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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코로나19에 '청년창업' 푸드트럭도 직격탄

중앙일보

입력

"4000만원들여 장만한 트럭, 1200만원에내놓아도 안 팔린다"

팬데믹 장기화로 영업장소 잃고 폐업 내몰려, 생계 위협받아 ‘투잡’
“고객 수요 있는 아파트 단지 주위에서 장사하게 해달라” 하소연도

아파트장에 들어선 푸드트럭의 모습. 코로나19 이후 행사와 축제가 사라지자 아파트 단지가 유일한 영업장소가 됐다. 코로나19 이전 손님 행렬이 이어지던 때와 다르게 행인 한 사람만 푸드트럭 앞에 서 있다. / 사진:손준영

아파트장에 들어선 푸드트럭의 모습. 코로나19 이후 행사와 축제가 사라지자 아파트 단지가 유일한 영업장소가 됐다. 코로나19 이전 손님 행렬이 이어지던 때와 다르게 행인 한 사람만 푸드트럭 앞에 서 있다. / 사진:손준영

생계수단이 완전히 사라졌다. 7월부터 9월 초까지 한 달 이상을 놀았다. 방역수칙을 지키면서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는데, 푸드트럭은 불법이다 보니 발언권조차 없다.”

2016년부터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는 30대 장모씨의 최근 매출은 코로나19 이전의 10분의 1 수준. 새벽에는 택배 적재 일을 하고, 오후에는 푸드트럭을 끌고 경기도 전역의 아파트를 전전한다. 대개 서울 아파트 단지의 경우 자릿세가 경기도 지역의 두 배라서 엄두조차 못 낸다. 단속이 심해 아예 출입이 허용되지 않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버틸 정도의 매출은 됐다. 올해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거리두기 기준도 더 까다로워지다 보니 매출이 60% 줄었다. 재료비·대출이자 빼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동두천 모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30대 최모씨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했다. 푸드트럭 업계는 봄가을에 몰리는 축제와 행사 때 사실상 1년 치 장사를 다 한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정이 ‘올스톱’되면서 푸드트럭은 갈 곳이 없어졌다.

푸드트럭에 뛰어들었던 최씨의 후배들은 올해 장사를 다 접었다. 최씨는 “지인들이 지난해부터 코로나19 때문에 장사를 접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반 이상 떨어져 나갔다”며 손사래를 쳤다. 종잣돈을 갖고 뛰어들었던 청년들이 코로나19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폐업하게 된 것이다.

서울 강남역 9번 출입구 ‘서리풀 푸드트럭존’이 있던 자리에는 서초구 코로나19 선별진료소가 들어섰다. 수원·용인·의정부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푸드트럭존도 모두 없어졌다. 4년째 곱창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는 정간호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군부대와 대학에도 많이 드나들었는데 지금은 ‘폭망’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시가 2015년부터 매년 한강공원 등에서 개최해온 ‘밤도깨비야시장’은 푸드트럭 업계에서는 ‘성지’로 불린다. 합법적으로 장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이고, 유동인구가 많아 한번 입점하면 금세 입소문을 타기 때문이다. 이에 매년 입점 심사 기간 동안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밤도깨비야시장도 22개월째 휴업 중이다. 사실상 마지막 남은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수년 동안 밤도깨비야시장에 입점해온 최씨는 올해는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입점 심사에 선발됐지만, 장이 운영되지 않아 영업하지 못했다는 최씨는 “지원하게 되면 면접을 봐야 하고, 시연(試演)도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루 이틀만 일을 못 해도 생계비를 벌지 못하니 끌려다니는 시간 자체가 아깝다”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 7월 밤도깨비야시장 측은 야심 차게 ‘방역형 야시장’을 준비했지만, 급증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4단계 거리두기 조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현재 밤도깨비야시장은 푸드트럭 상인들의 매출고를 위해 도시락 조리 비용을 지원, 소외계층과 의료진에 도시락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방편들이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장씨는 “밤도깨비 측에 하루 35만~40만원 정도 입점비를 내는데, 수익을 내려면 최소한 입점비의 7~10배를 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도 “케이터링(catering, 행사 때 음식 제공)과 같은 나눔 행사들은 일회성이 짙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장사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존의 주요 영업환경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줄줄이 사라진 지금, 푸드트럭 업주들은 아파트 단지로 몰려들고 있다. ‘아파트장(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개개인이 아파트와 직접 계약하는 ‘단독장’과 총책임자 한 사람이 품목별로 팀을 구성해 아파트와 계약하는 알뜰장이 있다. 이러한 아파트장은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다. 아파트 입주민 및 관리소와 푸드트럭 업주들 간의 ‘자릿세 합의’에 따른 불법영업이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돌입 후 아파트 측에서 일방적으로 “장사하지 말아달라”는 요청도 늘었다. 장씨는 “불법영업인 만큼 나가달라면 무조건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트럭 헐값에 내놔도 안 팔려…‘투잡’으로 생계 유지

