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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상징 ‘가이 포크스’ 가면, 영국 ‘화약 반역 음모’서 유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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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호 27면

런던 아이 

영국에서 유래한 가이 포크스 가면은 전 세계에서 시위의 상징이 됐다. 무섭게 생긴 흰색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스페인 카탈루냐 분리 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에서 유래한 가이 포크스 가면은 전 세계에서 시위의 상징이 됐다. 무섭게 생긴 흰색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스페인 카탈루냐 분리 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을 포함 세계 어디서나 대규모 시위 현장에서는 무섭게 생긴 흰색 마스크를 쓴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섬뜩한 미소에 붉은 뺨을 가진 얼굴, 양 끝이 위로 향한 넓은 콧수염, 가늘고 뾰족한 턱수염을 한 이 마스크를 전 세계 많은 시위대가 사용한다. 세계적인 해커 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가 쓰면서 더 유명해졌고, 반체제의 상징이 됐다. 이 가면은 2006년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그 기원은 16세기부터 300여 년 동안 계속된 종교적 박해와 음모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억하라, 11월 5일을/ 화약 음모 사건을/ 화약 음모 사건은 절대 잊혀서는 안 된다.” 현재 영국 어린이들이 여전히 배우고 있는 이 구호는 영국의 가장 독특한 명절 중 하나인 ‘가이 포크스의 밤’과 관련 있다. 매년 11월 5일 가이 포크스의 밤은 가이 포크스(Guy Fawkes)라는 남자를 포함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당시 영국 왕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을 기념한다. ‘가이 포크스의 날(Guy Fawkes Day)’로도 알려진 ‘가이 포크스의 밤(Guy Fawkes Night)’의 기원은 영국의 반가톨릭주의에서 시작된다. 1534년 헨리 8세는 “교황이 아닌 국왕이 영국 교회의 유일한 최고 지도자”라고 선언했다. 그 당시 교황에게 충성하는 것은 반역죄로 간주됐다.

영국서 유래한 핼러윈, 미국서 변형

잠시 가톨릭으로 되돌아간 적도 있었지만 이후 영국은 엄격한 개신교 국가가 됐다. 가톨릭은 300년 동안 영국에서 박해받았고, 때로는 완전히 불법인 적도 있었다. 가톨릭 신자라면 색출해 박해했고, 변호사나 경찰 같은 공공 직책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다. 이 기간에 가톨릭 의식은 지하에서 비밀리에 행해졌다. ‘화약 음모 (Gunpowder Plot) 사건’으로 알려진 가이 포크스가 연루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 시기였다.

화약 음모는 1605년 11월 5일 제임스 1세가 참석할 의회 개원 기념 행사에서 하원을 폭파하려는 계획이었다. 목표는 국왕을 살해하고, 가톨릭 민중 봉기를 일으키고, 그의 아홉 살 난 딸 엘리자베스를 새로운 가톨릭 여왕으로 즉위시키는 것이었다.

가이 포크스의 초상화. [중앙포토]

가이 포크스의 초상화. [중앙포토]

사실 이 음모에서 가이 포크스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가이 포크스는 이 그룹의 지도자나 주요 인물도 아니었다. 이 단체는 엄격한 가톨릭 집안 출신의 군소 귀족인 로버트 캐츠비가 이끌었다. 가이 포크스는 군인 출신 폭발물 전문가였다. 그래서 다른 음모자들이 음모를 이끌 준비를 하는 동안 가이 포크스는 하원을 폭파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실패했다. 가이 포크스는 의회의사당 지하실을 나오다가 붙잡혔고 그가 숨겨 둔 36배럴의 화약이 폭발하기 전에 발견됐다. 다른 공모자들은 런던을 탈출했지만 결국 모두 붙잡혔다. 체포된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됐다. 당시엔 반역죄를 지은 사람에게 교수형틀에 매달아 뒀다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내려서 거세하고 참수한 뒤 몸을 네 조각으로 자르는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하지만 가이 포크스는 교수형틀에 매달렸다가 스스로 그곳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이런 식으로 이후 이어지는 끔찍한 형벌을 피한 사람은 가이 포크스가 유일했다. 가이 포크스는 그 음모의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가장 유명해졌다. 그는 왕을 살해하는 데 성공하기 직전 의사당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음모가 실패한 날은 국경일이 됐다. 왕실은 사람들에게 반역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반가톨릭 정서를 강화하기 위해 그날을 경축하도록 했다. 당시 이날은 ‘화약 반역의 날(Gunpowder Treason Day)’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날은 큰 모닥불을 피우고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도 하며 즐기는 국가의 축제가 됐다. 이날은 모닥불 꼭대기에 짚으로 된 모형을 태웠는데, 한때는 교황처럼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가톨릭 메시지를 담았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이 모형은 가이 포크스로 바뀌었다. 불꽃놀이는 이날 열리는 축제의 일부로 ‘가이 포크스의 밤’은 ‘불꽃놀이의 밤’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이날엔 군밤이나 신더 토피(cinder toffee) 같은 전통적인 가을 음식을 먹기도 한다. 신더 토피는 달고나와 비슷한 설탕 과자로 달고나보다 크게 만들어 작은 조각으로 부수어 먹는다.

