보

입력 2021.10.24 06:00

어린 개구쟁이 시절 시골에서 맨발로 뛰어 본 경험이나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맨발로 걸어 본 일 이외에는 아마도 맨발로 흙을 밟아 보거나 대지를 걸어 본 경험이 많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시라는 공간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또 어릴 때부터 신발이나 구두를 생활필수품으로 당연히 여긴 고정 관념 때문에 우리는 흙과 대지에서 멀어졌다. 이같은 대지와의 격리 그리고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현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을 지리산 자락의 심심산골 함양에서 지냈지만 맨발로 살아본 경험이 별로 없었으니까. 항시 검은 고무신은 기본이었다. 또 새 운동화는 추석이나 설 때 가장 반기는 선물이었다. 구두를 얻어 신는 것은 꿈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발은 어릴 때부터 살아감의 기본 명제이기도 하였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신발을 벗고 대지를 걷는다는 것은 애당초 상정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삶의 상궤를 벗어나는 비정상적 행위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2001년 4월의 봄날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맨발로 청계산을 오르내리는 노인의 이야기를 보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였다. 폴란드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1개 채널에서 한국 방송이 나와 볼 수 있었다.

간암 말기였던 노인은 한 달여의 여생을 선고받고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날 이후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생, 어린 시절처럼 뛰놀다 죽겠다’며 맨발로 청계산을 쏘다녔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맨발의 청계산 산행을 계속하면서기적처럼 건강을 되찾았다. 그리고 암으로 굳어졌던 간도 완벽히 재생되었다는 것이었다. 맨발로 땅을 밟는다. 맨발로 대지를 걷는다. 맨발로 산길을 오른다. 그리고 암으로 돌처럼 굳은 간이 완전히 재생되었다. 한 달 후 죽음이 예정되었던 사람에게 수개월 만에 완벽한 건강이 다시 찾아왔다. 그 소식은 필자에게 동병상련의 공감과 함께 촌철살인의 힌트로 다가왔다.

박동창 맨발걷기 시민운동본부 회장은 2001년 폴란드 카바티 숲에서 맨발 걷기를 처음 시작했다. 박동창 회장 제공

박동창 맨발걷기 시민운동본부 회장은 2001년 폴란드 카바티 숲에서 맨발 걷기를 처음 시작했다. 박동창 회장 제공

수년에 걸쳐 폴란드에서 은행 경영을 하면서 겪어 온 수많은 고뇌로 인하여 필자 역시 간을 상해 오랫동안 병원에의 통원 치료와 식이요법을 병행하고 있던 터였다. 거기에다 감기를 노다지 달고 살만큼 몸이 허약해져 있었고, 툭하면 찾아오는 불면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다.

아, 그래 거기에 무언가가 있음이 틀림없어. 산길을 맨발로 걷고, 흙, 대지, 자연을 가까이하는 일, 거기에 선고된 죽음까지도 건너뛰는 건강 회복의 비답이 있을 것이야.

그날로 필자는 이곳 바르샤바의 집 뒤에 있는 카바티 숲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수년간을 걷기용 신발을 신고 숲길을 걷던 924ha에 달하는 거대한 숲이다. 아무 생각 없이 주말이면 운동화를 동여매고 집을 나서곤 했던 숲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신발을 벗었다. 50년을 달고 살아온 신발을 과감히 벗어 던진 것이다. 그리고 맨발로 흙을 밟았다. 조심조심 숲길을 맨발로 걷기 시작하였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듯 그렇게 숲속으로, 자연으로, 생명의 모태로 걸어 들어갔다.

맨발과 흙의 첫 접촉, 맨발과 대지와의 첫 만남, 그것은 포근함이기도 하였고, 청신함이기도 하였으며, 경이로운 체험이기도 하였다. 맨발을 간질이는 숲길 마사토의 부드러움이 그러하였고, 숲을 가득 메우고 있는 푸른 풀과 나뭇잎이 그러하였으며, 맨발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오는 숲길의 싱그러운 기운이 그러하였다.

그것은 50여년의 대지와의 격리를 해소하는 뜻깊은 의식이었고, 자연으로부터의 오랜 소외를 마감하고 자연환경과의 의미 있는 합일을 이루는 첫걸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건강을 되찾는 치유의 한 걸음이 되었으며 삶과 자연을 온몸으로 사랑하게 하는 깨우침과 생명의 한 소식이 되었다.

그렇게 처음 걸은 날 밤, 난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그날부터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정도 맨발로 숲길을 거닐고 출근했다. 한 시간 더 자는 것보다, 잠을 쪼개 맨발로 걷는 게 훨씬 더 기분이 좋고, 몸에도 좋았다. 아마도 내가 너무나 건강했다면, 이렇게 맨발 걷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맨발 걷기를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건강이 회복됐다. 감기 환자에게는 결제를 받지도 않을 정도로 애써도 늘 감기를 달고 살았지만, 언젠가부터 감기를 잊고 살게 됐다. 또 감기에 걸려도 예전보다 훨씬 쉽게 나았다. 몇 달 후엔 간도 제 수치로 돌아왔다. 난 곧 여든이 되지만 지금도 당, 혈압, 간 수치 등이 모두 정상이다. 신체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20년은 젊을 것이다.

맨발로 흙과 자갈을 밟고 대지를 걷기, 그 경이로운 체험과 기적 같은 건강의 회복 그리고 자연 사랑의 걸음걸음들을많은 사람들과 같이 나누게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선고된 죽음까지도 건너뛰는 그러한 건강의 비답을 공유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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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창 맨발걷기

박동창 맨발걷기

 금융인 출신의 박동창 맨발걷기시민운동본부 박동창 회장. KB 부사장을 역임하고 2016년 은퇴한 뒤 '맨발걷기 숲길 힐링스쿨'을 개설하고, 저서 『맨발로 걸어라』를 출간하는 등 맨발걷기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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