서울 서초구 선별진료소. 원래 ‘서리풀 푸드트럭존’이 있던 자리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곳에 선별진료소가 들어섰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선별진료소. 원래 ‘서리풀 푸드트럭존’이 있던 자리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곳에 선별진료소가 들어섰다. / 사진:연합뉴스

7만7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푸드트럭 인터넷 카페에는 한때 청년 창업에 대한 희망과 열띤 토론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요즘 올라오는 글들은 중고트럭 매매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튀김기와 발전기, 타코야키(일본식 문어구이) 기계 등 각종 물품을 처분한다는 글이 주로 올라온다.

최씨는 2017년 초에 당시 가격으로 2000만원을 주고 푸드트럭을 샀다. 개조와 용도변경 및 비품 구매까지 든 총비용은 약 4000만원. 이 푸드트럭을 지금 매물로 내놓으면 1200만원에 팔기도 어렵다. 최씨는 “지금은 대출이자와 월세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올해 그만둔 동료와 선후배가 정말 많다”며 “트럭을 내놓는 사람은 많은데 사는 사람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계를 위해 다른 일거리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장씨는 “푸드트럭 장사와 겹치지 않는 새벽 시간대에 물류창고에서 택배를 적재하는 ‘상하차’ 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자가용으로 물류를 배달하는 ‘쿠팡 플렉스’에 나선 경우도 적지 않다. 푸드트럭을 최대한 활용해 생계비를 버는 것인데, 이 또한 경쟁이 심해 자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씨는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후배들이 쿠팡 플렉스를 많이 하는데,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곱창 푸드트럭을 운영했던 20대 중반 김모씨는 지난해 쿠팡 플렉스와 푸드트럭을 병행했다. 수원시 일대에서 장사하던 김씨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지난 5월 푸드트럭을 접었다.

푸드트럭을 이용해 배달 업계에 뛰어들려는 시도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장씨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등록을 해보려 했는데, 푸드트럭은 안 된다고 하더라”며 “푸드트럭은 영업장소가 계속 바뀔 수 있고, 사업장 허가가 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허가는 물론 등록 자체를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현행법상 푸드트럭은 ‘이동형 업체’로 분류되기 때문에 배달 지역의 특정 장소 기반으로 주소를 입력해 운영되는 배달 서비스 특성상 자격이 안 되는 것이다.

세금은 걷어가면서 영업장소 요청에는 나몰라라식

‘청춘 푸드’ 업주가 곱창을 조리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영업장소가 막막한 데다 손님이 급감한 탓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사진:손준영

‘청춘 푸드’ 업주가 곱창을 조리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영업장소가 막막한 데다 손님이 급감한 탓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사진:손준영

푸드트럭의 영업행위가 불법인 이유는 영업신고 제도의 미비에 있다. 푸드트럭 사업의 영업신고는 업계 특성상 최초의 행사나 축제가 진행된 곳에서 이뤄진다. 만일 다른 지역의 행사장에서 영업을 희망할 경우 소재지를 추가해야 한다. 전국 어느 행사장을 가든 영업신고지는 최초에 장사했던 지역이고, 업주들은 영업신고에 대한 면허세를 납부한다.