가이 포크스 나이트가 그렇게 빨리 인기를 얻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널리 알려진 축제인 핼러윈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이 포크스의 밤과 핼러윈 둘 다 영국에서 기념됐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휴일 모두 밤에 열리며 으스스하고 섬뜩한 느낌을 준다.

핼러윈은 원래 기독교 발생 이전의 아일랜드와 영국 전역에서 기념됐던 고대 게일인들의 축제인 ‘삼하인(Samhain)’에서 유래했다. 삼하인은 수확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알렸고, 현실 세계와 사후 세상의 경계가 가장 얇은 시기로 여겨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핼러윈은 기독교 축제인 ‘모든 성인의 날(All Hallows Day)’과 연관 지어졌다.

핼러윈도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시작됐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점포에 전시된 핼러윈 축제 용품들. [연합뉴스]

핼러윈도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시작됐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점포에 전시된 핼러윈 축제 용품들. [연합뉴스]

하지만 아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trick or treat’ (과자를 안 주면 장난을 칠 거예요!)라고 외치거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사탕을 먹는 상업적인 풍습은 결코 핼러윈의 일부가 아니었다. 이런 부분은 핼러윈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생긴 문화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의 영국에선 거꾸로 미국판 핼러윈을 받아들이면서 가이 포크스의 밤에 대한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가이 포크스의 밤’의 다소 폭력적인 유래와 노골적인 반가톨릭 메시지는 현대 영국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다.

오늘날 영국의 핼러윈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핼러윈과 비슷하다. 아이들은 특이한 의상을 차려 입고, 호박을 조각하고, 사탕을 받으러 다닌다.

내가 어렸을 땐 ‘trick or treat’는 영국에서 그다지 흔하지 않았다. 특이한 의상을 차려입는 것은 파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이나 대학생들이 주로 했던 것이다. 호박을 조각하는 풍습도 널리 유행하지 않았고 미국 영화에서 본 것을 따라 하는 수준이었다.

올해 31세인 시네이드 메킨은 어렸을 때 가이 포크스가 핼러윈보다 훨씬 더 큰 행사였다고 기억한다. “핼러윈에는 보통 작은 학교 파티가 있었지만 우리는 분장을 하고 근처를 돌아다니며 사탕을 주거나 대접하러 가지 않았어요. 반면 가이 포크스의 밤은 일기장에서는 중요한 날이었죠.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와서 큰 코트, 모자, 스카프를 쓰고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불꽃놀이 밤을 정말 좋아했던 기억은 있지만 핼러윈은 단 한 번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가이 포크스의 밤을 요즘엔 ‘불꽃놀이 밤’ 또는 ‘모닥불의 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가이 포크스의 밤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지역사회에 모여 거대한 불을 지피고, 거대한 크기의 남자 모형을 보며 먹고 마신다. 종종 지역 학교나 지역 센터가 이런 행사를 주최하고 기금을 모으기 위해 티켓을 팔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은 가이 포크스의 밤을 위해 열린 대규모 행사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핼러윈에 아이들은 여전히 이상한 옷을 입고 가족이나 친지의 집에 사탕을 받으러 갈 수 있었지만 거의 모든 가이 포크스의 날 행사는 취소됐다.

“핼러윈은 아이들이 옷을 차려입고 단 것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아이들에게 신나는 날”이라고 다섯 살 루나의 아버지 샘이 말했다. “가이 포크스 나이트는 여전히 큰 이벤트고 불꽃놀이도 많이 하지만 코로나 이후엔 가이 포크스의 모든 것이 취소되었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없을 것 같네요.”

비록 가이 포크스의 날이 예전만큼 중요한 행사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오늘날에도 상당히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자 의미하는 ‘가이’ 용어도 생겨

우선, 가이(guy)라는 단어는 가이 포크스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이 포크스의 밤에 사람들이 태우는 모형의 이름이 ‘가이’였다. 그래서 한동안 가이는 남성이나 남성 그룹을 비하하는 용어로 쓰였다. 하지만 그 이후 부정적인 의미가 사라지고 단순히 ‘남자’를 의미하는 말로 바뀌었다.

현대에 가이 포크스 가면이 얼마나 인기인지, 세계 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진짜 가이 포크스가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는 정권의 변화를 추진한 혁명가이긴 했지만 부유한 가톨릭 귀족들의 자금과 지원을 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가이 포크스는 반체제 및 반자본주의 운동의 상징이다. 당시의 가이 포크스가 대변하던 계층을 현대의 가이 포크스는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가이 포크스의 정치 신념과 상관없이, 오늘날 가이 포크스는 반자본주의와 현대 무정부주의의 세계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전 세계의 시위자들 사이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됐다. ※번역 : 유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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