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기껏 발전해도 전기 저장 설비 등 과제 산적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2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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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호 15면

‘2050 탄소중립’ 플랜의 또 다른 급소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용산에서 열린 탄소중립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용산에서 열린 탄소중립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갑자기 전기가 끊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일이 일어나기는 할까. 불행히도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일어난 정전만 해도 312건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5건보다 32%나 늘어난 수치다.

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여름철 폭염이라는 계절적 요인과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재택근무 증가로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전기 수요가 늘면서 변압기 용량을 초과해 차단기 등 보호장치가 작동했거나, 설비 수명 저하로 인해 정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력 계통(grid)’에 과부하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정전은 이 반대의 경우에도 생길 수 있다. 전기 생산(발전)이 넘쳐날 때도 전력 계통에 과부하가 생기면서 정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럴 때는 발전을 강제로 중지시킨다. 제주도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주도는 육지에서 들어오는 전기가 있고,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재생에너지(풍력·태양광)와 화력·LNG발전이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15년 9.3%에서 지난해에는 16.2%로 크게 증가했다.

제주, 올해 발전 출력제한 200회 육박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지자 바람이 많이 불거나 태양광이 좋은 날이면 발전량이 확 늘어나면서 전력 계통에 과부하가 걸린다. 이 때는 풍력·태양광발전을 멈춰야 한다. 발전을 강제로 중지시키는 ‘출력제한’(Curtailment)은 2015년 3회에 그쳤으나 지난해 77회로 급증했다. 올해는 벌써 200회에 육박한다. 출력제한은 남은 것을 보관할 수 없는 전기 특성과 전력 계통상 꼭 필요한 조치다.

출력제한이 빈번해 진 건 재생에너지의 생산 변동성이 크기 때문인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 계통의 ‘주파수 안정(일정한 전력량을 흘려 보내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주파수 안정을 위해서는 전력 생산이 적은 날을 대비한 보조 발전소가, 넘칠 때를 대비한 주파수 조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갖춰야 한다. 제주도는 지난해 11월 남제주복합발전소에 150㎿급 LNG발전소를 추가로 들였다. 한 달 뒤에는 서제주변전소에 40㎿급 주파수 조정용 ESS를 설치했다. 올해 8월에는 금악변전소에 50㎿급 ESS를 추가로 마련했다.

지난해 10월 김해시의 한 태양광발전소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김해시의 한 태양광발전소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금까지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을 24시간 가동해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해 왔다. 전기 수요가 많은 낮에는 LNG·중유발전소를 가동해 보충했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온실가스 배출 제로)’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세상을 맞았다. 탄소중립을 위해 정부가 찾은 해법은 석탄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 끌어 올리는 것이다.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따르면 2018년 41.9%였던 석탄발전 비중은 2030년 21.8%로 준다. 대신 재생에너지를 6.2%에서 30.2%로 끌어 올린다.

그런데, 제주도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발전 변동성을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설비가 ESS인데, ESS는 제주도가 설치한 주파수 안정용과 발전한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저장용 ESS로 나눌 수 있다. 후자는 쉽게 얘기하면 배터리로, 한여름 태양열이 뜨거울 때 생산한 전기를 모아 두었다가 전기 수요가 증가할 때 사용하는 데 필요한 장치다. 주파수 안정용과 함께 저장용 ESS를 설치한다면 재생에너지의 발전 변동성도 일정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고, 전기 사용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예컨대 밤 시간에 발전한 전기를 모아 두았다 수요가 많은 낮에 흘려보낸다면 그만큼 발전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런데, 불행하게도 전기의 수요·공급 시차를 해소해 줄 저장용 ESS는 거의 무관심 상태로 방치돼 있다. ESS 충전은 전기가 남아도는 시간에 해야 하는데 심야 전기요금 할인제도는 일몰됐고(2020년), ESS 설비 자금 지원도 2018년 72억원에서 지난해 35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무엇보다 ESS 화재가 자주 발생한 2018년 5월 이후 아직까지 화재 원인 규명이 안 돼 보급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6월 저장용 ESS 개발 및 확충에 2025년까지 31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저장용 ESS 외에도 전기 수요를 재생에너지 생산 시간대에 맞추는 ‘수요 반응 자원(DR·Demand Response)’ 관리도 시도하고 있다. 이는 공장 가동 시간 등을 조절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로 전기 수요를 재배치하는 형태다. 공급(발전)에 맞게 수요를 조절하겠다는 것인데,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말이 쉽지, 노동력 등 기업의 생산자원 투입 시간을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맞추자는 것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많은 시간이라고 갑자기 퇴근해 청소기나 세탁기를 돌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한전 전력시장 독점 운영 체계 개편을

또 다른 대안으로는 공급과 수요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가 거론되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는 기존의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전기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교환하는 지능형 전력망이다. 한마디로 전기 공급자는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전기 수요가 많을 때 비싸게 팔고, 소비자는 전기 공급이 많아 가격이 쌀 때 소비하는 것이다. ‘스마트’해 보이는 스마트 그리드를 운영하려면 그러나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저장용 ESS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전력시장을 민간에 개방해 판매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 한국전력의 전력망을 개방해서 가격 신호를 통해 새로운 사업자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1~2013년 제주도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된 스마트 그리드가 흐지부지된 것도 판매 경쟁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광주광역시(8000세대)와 서울(3000세대)에서도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판매 경쟁이 이뤄지지 않아 이렇다 할 성과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지금과 같은 한전의 독점적 시장 운영 체계에서는 현실성이 없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캠페인인 ‘RE100’도 지금과 같은 한전 독점의 체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정부도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2016년 6월 전기의 소매경쟁 법안을 발의했으나 이듬해 9월 국회 법안 심사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2050 탄소중립’과 ‘2030 NDC’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방향’이다. 그러나 방향만 쫓아가다가 늪을 만나 허우적거리거나, 절벽을 만나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렵게 쌀농사 잘 지어놓고 추수를 못하면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는 것은 좋지만 ‘전력 계통’과 전력시장 운영 체계에 대한 개편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제주도의 현실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 앞에 놓인 늪과 절벽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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