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101)
문자가 왔다. 급하단다. 남원 시내 중앙 초등학교 한 학년이 마을로 오니 현장 학습 진행을 도와 달라는 것이다. 소식을 받고 냉큼 그 전날 가서 기다렸다. 우리에게는 그만큼 아이들과 놀며 이야기 나눈다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한 것은 나 혼자 간 것이 아니라 오랜 지인인 생태학자 최한수 박사가 동행해서 그렇다.
둘이 마을의 일일 교사가 된 것은 연초에 한국농어촌공사가 마을을 몇 개 지정해 주변의 학교와 체험학습을 하면 비용을 지원해주는 ‘도농교류 협력사업’에 공모했더니 운 좋게 선정된 것이 계기였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놀았다. 90명과 한나절 넘게 빵 만들고 도마를 만들며 마을 산책을 했더니 기분이 좋다. 내가 이렇게 아이를 좋아했나 싶을 정도였다.
마을 소개를 하자면 지난 회 소개했던 ‘고구마 꽃이 피었던’ 남원시 하주 마을이다. 주민들은 모두 호호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다. 귀농 귀촌한 사무장이 마을 할머니들이 떡 만드는 것을 도와줘도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인력이 모자라자 우리를 부른 것이다.
마을 방앗간과 체험관에서 빵과 3색 인절미를 만들었다. 우리 둘은 도마 만들기와 마을 생태 해설을 담당했다. 도마는 아이들에게 목기로 유명한 남원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고, 집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어서였다. 네모판 편백 판을 준비해 아이들과 함께 사포질을 했다.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물티슈로 잘 닦았다. 그 사이에 현란한 말솜씨로 남원 목기에 관해 설명했다. 정작 아이들은 남원의 특산물이 목기라는 것은 잘 모르는 듯했다. 특산물을 잘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서울서 왔는데 서울에서도 남원 목기가 제일 유명하다고 하니 그제야 신기한 듯이 목청을 돋운다.
5학년 전체가 세반이었다. 한반씩 빵, 떡, 도마 순으로 돌아가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아이들이 참 잘 따른다. 인솔 선생님이 더 재미있어 한다.
체험 종목이 바뀔 때마다 게임을 했다. 요즈음 가장 핫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놀랍게도 반응이 최고였다.
“우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할래?”
“네!!!”
서로 술래를 하겠다고 나선다. 알아서 저 건너편에 수십 명이 나란히 선다.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사이 슬그머니 앞으로 다가선다. 멈춰 있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선 채로 멈추는 것이 보통인데 굳이 엎드려 뻗친 자세로 멈추는 것은 뭘까. 웃음소리가 마을에 울린다.
옆에서 보던 담임 선생님조차 놀란다. 분명 9월 초만 해도 이런 놀이를 하자면 삐죽거리던 아이들이 추석이 지나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가열차게 한단다. 드라마의 힘이다. 놀랍다.
점심을 먹고 마을 산책을 했다. 생태학자 최 박사가 직접 핸드 마이크를 들고 마을 안에 있는 나무와 풀을 설명했다. 워낙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지라 지루해하기는커녕 질문을 퍼붓는다. 소나무가 왜 소나무냐. 벼는 왜 벼냐는 질문이다. 좋은 질문이다. 근본적인 것을 물어봐야 학생이지 않은가.
벼에서 나락을 빼서 먹어 보라니 먹을 수 있냐고 주저하는 아이도 있다. 요즈음 시골의 풍경이 이렇다. 부모가 농사를 짓는 가정이 많지만, 아이는 논과 밭에 가서 거들지 않는다. 부모가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쌀이니 콩이니 사과니 하는 것이 자라는 것을 자세히 보지 못했고 직접 따서 먹어 보지도 못했다. 이런 농촌 체험이 아니면 못해 본다. 도시 아이는 더욱 그렇다. 농작물은 땅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마트에 진열되는 것으로 안다. 주부도 그렇다. 직접 씻나락을 맛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우스갯소리의 씻나락이 바로 볍씨이고 쌀알이라는 것을 모른다.
잠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옛날에는 추수를 한 후 내년 벼농사를 위해 따로 볍씨를 모아 놨다. 그걸 씻나락이라고 하는데, 내년 농사에 쓸 거니 먹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며 자꾸 모아 놓은 씻나락이 없어졌다. 누군가 까서 밥으로 해 먹은 것이다. 그래서 다들 모여서 범인을 찾았다. “형님이 먹었수?“ “아니다.” “형수님이 드셨수?” “아니오.“ “그럼 누가 먹었을까?” “아마 귀신이 까먹은 모양이오.” 다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나온 것이다. 재미있는 우화이다.
마을 골목 안에서 90세가 넘은 할머니가 걸어 나왔다. 동네가 시끌시끌해 궁금해 나왔나 보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달려가 인사를 한다. 할머니는 반가워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은 할머니 앞에서 재잘거리며 논다. 초고령화 시대라고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는 아이들이 없다. 그런 시골에 아이들이 와서 논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웃음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지는 광경을 펼쳐진다.
학교에서 농촌으로 가서 수업을 듣는 ‘현장 학습’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의 수업 중 마을에서 농장에서 할 수 있는 시간을 골라 직접 농촌으로 가는 현장 학습은 아이에게는 생생한 현장 수업의 효과가 있고, 농가에는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릴 기회다. 그리고 더 큰 효과는 노인에게 아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오는 손주 몇 명이 아닌 수십 명의 아이가 뛰어노는 걸 보는 기회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아이가 가득했는데 지금은 없다. 너무 귀하다. 농촌에 활력이 없는 것은 농촌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농촌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없어서가 아닐까.
전국적으로 신 활력 사업이라는 것이 농촌 재생 프로그램으로 진행이 되는데 건물 짓는다고 활력이 생길지, 소득 사업을 발굴해서 진행한다고 활력이 생길지 의문이다. 진정한 활력은 할머니부터 부모, 손주까지 이어지는 모든 세대가 함께 모여 웃으며 지내는 모습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번 체험에 동행한 생태학자는 동감한다며 말했다.
“우리 자연이 동물과 식물이 함께 하고, 풀을 먹는 나약한 곤충과 초식 동물에서부터 힘이 센 포식자까지 모두 공존합니다. 그걸 생태계라고 하지요. 인간 사회도 아이들과 성인들과 노인들이 모두 함께 살고 공존하는 모습이 있어야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 유행으로 인하여 학교의 현장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많은 체험학습 기관이 타격을 받았다. 농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비대면 수업을 통해 현장 학습을 대신했지만, 만족도는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가을 학기부터는 현장 학습이 슬슬 살아난다. 내년에는 위드 코로나가 되어 다시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장 학습 행사를 지원해 준 한국농어촌공사와 참여한 중앙초등학교에 감사를 드린다. 짧은 하루였지만 마을에게는 엄청난 활력을 주었다.
체험학습을 마쳤다. 아직도 아이들 앞에서 웃길 수 있다는 프라이드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난 살아 있구나.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