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밋밋해 은근슬쩍 넘어갔다, 철도·고속도·국도 다 품은 고개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23 00:21

업데이트 2021.10.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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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호 26면

스무고개, 수많은 이야기 〈11〉 교통 요충지 추풍령

경부선 철도, 경부고속도로, 국도 4호선 뿐만 아니라 지선도로도 추풍령을 고개 중의 으뜸으로 만들었다. 사진 왼쪽의 추풍령면에서 추풍령로·신안로와 만나 추풍령 삼거리를 만드는 작점로가 추풍령저수지와 마암산을 휘감아 돌고 있다. 김홍준 기자

경부선 철도, 경부고속도로, 국도 4호선 뿐만 아니라 지선도로도 추풍령을 고개 중의 으뜸으로 만들었다. 사진 왼쪽의 추풍령면에서 추풍령로·신안로와 만나 추풍령 삼거리를 만드는 작점로가 추풍령저수지와 마암산을 휘감아 돌고 있다. 김홍준 기자

“여기가 거기요. 거기도 매한가지고.…네, 네.”
다방 주인에게 물어봤다. 고갯마루가 어디냐고. 그 답이 이랬다. 으레 고개에는 정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여기는 어딘가 뜨뜻미지근하다. 워낙 낮은 데다가, 비탈이라고 할 것도 없다. 조선 조정에서도 알았다. 유생 조익이 정조에게 아뢨다. ‘본디 평탄한 길이므로 속히 방어를 계책해야 합니다(조선왕조실록 정조 9년 7월 26일).’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사이의 이 고개는 그저 눙치고 넘어가게 된다.

갑자기 싸늘해진 가을바람에 실려 왔다. 여기는 추풍령(秋風嶺). 가을바람이야 어디서나 불건만, 그 이름을 갖다 붙였다.

이 이름의 위력이 대단하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에는 자신이 살고, 일하고 있는 ‘추풍령’을 앞에 세운 가게들이 많다. 추풍령할매갈비, 추풍령맛고을, 추풍령부동산컨설팅, 추풍령설비…. 어쩌면 해장국집에서는 음식의 태생지인 양평과 식당이 자리잡은 추풍령 사이에서 이름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10월 19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에서 경북 김천시 봉산면으로 차량이 넘어가고 있다. 오른쪽 추풍령 노래비가 있는 이곳이 고갯마루다. 김홍준 기자

지난 10월 19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에서 경북 김천시 봉산면으로 차량이 넘어가고 있다. 오른쪽 추풍령 노래비가 있는 이곳이 고갯마루다. 김홍준 기자

'추풍령면' 이름 되찾을 때 면장, 취재 당일 별세

이름 날리는 추풍령할매갈비도 원래 있던 영동군 추풍령면에 작은 가게는 남겨두고 고갯마루를 넘어 김천시 봉산면으로 갔다는데…. 고갯마루는 어디인가.

지난 19일 추풍령 노래비 있는 곳에 인부들이 뒤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우린 김천서 넘어왔는기라.” 낮은 고개 하나 차이로 이렇게 억양이 달라진다. 고갯마루는 여기다. 이미 지나온 황악산 바람재의 험난함에 비하면 평지 수준이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과의 경계에 자리잡은 추풍령 노래비. 추풍령 고갯마루가 이곳이다. 김홍준 기자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과의 경계에 자리잡은 추풍령 노래비. 추풍령 고갯마루가 이곳이다. 김홍준 기자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곳에 당마루가 있었다. 김근분이 할머니가 이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서 술을 팔았다. 행여나 경찰이 통행금지 시간 단속으로 불쑥 찾아오면 술꾼들은 이쪽이나 저쪽으로 줄행랑쳤다. 1966년 1월 6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글이다. ‘도계가 돼서 법의 손이 멀고 보조군(보조헌병을 이름)이 습격을 온다해도 담 하나만 넘으면 화(?)를 면할 수 있는 잇점 때문에 이름난 한량들이 당마루로 많이 몰려들었다는 것. 당마루 분이네 집을 모르는 술꾼과 도박꾼은 이 고장엔 없다.’ 그리하여 술꾼들은 충북의 당마루에서 퍼마시다가도 경북의 당마루로 넘어가 다시 마시곤 했다.

