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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독일발 녹색열풍…탈탄소 ‘그린뉴딜’ 급가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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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호 14면

유럽서 거세지는 ‘에너지전환’ 바람

독일 차기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회담이 열린 지난 15일 베를린에서 안나레나 배어복 녹색당 공동대표, 크리스티안 린트너 자민당 대표,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후보(왼쪽부터)의 가면을 쓴 시위대가 기후보호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차기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회담이 열린 지난 15일 베를린에서 안나레나 배어복 녹색당 공동대표, 크리스티안 린트너 자민당 대표,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후보(왼쪽부터)의 가면을 쓴 시위대가 기후보호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골자로 한 이른바 ‘에너지전환(Energiewende)’의 전 세계 선두주자인 독일에 다시 한번 거센 녹색돌풍이 불고 있다. 주연은 역시나 친환경과 기후변화 적극 대응을 기치로 내세운 녹색당이다. 지난 9월 26일 독일 총선 이후 연정 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녹색당은 캐스팅보트를 쥔 킹메이커로 주목받고 있다.

녹색당은 총선을 5개월 앞둔 지난 4월 여론조사 지지율 28%로 한때 사상 최초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막상 총선에선 14.8% 득표에 그쳐 제3당을 차지했다. 안나레나 배어복(40) 녹색당 총리 후보의 저서 표절 의혹과 소득 축소 신고 논란 등의 여파와,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중시하는 독일 사회의 분위기가 막판 판세를 바꿔 놓았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16년 만에 물러나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 정부를 이을 차기 연립정부에 ‘녹색등’이 켜질 것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현재 녹색당은 제1당이 된 중도 좌파 사민당(25.7%)과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11.5%)으로 구성하는 이른바 ‘신호등 연정’ 협상을 벌이고 있다. 사민당은 적색, 녹색당은 녹색, 자민당은 황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호등 연정 성립이 유력하지만 만에 하나 중도 우파 기민·기사당 연합(24.1%, 흑색)을 중심으로 녹색당, 자민당 간의 ‘자메이카 연정’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녹색당은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녹색당은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1998~2005년) 주니어 연정 파트너로 7년간 국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반영된 녹색당의 정책이 에너지전환 정책의 큰 그림이 됐다. 현재 녹색당은 독일 내에서도 이미 16개 주에서 11개 주 연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주 정부를 이끌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독일 녹색당의 선전은 유럽의 다른 나라 녹색당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에선 이미 오스트리아·벨기에·핀란드·아일랜드·룩셈부르크·스웨덴 6개국의 연립정부에 녹색당이 참여하고 있다. 아직은 독일 녹색당만큼의 영향력에 미치진 못하지만 다른 유럽국 녹색당의 지지층은 날로 두터워지고 있다. 남유럽과 냉전시절 공산권에 속했던 중·동유럽에서도 녹색당에 대한 주목도가 커지고 있다. 유럽의회 녹색당그룹 멤버 세르게이 라고딘스키는 “코로나19, 기후변화 그리고 공통의 글로벌 도전들이 많은 나라에 그린 어젠다로 전환하려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독일 녹색당이 지난 4월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차지해 집권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하자 독일은 물론, 유럽 나아가 전 세계가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주류 정당이 아니었던 녹색당의 집권은 검증되지 않은 정치적 실험으로 일거에 정치지형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이 전 세계적으로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녹색당이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시대정신)로 대세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예상도 나온다.

친환경을 내세우며 좌파적 이념 성향을 가진 녹색당은 애초에 집권을 노린 수권정당이 아니라 재야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반(反)정당적 정당’으로 1980년 창당됐다. 녹색당이 ‘시위성 정당’에서 수권 정당으로 위상을 바꿀 수 있게 된 데는 당의 스타일이나 정책면에서 실용주의적 중도화로 갈아탄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있다. 녹색당은 냉전시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해체와 같은 극단적인 이상주의에 기울어 있었다. 지금도 탄소제로배출경제 같은 것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다분히 현실을 인정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춘다.

실용주의자인 배어복과 로베르트 하벡(51)이 녹색당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지금의 녹색당은 친환경, 친유럽, 친이주 정당을 표방한다. 녹색당의 강점은 무엇보다 환경정책에 있다. 지난여름 세기의 홍수로 서독 지역에서 200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차기 정부에서 녹색당의 입김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녹색열풍이 불면서 사민당과 기민·기사당 연합 등 다른 당들도 기후변화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며 호응하고 있다.

녹색당은 2035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퇴출하겠다는 강력한 공약을 내세웠다. 탈원전에 이어 석탄 발전소 가동 조기 중단을 주창하고 있다. 2030년까지로 예정된 탈석탄을 더 앞당겨야 한다고 요구한다. 독일이 자랑하는 자동차산업 분야의 탈탄소와 전기차 전환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다. 독일 메르켈 연립정부는 최근 기후변화대응법을 개정해 기존 계획보다 5년 앞당겨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90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65%, 2040년까지 88% 줄이기로 했다.

녹색당은 또 새로 짓는 모든 건물에 대해 지붕에 태양광패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소배출이 많은 항공기 여행의 비용을 올리고 장기적으로는 단거리 비행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공약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급격하다는 정치적 공격도 받고 있다.

대외정책의 변화도 눈에 띈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에 역행하고 있다고 여기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낸다. 이들 나라와의 교역관계 재고를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우회하는 러시아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에도 반대한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녹색당이 내건 공약들이 어느 정도 반영될지는 연정협상 결과를 두고 봐야 한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총선이 끝나면 연정 구성을 위한 협상을 길게, 그리고 꼼꼼하게 벌인다. 이 과정에서 연정에 참여하게 될 각 당의 정책들이 세밀하게 조정되고 합의사항은 연정협약으로 문서화된다.

중도 좌파 사민당은 최저 임금을 시간당 9.5유로(약 1만3000원)에서 12유로(약 1만6500원)로 인상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경제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개입에 반대한다. 기업과 고용주의 세 부담을 적극적으로 낮춰 신종 코로나19 위기 탈출을 도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의 정치적 인상과 증세에도 반대다. 녹색당의 친환경정책도 기업에는 부담에 될 수밖에 없어서 연정협상에서 어느 수준에서 채택될 것인지 관심사다. 부쩍 목소리가 커진 독일 녹색당의 행보는 한국의 녹색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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