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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A4 8쪽 '유동규 공소장'…법조계 "졸속·부실수사 입증"

중앙일보

입력

검찰이 지난 21일 구속기소한 유동규(52)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공소장은 A4 8장 분량으로, 사건번호와 피고인 관련 사항을 적은 앞부분을 빼면 공소사실을 적시한 부분은 그중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소장에는 유 전 본부장과 민간사업자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줬고 그 대가로 금품을 몇 차례 받았는지도 명확히 기재되지 않아 여전히 의문을 남겼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졸속·부실수사를 입증하는 공소장”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23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 전담 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유 전 본부장에 대한 공소장에 그가 대장동 개발 사업을 추진하던 남욱(48) 변호사를 2012년 최윤길 당시 성남시의회 의장으로부터 소개받아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을 도와주면 민간사업자로 선정해 민·관 합동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제의한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검찰은 ‘남 변호사가 이를 수락해 이후 유 전 본부장과 대장동 개발 사업에 관해 협의했다’면서도 남 변호사가 공사 설립에 어떤 도움을 제공했는지, 그 대가로 유 전 본부장에게 무엇을 약속받았는지는 구체적으로 담지 않았다.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지난 3일 구속영장실질심사후 호송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을 지난 2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부정처사후수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우상조 기자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지난 3일 구속영장실질심사후 호송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을 지난 2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부정처사후수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우상조 기자

검찰은 남 변호사로부터 받은 3억 5200만원의 뇌물 액수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유 전 본부장은 남 변호사에게 “대장동 개발사업 구획(區劃) 계획도 너희 마음대로 그리고 다 해라, 원하는 대로. 땅 못 사는 것 있으면 나한테 던져라.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라고 말하며 “2주 안에 3억원만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남 변호사가 당시 대장동 사업을 동업하던 정영학(53) 회계사, 부동산업자 정재창(52)씨와 갹출해 유 전 본부장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게 검찰의 수사 결과다. 그러나 이들이 각각 얼마씩을 분담했는지는 공소장에 담기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3일 유 전 본부장 구속영장에선 당시 위례자산관리 대주주였던 정재창씨와 남 변호사, 정 회계사 등이 위례신도시 개발사업과 관련해 뇌물을 전달한 것으로 봤다가 18일 후 공소장에선 대장동 개발사업 대가로 돈을 건넨 것으로 범죄의 구성도 바꿨다.

유 전 본부장이 남 변호사로부터 수천만원씩 현금을 수수한 경위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부분에도 일부 기간은 누락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2013년 4월 서울 강남구 소재 룸살롱, 성남시 분당구 소재 일식집 등 총 3곳에서 각각 7000만원, 9000만원, 1000만원 등 1억7000만원을 유 전 본부장에게 건넸다. 이후 유 전 본부장이 같은 해 5월 남 변호사에게 1억2000만원을 추가로 요구했고, 남 변호사는 같은 달 성남시 분당구 소재 일식집에서 2000만원을 전달했다. 그러나 나머지 1억6200만원에 대해선 유 전 본부장이 수시로 남 변호사에 돈을 요구해 같은 해 8월까지 교부받았다는 설명이 전부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이자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왼쪽)과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이자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왼쪽)과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 복잡한 3억원 전달 방식은 측근 정민용 변호사의 자술서 내용과도 차이가 난다. 정 변호사는 “남욱이 현금 3억원을 유동규 집으로 들고 가서 본인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들었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유 전 본부장은 2014~2015년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선정과 주주협약·사업협약 체결 과정에서 정재창씨의 지분을 인수(2014년 7월)해 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56)씨와 남 변호사, 정 회계사 등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700억원을 수령하기로 약속받은 혐의(부정처사후수뢰)도 받는다.

이 부분에 관한 공소사실 역시 다소 추상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2014년 11월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의 추천으로 채용한 정민용 변호사(투자사업파트장), 김민걸 회계사(전략사업팀장)를 통해 2015년 3월 화천대유 측에 편파적으로 유리한 심사를 하고 ▶같은 해 6월 성남의뜰 주식회사 설립 과정에서 화천대유 측에 유리한 내용으로 협약을 체결했다고 기재해 놓곤, 정작 화천대유에 무엇이 유리한 내용이었지는 빠뜨렸다.

대장동 개발 의혹 자금 흐름 그래픽 이미지. 그래픽 디자인=김호준

대장동 개발 의혹 자금 흐름 그래픽 이미지. 그래픽 디자인=김호준

이는 검찰이 유 전 본부장 구속 땐 포함했다가 공소장에서 삭제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와 직결된 부분이기 때문에 설명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2월 공모지침서 때부터 민간 초과이익 환수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는 공사 직원들의 건의를 묵살했다는 내용 등이다.

이 밖에도 공소장에는 ‘김씨 등이 지난 2~4월 유 전 본부장에게 지급할 금품과 관련해 당초 약속한 700억원에서 세금, 공통비용 등을 공제한 428억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구체화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공제액 272억원 중 일부인 ‘공통비용’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단 기소를 미룬 유 전 본부장의 배임 혐의와 더불어 이미 기소된 뇌물 혐의에 대해서도 보완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검찰 간부는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의 녹취록을 위주로 작성된 공소장으로 보인다”며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수사가 덜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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