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망치고 계십니다" 교황도 혼낸 이탈리아 '25㎖ 자부심'

중앙일보

입력 2021.10.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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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세계여행 -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에스프레소. 설탕을 한 스푼 넣고 무성의하게 저은 뒤 마시면 처음엔 쓰고 고소한 맛이 나중엔 산뜻하고 단맛이 느껴진다. 최승표 기자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에스프레소. 설탕을 한 스푼 넣고 무성의하게 저은 뒤 마시면 처음엔 쓰고 고소한 맛이 나중엔 산뜻하고 단맛이 느껴진다. 최승표 기자

“오, 교황님. 커피를 망치고 계십니다. 우리 나폴리인이 마시는 그대로 드세요. 그래야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2015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카페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바리스타가 건넨 말이다. 교황은 큰 잔에 커피를 붓고 뜨거운 물을 추가해서 마시고 있었다. 에스프레소가 너무 써서였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카페 소스페소: 모두를 위한 커피'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탈리아 사람의 에스프레소에 대한 자부심은 이처럼 남다르다. “아메리카노는 구정물”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탈리아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하면 미개인 취급한다.

이탈리아는 현대식 커피의 본산이다. 6~7세기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퍼졌는데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압착해서 신속하게(express) 뽑는 기계를 개발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espresso)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탈리아인들은 진한 커피 원액인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고 있다. 제아무리 스타벅스가 세계를 점령하고, 호주식 커피, 핸드드립 커피가 유행한대도 변함없이 아담한 잔에 담긴 25㎖(싱글 기준)의 진한 커피를 마신다. 설탕을 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설탕이 쓴맛을 잡아주고 산미와 아로마 향을 살리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하면서 커피가 대중음료로 전 세계로 퍼지나갔다. 사진 이탈리안바리스타스쿨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하면서 커피가 대중음료로 전 세계로 퍼지나갔다. 사진 이탈리안바리스타스쿨

요즘 한국에도 '에스프레소 바'가 많이 생기고 있다. 한 자리에 두세 시간씩 앉아서 수다 떨고 공부도 하는 카페가 아니라 선 채로 에스프레소 한 잔 홀짝 털어놓고 가는 커피집이다. 커피값도 1500~2000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딱 이탈리아 스타일이다. 지금도 이탈리아에는 에스프레소 한 잔이 1유로(약 1370원)인 곳이 흔하다.

참고로 다큐멘터리 제목 '카페 소스페소'는 이탈리아의 커피 나눔 문화를 뜻한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두 잔 값을 치른 뒤 나머지 한 잔은 아무나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커피 기부다. 커피를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연대'의 뜻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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