지금은 술꾼보다 대간꾼(백두대간을 따라가는 산꾼)이 많다. “어휴, 새벽 3시에 헤드랜턴 켜고 집 앞에 불쑥 나타나~.” 백두대간 눌의산(743m)에서 금산(385m)으로 향하려면 추풍령에서 이 집 앞을 지나가야 한다. 안주인 이모(56)씨는 “요 앞에 버스 대놓고 갔다 오는 분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구름도 쉬어가는 고개(남상규 노래)’라지만 추풍령은 백두대간에서 가장 낮은 고개다. 221m다. 추풍령은 이렇게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여럿 붙는다.

1939년 경부선 추풍령역에 세워진 급수탑은 고개를 올라온 증기기관차의 증기를 낼 물을 보충해주던 곳이다. [중앙포토]

1939년 경부선 추풍령역에 세워진 급수탑은 고개를 올라온 증기기관차의 증기를 낼 물을 보충해주던 곳이다. [중앙포토]

2000년대 초반 추풍령역. 현재의 역사는 2003년에 신축했다. [중앙포토]

2000년대 초반 추풍령역. 현재의 역사는 2003년에 신축했다. [중앙포토]

추풍령은 경부선 철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추풍령 역장은 “예전 증기기관차는 이곳에서 고개를  올라와 열을 식히며 쉬어갔는데, 증기를 낼 물을 보충하기 위해 1939년 급수탑이 세워졌다”고 알려줬다. 지금은 급수탑공원으로 조성돼 초여름 장미꽃이 만발한다.

1970년 7월 준공돼 현재도 ‘가장’ 긴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 기념탑이 이곳에 있다. 당시 서울~부산간 428㎞의 절반인 214㎞ 지점이 추풍령이었다. 지금은 종점이 한남대교에서 양재나들목으로 7㎞ 가량 당겨지면서 ‘경부고속도로의 절반’은 김천으로 넘어가 버렸다.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 7일 준공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가 추풍령에 들어섰다. 왼쪽이 상행선, 오른쪽이 하행선 휴게소다. 김홍준 기자.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 7일 준공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가 추풍령에 들어섰다. 왼쪽이 상행선, 오른쪽이 하행선 휴게소다. 김홍준 기자.

‘가장’ 먼저 생긴 고속도로 휴게소인 추풍령휴게소가 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일에 맞춰 열었다. 충북, 경북의 학교에서 소풍 올 정도로 명소였다.

충북 옥천에서 나고 자란 안모(55)씨는 “초등학교 때 추풍령휴게소에 동물원이 있었는데, 별천지였다”고 밝혔다. 그런데 좀 자주 갔나보다. 추풍령초등학교를 나온 이정철(49·경북 상주)씨는 “6학년까지 열한 번이나 추풍령휴게소로 봄·가을 소풍을 갔다”며 “나머지 한 번은 다른 곳에 가자는 학생들의 건의에 장소를 조금 먼 월류봉(영동군 황간면)으로 바꿨는데, 요즘처럼 버스를 대절할 형편이 안 돼 각자 자전거를 이용했다”며 웃었다. 휴게소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VIP룸도 있었다.

추풍령초등학교 전경. 1923년에 세워진, 개교 100년을 앞둔 학교로 현재 학생 수는 38명이다. 김홍준 기자

추풍령초등학교 전경. 1923년에 세워진, 개교 100년을 앞둔 학교로 현재 학생 수는 38명이다. 김홍준 기자

추풍령은 ‘가장’ 많은 교통 인프라를 갖춘 고개다. 철도, 고속도로, 국도(4호선)가 지나간다. 게다가 작은 도로도 얼기설기 있다.  삼거리 방앗간 앞에 노인이 앉아 있던 네모반듯한 돌에는 추풍령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아 이거? 저기 다리(추풍령교) 새로 만들면서 이전 걸 여기다 놓은 겨.” ‘친절떡방앗간’ 사장이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다리를 새로 만든 게 1993년이었으니,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표지석은 겹겹이 쌓인 아스팔트와 아스콘에 ‘橋(다리 교)’자를 묻히고 말았다.

추풍령면은 일제 강점기 때 황금면이었다. 황간(黃澗)과 김천(金泉) 사이의 고을이라 각각의 앞자를 따서 지었단다. 1991년 ‘추풍령’이란 이름을 다시 찾아왔다. 당시 면장이었던 이상하옹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연락 당일인 지난 19일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향년 85세. 유족들은 “올해 추풍령이란 이름을 다시 찾아온  지 30년인데, 그 자부심이 대단하셨다”고 전했다.

