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합수단장의 기억…‘여의도 저승사자’ 없앤 황당 이유 [Law談-김영기]

중앙일보

입력 2021.10.23 05:00

업데이트 2021.10.23 15:54

대형 금융·증권 비리를 한창 수사 중이던 2019년 11월, 대검찰청 간부인 어느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 폐지 논의가 있으니 존치 필요성을 검토해 달라는 취지였다. 갑자기 합수단 폐지가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시 합수단장이던 필자는 며칠간 합수단 존치 필요성을 정리해 보고했다.

지난 2013년 5월 증권범죄합동수사단 출범식 모습. 합수단은 2020년 2월 초에 폐지됐다. 뉴시스

지난 2013년 5월 증권범죄합동수사단 출범식 모습. 합수단은 2020년 2월 초에 폐지됐다. 뉴시스

2019년 해를 넘길 때까지 합수단 폐지와 관련한 추가 상황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 새해 벽두, 합수단 폐지가 최종 결정됐고, 그해 2월 초 폐지됐다.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대응책을 마련한 다음 점진적으로 합수단 폐지 여부를 살펴 달라고 호소했으나 결과는 허무했다.

합수단 폐지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분들이 합수단 폐지 이후 수사 공백을 걱정했다. 합수단이 전 정권 ‘국정농단 세력’에 의해 만들어져 이참에 정리된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도 흘러다녔다. 필자는 마지막 합수단장이 됐고 함께 근무 중이던 검사, 수사관, 유관기관 파견직원들은 마지막 합수단원이 됐다. 합수단 폐지와 동시에 필자는 광주로 발령을 받았다. 다과 몇 개 차려 놓고 조촐하게 합수단 해단식을 하는데 무엇을 잘못해서 합수단이 폐지된 것인지 설명할 수가 없어 단장으로서 단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합수단은 2013년 5월에 출범했다. 처음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설치됐다가 2014년 2월 금융·증권범죄 중점 검찰청인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이전됐다. 합수단의 수사대상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이나 이와 관련된 대주주의 횡령, 배임 등 사건이었다. 합수단에 불려오는 이들은 주로 자본시장의 신뢰 훼손 사범, 그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기업 총수와 경영자,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이었다.

합수단은 자체 인지보다 범죄 혐의가 중대한 반면 위법행위가 반복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즉시 조치(Fast Track)’가 필요한 사건을 금융당국으로부터 건네받아 수사했다. 2013년 5월부터 폐지 때까지 합수단이 기소한 인원은 970여 명에 이른다. 열심히 일한 덕인지 합수단은 자본시장을 지키는 ‘여의도 저승사자’란 별명을 얻었고 그 별명은 합수단원들의 자긍심이 되었다.

자본시장 범죄는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갈수록 조직화, 은밀화, 전문화하면서 교묘하게 진화 중이다. 비리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범죄는 검찰, 경찰이 하고 싶어도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없다는 결정적 한계가 존재한다. 주식 매매 데이터, 각종 공시 등 범죄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이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과 같은 유관기관들에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시장 범죄수사는 협업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합수단의 최대 장점은 검찰의 전문수사 인력과 금융 유관기관들의 전문 인력이 ‘원팀’으로 함께 근무하며 자본시장범죄에 적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합수단이 폐지되고 나서 새롭게 시작된 대규모 자본시장 비리수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염려와 달리 그 새 한국의 자본시장이 깨끗해진 것인지 아니면 적발을 못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금융범죄수사협력단이 사라졌던 '여의도 저승사자'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지난 9월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열린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뉴스1

금융범죄수사협력단이 사라졌던 '여의도 저승사자'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지난 9월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열린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뉴스1

다행히 올해 9월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이 신설됐다. 아무런 전문수사 부서가 없는 것보다 자본시장의 건강함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기존의 합수단과 운영 방식이 달라 얼마나 실효적으로 기능할지는 미지수이다. 합수단 폐지 여부는 정책사항이다. 정책 결정은 고도의 경영판단처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복합적일 것이다. 그런데 합수단 폐지로부터 채 2년이 안 돼 협력단이 신설됐다. 자본시장의 불법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면 500만 ‘개미 투자자’는 물론 기업과 국가 경제가 타격을 받는다.

여기에 정치 논리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합수단, 협력단을 넘어서는 전문수사기관의 창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떤 형태이든 시장을 잘 알고 또 이해하면서도 시장의 미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멋진 여의도 저승사자의 부활을 기대한다.

Law談 칼럼 :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
주식인구 800만, 주린이 2000만 시대.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알아두면 도움되는 자본 시장의 현안을 법과 제도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시장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제안도 모색합니다. 암호화폐 시장 이야기도 놓칠 수 없겠죠?

김영기 변호사가 중앙일보 로담(Law談)에서 디지털 칼럼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를 새로 연재한다. 본인 제공

김영기 변호사가 중앙일보 로담(Law談)에서 디지털 칼럼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를 새로 연재한다. 본인 제공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대검찰청 공안3과장, 전주지검 남원지청장,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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