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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서브프라임·DLS 사태…금융위기 단초 제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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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호 10면

[SPECIAL REPORT]
MZ세대 투기장 된 파생상품

지난해 여름 장마와 태풍이 이어지며 포기당 1만740원(9월 기준)까지 치솟았던 배추값이 올해 같은 달에는 5396원으로 절반 가까이 내렸다. 배추는 매년 기상 상황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품목인데, 배추값이 하락하면 농민이 손해를 보고 반대로 값이 오르면 김치 제조업체가 손실을 입게 된다. 농민과 김치업체는 이 같은 가격 변동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미리 배추를 고정된 가격에 사고파는 계약을 맺는다. 일단 계약을 맺고, 실제 거래는 후에 이뤄지는 데 이 같은 형태의 거래가 파생상품의 대표적인 상품인 선물이다.

실적 등 기업 펀더멘털과 무관

선물은 배추값처럼 가격 변동에 따른 투자 리스크(위험)를 방어(헤지)하는 게 목적이다. 이 같은 파생상품은 리스크 헤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투자금의 몇 배에 이르는 레버리지가 보편화돼 있고, 이게 최근에는 고수익 투자 상품으로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파생상품은 주가나 원유, 비트코인 등 기초자산 대상이 다양하고 일반 개인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선물이나 선물지수를 증권화한 상장지수증권(ETN), 상장지수펀드(ETF)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고 있다.

이 같은 파생상품은 주목적이 리스크 헤지인 만큼 투자 방식도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격이 ‘오른다’ ‘내린다’를 예측하고 투자하는 것인데, 일반 주식처럼 기업의 실적 등 펀더멘털에 기반한 투자가 아니어서 파생상품 투자를 두고 ‘도박’이라는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개인 투자자가 많이 몰린 원유·천연가스 ETN·ETF 중 레버리지 상품은 기초자산 가격이 오른다에, 인버스 상품은 가격이 내린다에 베팅하는 것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 형태만 놓고 보면 도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긍정적 측면에서 보면 파생상품은 리스크 헤지 외에도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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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파생상품은 일반적인 투자 방식과는 달리 수익 구조가 굉장히 복잡하다. 레버리지를 비롯해 각종 금융기법이 더해져 일반 투자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대부분의 파생상품은 원금을 잃을 수 있고, 선물이나 고배율 레버리지 상품은 원금 그 이상의 손해를 볼 수도 있다. 2019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은행들의 파생결합증권(DLS)·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도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시중은행은 독일 채권 금리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DLS를 판매하면서 ‘독일 채권 금리가 마이너스로만 떨어지지 않는 한’ 안정적으로 예금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애초에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이었는데 독일 채권 금리가 10년간 마이너스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이유로 ‘안정적인’ 상품으로 둔갑했고, 판매처는 수익 구조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투자자에게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2008년 국내 수출 중소기업들에 큰 손실을 안긴 환헤지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도 마찬가지다. 기업에겐 환율 변동 위험을 줄여 이익을 내거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는 파생상품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중소기업에게 대규모 손실을 불러왔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미리 약정된 환율과 금액에서 외화를 팔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환율이 약정범위 상한선보다 높아지면 시장 환율보다 싸게 외화를 팔고, 하한선보다 낮아지면 계약을 무효로 쳐 기업이 위험을 부담하도록 했다. 환율이 오를수록 업체가 막대한 피해를 입는 상품이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펴면서 기업들의 부도로 이어졌다. 당시 중소기업 50여 곳이 줄도산 했고, 700여 곳이 약 3조원 규모 피해를 봤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것도 모기지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파생상품이었다.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전문가조차도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품이 적지 않은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처럼 이들 상품이 과열되면 한순간에 무너져 금융위기의 발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험성 때문에 파생상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파생상품 투자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선물 ETF가 미국 증시에 상장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최정혁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리스크 헤지 차원에서 파생상품은 금융투자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확대되는 게 맞다”며 “일반 투자자에겐 금융투자 기회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코스피200’ ‘코스닥150’과 같은 코스피·코스닥지수 선물 상품이나 달러 선물인 ‘달러플렉스’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금 등 원자재와 관련된 선물 상품이 거래되고 있다. 선물 거래보다 증시에 상장돼 주식처럼 손쉽게 사고 팔 수 있는 ETN·ETF도 적지 않다. 특히 원자재 등 기초자산 가격대로 만기에 수익 지급을 약속한 증권인 ETN 설정액은 올해 들어 8월까지 7조6316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설정액을 넘어섰다. 21일에도 코스피200 선물에 투자하는 ‘KB KOSPI200 선물 ETN’, ‘KB 인버스 KOSPI200 선물 ETN’ 등 4종이 증시에 신규 상장했다. 이들 상품 중에서는 수익이 곱절이 되는 레버리지나 곱버스 등에 개인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