한자로 '추풍령'이라고 새겨진 돌은 원래 다리에 새겨진 것이었지만, 다리를 새로 놓으면서 이 돌을 옮겨 놓았다.김홍준 기자

한자로 '추풍령'이라고 새겨진 돌은 원래 다리에 새겨진 것이었지만, 다리를 새로 놓으면서 이 돌을 옮겨 놓았다.김홍준 기자

경상과 충청을 오가는 길목으로 꼽히니, 추풍령에서는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선조실록에 추풍령을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 9개 번대 중 3번대가 이곳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도 북한군이 이곳을 거쳐 낙동강까지 진격했다. 1728년 이인좌의 난에도 언급된다. ‘도순무사 오명항이 대군을 이끌고 추풍령을 넘었으나 영남의 도적이 이미 평정됐었음을 들었다(조선왕조실록 영조 4년 4월 8일).’

추풍령 대신 근처의 괘방령 이용한 이유는 
그런데, 왜군과 북한군은 진격할 때 추풍령을 넘고 퇴각 때는 이웃한 괘방령(掛榜嶺·300m)을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는 “왜군과 북한군이 두 고개를 모두 넘나들었지만, 진격과 퇴각을 구분해서 고개를 이용했다는 걸 일반화하기에는 무리”라며 “주력과 비주력부대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어느 한 고개만 이용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경북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와 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를 연결하는 괘방령(掛榜嶺, '급제 방을 내걸다'라는 뜻)은 예전 과거를 보러가는 이들이 추풍령은 '추풍낙엽'이 연상된다며 피하는 대신 넘어간 고개다. 사진은 김천시쪽 괘방령에 조성된 장원급제길 조형물. 김홍준 기자

경북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와 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를 연결하는 괘방령(掛榜嶺, '급제 방을 내걸다'라는 뜻)은 예전 과거를 보러가는 이들이 추풍령은 '추풍낙엽'이 연상된다며 피하는 대신 넘어간 고개다. 사진은 김천시쪽 괘방령에 조성된 장원급제길 조형물. 김홍준 기자

그렇다면 왜 추풍령과 괘방령으로 구분 짓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영남과 호서를 잇는 고개 중, 영남대로의 문경새재에 비하면 추풍령은 한적한 고개였다. 하지만 분명히 공식적인 ‘관로(官路)’였다. 그런데 추풍령에서 연상되는 ‘추풍낙엽’은 과거길 유생이나 장사치들에게는 금기어였다.

지난 18일 괘방령에서 만난 김천시 관계자는 “관로인 추풍령에서 장사꾼들은 혹시나 높은 사람에게 괜히 한마디를 들을 수 있고, 영남의 선비들은 추풍령이 더 낮고 평탄한데도 낙방을 연상시키는 이름 때문에 합격 통지를 뜻하는 괘방령을 더 이용했다”고 밝혔다. 따지자면, 왜군이나 북한군이 퇴각할 때 역시 ‘추풍낙엽’ 신세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추풍령 대신  괘방령을 이용했을 것이라는 ‘설’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수능(11월 18일)이 지척이다. 괘방령산장 주인 백기성씨는 “괘방령에 합격 기도를 드리러 오는 분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백두대간은 남에서 북으로 황악산~괘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금산으로 올라 친다. 금산에 올랐다. 추풍령을 제대로 보려면 눌의산 정상이 낫다.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 바로 옆에 만들어진 사명대사공원 내 평화의탑. 김홍준 기자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 바로 옆에 만들어진 사명대사공원 내 평화의탑. 김홍준 기자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 대웅전에서 불공을 드리는 신도들. 직지사는 김천에서 충북 영동군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다. 김홍준 기자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 대웅전에서 불공을 드리는 신도들. 직지사는 김천에서 충북 영동군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다. 김홍준 기자

차들이 고속도로와 국도를 바삐 지나간다. 추풍령역에는 기차가 하루 13편만 서고 나머지는 지나간다. 추풍령과 가까운 영동 황간면의 반야사나 월류봉, 김천 대항면의 직지사와 사명대사공원에 나그네의 발길이 멈춘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의 월류봉에서 내려다 본 전경. [중앙포토]

충북 영동군 황간면의 월류봉에서 내려다 본 전경. [중앙포토]

하지만 추풍령은 고갯길의 으뜸이다. 높이와 넓이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할 수 있는 중부내륙고속도로와 KTX가 생겼지만, 사람은 끊이지 않고 국토의 대동맥(경부고속도로), 국토의 등마루(백두대간)를 떠받힌다는 상징이 크나크다. 그래서 가을바람 불면 추풍령이다. 이름만으로도 값지다. 가게 이름 앞에 ‘추풍령’을 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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