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무릎사과→또 망언…걸핏하면 무너진 野 호남 공든탑

중앙일보

입력 2021.10.23 09:00

업데이트 2021.10.23 09:12

21일 광주 남구 백운광장 일대에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후보의 '전두환 찬양' 망언을 규탄하는 '전두환 찬양 망언자 역사가 심판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21일 광주 남구 백운광장 일대에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후보의 '전두환 찬양' 망언을 규탄하는 '전두환 찬양 망언자 역사가 심판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무릎 사과’를 하면 뭐하냐? 망언 하나에 호남 표심 다 떠나는데…”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발언을 두고 이렇게 푸념했다. 지난해 8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했는데, 윤 전 총장의 발언으로 국민의힘을 향한 호남의 평가가 그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취지였다.

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보수당에게 그동안 호남은 ‘공든 탑’이었다. 대신 자주 무너지는. 보수당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략적으로 ‘호남 끌어안기’ 전략을 활용했지만, 당내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이 나오면서 그 전략은 거듭 좌절했다.

보수당에서 본격적으로 호남 구애 움직임이 나타난 건 2004년이다.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박근혜 대표는 첫 지역 방문지로 광주를 택했다. 그는 “이번에 크게 변해서 여러분들에게도 사랑받고자 첫 행선지로 광주를 찾았다”고 시민들에게 말했다. 당시는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때였는데, 박 대표는 비례대표에 호남 인사를 3석 배정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2004년 8월 12일 오전 김대중도서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문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박 대표는 김 전 대통령에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일에 대해 사과했다. 중앙포토

2004년 8월 12일 오전 김대중도서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문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박 대표는 김 전 대통령에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일에 대해 사과했다. 중앙포토

박 대표는 취임 넉 달 만에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찾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벌어졌던 일에 대해 사과하는 파격 행보도 보였다. 박 대표는 DJ에게 “아버지 시절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으시고 고생한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DJ는 2010년 출간된 자서전에서 “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언론은 박 대표의 행보를 서쪽 호남으로 나아간다는 뜻에서 ‘서진(西進)정책’으로 불렀다. 보수당이 1997년에 이어 2002년 대선에서도 연달아 패배하면서 호남 표를 얻지 않고는 재집권이 힘들다는 계산에 따른 전략적 판단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박 대표가 공을 들여 쌓은 탑은 2006년 무너졌다. 국정감사에서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그해 6월 광주에서 열린 6·15민족대축전과 관련, “주체사상 선전 홍보물이 거리에 돌아다니고 교육현장에서 사상 주입이 이뤄졌다”고 말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만연했던 ‘색깔론’을 떠올리게 해 호남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반발을 샀다.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가 2016년 8월 9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당대표로 당선된 이정현 후보가 축하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가 2016년 8월 9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당대표로 당선된 이정현 후보가 축하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그럼에도 박 대표가 호남에 들인 공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 소기의 성과로 나타났다는 평가도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호남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10.3%)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보궐선거에서는 그의 복심으로 꼽혔던 이정현 후보가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되는 이변도 빚어졌다. 이정현 의원은 역사상 처음으로 호남 출신 보수당 대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출범한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 체제’는 또다시 호남 민심을 보수당에서 멀어지게 했다. 김순례·김진태·이종명 한국당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으로 규정하고, 희생자들을 “괴물 집단”이라고 지칭했다. 호남 시민들뿐 아니라 다른 정당들 역시 한 목소리로 비판했지만, 황교안 대표는 이들에게 징계 유예 등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6월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른 김종인 전 위원장은 다시 호남 끌어안기를 시도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8월 5·18민주묘지를 찾아 5·18 관련 망언 등에 대해 사과했다. 그가 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은 모습은 상징적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역시 지난 6월 취임 첫날 광주를 찾았다. 이후엔 호남 일자리 관련 메시지도 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8월 19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당내 인사들의 망언에 대해 “ 잘못된 언행에 당을 책임진 사람으로 진실한 사죄를 드린다”며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말했다. 뉴스1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8월 19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당내 인사들의 망언에 대해 “ 잘못된 언행에 당을 책임진 사람으로 진실한 사죄를 드린다”며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말했다. 뉴스1

하지만 윤 전 총장의 ‘전두환 두둔 발언’으로 이 대표의 국민의힘의 서진정책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뒤 윤 전 총장 인스타그램에 사과를 반려견에게 주는 사진이 올라오자, 이 대표는 22일 페이스북에 “이런 상식을 초월하는… 착잡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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