증권사 파산 땐 원금 모두 날려

그러나 이들 상품 역시 선물 투자와 마찬가지로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이 그대로 수익률에 반영되기 때문에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원유 공급 과잉과 코로나19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유가 반등을 점친 국내 투자자들이 원유 ETN에 투자했지만, 유가가 급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봤다. 특히 ETN은 기초자산의 변동률과는 관계없이 운영 증권사가 파산하면 한순간에 투자금을 모두 날릴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하나 더 있다. 이 외에도 특정 종목의 주가 또는 주가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그 변동과 연계해 사전에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상품인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다양한 파생상품이 나와 있다. 최 교수는 “파생상품 자체가 변동성이 매우 크고 위험성이 높은 투자 상품이므로 투자 포트폴리오의 일부 자금만으로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ETF·ETN
ETF는 자산운용사가 발행하는 인덱스 펀드의 한 종류이고, ETN은 증권회사가 발행하는 파생결합증권이다. 따라서 ETF는 자산운용사가 파산해도 원금을 찾을 수 있지만, ETN은 증권사가 파산하면 원금을 잃을 수 있다. ETN은 ETF에 비해 기초자산이 다양하기 때문에 투자 선택의 폭이 넓은 게 특징이다. ETF는 펀드매니저의 재량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ETN은 기초자산이 같다면 모든 상품의 수익률이 동일하다.

DLS·DLF
DLS는 금리·환율·금·원유 등 기초자산이 특정 기간에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지 않으면 약정 수익률을 지급하고, 구간을 벗어나면 원금도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증권사가 발행하고 증권사에 시중은행에서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한다. DLF는 기초자산에 DLS를 담은 펀드다.

ELW
삼성전자 등 특정 종목을 사전에 정한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증권으로 고수익, 고위험의 옵션 상품 중 하나다. 주가가 상승할 때 살 수 있는 권리를 ‘콜워런트’라고 하고, 주가가 떨어질 때 팔 수 있는 권리를 ‘풋워런트’라고 한다.

뉴욕증시 커피만 기초자산으로 삼은 ETN도 나와

메타버스, 탄소배출권, 심지어 커피까지. 최근 파생상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파생상품의 기초자산도 다변화하고 있다. 시대가 변화하고 투자자들의 입맛이 바뀌면서 주식·금리·원자재 위주였던 파생상품 기초자산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장 눈길을 끈 게 MZ세대의 관심사인 메타버스(3차원 가상공간) 관련 상품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1일 신한금융투자의 ‘신한 FnGuide 메타버스 ETN’을 상장했다. 이 상품은 에프앤가이드의 메타버스 지수를 추종하는데, 만기일은 2024년 9월 6일이다.

K뉴딜 관련 파생상품도 잇따라 상장하고 있다. 삼성증권·KB증권·하나금융투자 등은 K뉴딜을 추종하는 ETN 7종을 최근 상장했다. ‘KB 레버리지 KRX 2차전지 K뉴딜 ETN’, ‘삼성 KRX 레버리지 BBIG K뉴딜 ETN’ 등이다. 이들 상품은 KRX 2차전지 K뉴딜 레버리지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 속에 관련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최근 국내 ETN 시장 최초로 국내 물가연동국채와 미국 물가연동국채(TIPS)를 각각 추종하는 ETN 4개 종목을 상장했다.

전통적 인플레이션 헤지 상품인 금·은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도 8~9월 들어 봇물을 이루고 있다. 9월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상장된 은 선물에 투자하는 ‘KB 레버리지 은 선물 ETN’, 은 선물 일간 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는 ‘미래에셋 레버리지 은선물 ETN’ 등이다. 미국에는 커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TN도 등장했다. 아메리칸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아이패스 시리즈B 블룸버그 커피 서브인덱스 토털 리턴 ETN’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마이너스 유가 사태 이후 생긴 ETN 상장 제한이 완화되는 등 국내에선 ETN 발행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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