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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K D램 개발 위해 64㎞ 야간행군” 이러면서 삼성맨 됐다 [삼성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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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열림 삼성 하계수련대회에서 신입직원들이 매스게임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06년 열림 삼성 하계수련대회에서 신입직원들이 매스게임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공채 상편에서 이어짐〉 공채는 기수 문화와 이어진다. 애사심과 충성도가 높아질 수 있지만 지나치면 획일주의와 우월주의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삼성은 그런 면에서 ‘스며드는 충성도’를 강조했다.

2000년대 중반 삼성전자에 입사했다가 얼마 전 퇴사한 A씨는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갖게 하는 삼성의 채용 노하우를 높게 평가했다. 그의 말이다.

강요하지 않아도 소속감 생겨    

“다른 대기업의 채용 절차가 엉성해 보일 만큼 삼성의 면접은 진행 방법과 질문 내용, 평가 방식 등에서 굉장히 체계적이었다. 연수를 할 때 역시 애사심 같은 말을 대놓고 입 밖에 꺼낸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회사의 장점을 알게 되고 동기애가 생겼다. 모두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던 게 기억난다.”

삼성 신입사원 채용 절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 신입사원 채용 절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당시만 해도 그룹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A씨 역시 다른 계열사 신입사원과 함께 6주간 그룹 연수를 받았다. 이어 계열사별로 교육이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4주간 연수를 했다.

그룹 연수 프로그램은 삼성의 경영 이념, 자기계발 등의 강의와 조별 경연, 퀴즈 대회, 연극을 발표하는 ‘드라마 삼성’ 등으로 이뤄진다고 알려졌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라마드’도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북한보다 더하다”는 삼성 매스게임

A씨는 “과거 선배들은 64K D램 개발을 위해 64㎞ 야간행군을 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며 “선배들이 장난처럼 ‘삼성 직원들은 피도 파랗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6주 동안 집에 한 번 밖에 못 가고, 일과 시간에 휴대전화를 쓸 수 없는 데다 잠을 하루 3~4시간 밖에 못 자면서도 대다수 동기에게 연수는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요즘 젊은 세대에 이런 연수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받으라고 하면 사회적 논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7년 유튜브에 삼성 신입사원 하계 수련대회에 공연됐던 매스게임 동영상이 공개됐다. 매스게임은 집단 맨손체조를 말한다. 2주 정도 연습한 수백 명의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흩어지며 ‘Anycall(삼성의 휴대전화 브랜드)’ ‘PAVV(삼성의 TV 브랜드)’ 같은 글자를 만드는가 하면 휴대전화와 축구 선수, 춤추는 여성 등 다양한 형상을 연출했다.

‘삼성 기지개’ ‘삼성 박수’도 있었다  

경쟁도 치열했다. 삼성 계열사 전직 임원 B씨는 “어느 사업부에선 서울올림픽 기획자를 영입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회사별, 부문별 경쟁이 심했다”고 말했다.

영상을 본 일부 유저들 사이에서는 “북한보다 더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시에도 비슷한 비판이 있었고, 매스게임은 결국 폐지됐다. 정작 직접 매스게임에 참여했던 A씨는 “행사가 있었던 시기가 입사 6개월 뒤라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나고, 현업에서 빠져 2주 동안 연습하는 거라 ‘회사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삼성은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부터 채용 시험인 GSAT를 온라인 시험으로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감독관들이 실시간으로 원격 감독하는 모습. [사진 삼성전자]

삼성은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부터 채용 시험인 GSAT를 온라인 시험으로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감독관들이 실시간으로 원격 감독하는 모습. [사진 삼성전자]

가재산 한류경영연구원장(『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삼성 인재경영의 모든 것』 저자)은 “과거엔 기지개 한 번에 삼성을 외치는 ‘삼성 기지개’, 박수 중간에 삼성을 외치는 ‘삼성 박수’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하반기에만 6000명 선발할 듯  

삼성 내부에서는 공채 문화에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B씨는 “공채는 삼성이 선도한 채용제도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데다, 과거부터 인재를 선발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 문화를 이어가는 것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공정하게 선발한 인재들이 자유롭게 경쟁한다는 점에서 요즘 젊은 세대의 가치와도 맞다. 하지만 우월주의나 획일성 조장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벗어나는 게 숙제다. 인공지능(AI) 활용 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대에서 새로운 채용 방식을 도입할 때 어떤 인재 운용 철학을 내세울지도 고민할 부분이다.”

한편에선 당근 제시하며 명퇴 신청  

한편 재계와 취업 플랫폼 등은 올 하반기에 삼성이 공채를 통해 6000명 정도의 신입사원을 선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한 대학에서 삼성전자 채용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한 대학에서 삼성전자 채용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많이 뽑는다는 얘기는 거꾸로 많이 나간다는 뜻도 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소비자가전(CE)과 IT모바일(IM) 부문을 중심으로 명예퇴직을 신청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세트(완성품) 사업부문의 정체된 분위기에 활력을 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근 진행된 무선사업부 경영진단에서도 인력 정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명예퇴직 대상자는 3년 이상 진급 누락이 되거나 5년 연속으로 파트장을 지낸 직원 등이다. 회사 측에서 기존 계약연봉의 2배이던 특별위로금을 3배로 늘려 제시했다는 소문이 나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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