그런데 이 영업신고는 보통 기간제다. 최초 영업신고지도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행사 기간으로 한정된다. 장씨는 “행사에 대한 허가서·영업신고증을 받을 때 계약서를 함께 가져간다”며 “그 계약서상에 명시돼 있는 축제 기간 내에만 장사를 허용해준다”고 말했다.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새로운 축제나 행사가 열리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영업신고증을 발급받을 수 없는 상태다. 최초의 영업신고 자체가 만료됐다 보니 소재지 추가에 대한 명분조차 없는 상황이다.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푸드트럭 업주들은 불법으로라도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아파트장 같은 곳을 찾지 못하면 떠돌이 장사를 하는 소위 ‘노방’신세를 면키 어렵다. 장씨는 “어떤 땐 물어야 하는 벌금 값이 더 많을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벌금을 물어가며 장사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거주하는 이모(28)씨는 1년 동안 단속반을 모두 3차례 만났다. 이씨는 “계도기간이 있어서 세 번까지 그분들도 봐준다”며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청구되지 않았던 벌금까지 한번에 부과되는데, 많게는 200만원까지 낸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6000원짜리 국수를 하루 평균 30그릇 정도 팔았는데, 한 번이라도 벌금이 부과되면 치명상을 입는다. 이씨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트럭을 팔고, 막노동해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나마 지금은 손바닥만 한 가게라도 열게 돼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씨는 “사실 우리도 인근 상가와 품목이 겹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상가와 마찰이 없을 만한 장소를 고른다”며 “그런데 영업 자체가 현행법상 불법이고, 노점에 대한 인식 자체가 좋지 않다 보니 무조건 신고부터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푸드트럭 업주들의 가장 큰 불만은 현행법상 푸드트럭 사업이 불법인데도 세금은 납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장씨는 “우리도 카드 결제를 이용하는 일반 사업자와 똑같다”며 “부가세와 종합소득세 모두 신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가스안전공사에서 가스 허가를 받았고, 전기안전공사에서 전기 시설도 허가받았다”며 “푸드트럭 차량 용도 변경 신청도 관할 주소지 지자체에 했고 차량등록번호를 받아 세금도 낸다. 그런데 영업장소 요청에는 나몰라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아파트 떠돌아도 좋으니 불법이란 꼬리표만 떼달라”

코로나19 이전 푸드트럭이 성행했을 당시 제주도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즐기고 있는 모습. 푸드트럭 업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푸드트럭이 성행했을 당시 제주도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즐기고 있는 모습. 푸드트럭 업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푸드트럭 영업신고지와 소재지의 불일치는 각종 제도 및 혜택의 누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금이나 대출이 많이 생겼지만, 푸드트럭 업주들이 혜택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장씨는 경기도 주민이고, 주요 영업활동이 경기도에서 이뤄지는 만큼 경기도 소상공인 지원을 신청했다. 그런데 장씨의 사업장 주소는 최초의 행사 참여지인 서울로 등록돼 있다. 현재 열리는 축제나 행사가 전무하다 보니 추가로 영업신고를 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경기도의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장씨는 “담당 직원과 사업장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통과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당신 지금 이곳에서 영업하는 게 아니지 않냐’는 식으로 인정을 안 해준다”고 하소연했다. 최씨는 “소상공인 대출이 가능하지만, 통과는 매우 힘들다”며 “담당 직원에게 푸드트럭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해야 한다. ‘금액 자체도 일반 소상공인에 비해 훨씬 적을 것’이란 답변을 들어야 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푸드트럭은 2014년에 처음 식품위생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며 영업 합법화의 길이 열렸다. 이후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청년창업과 규제개혁의 상징으로 육성하기 시작했고, 2017년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이 방영되며 인기가 고조됐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창업의 상징으로 푸드트럭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청년들이 너나할 것 없이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씨는 “장사를 시작하려던 무렵에 정부에서 푸드트럭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었다”며 “그래서 청년들이 더 몰려들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는 “푸드트럭은 불법 노점 대신 정상적으로 점포를 운영하자는 취지로 탄생한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 가스 안전 검사와 차량 구조 변경을 마치고 세금까지 다 냈는데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장소가 없으니 버림받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푸드트럭 업주들은 현재 주 영업지인 아파트장만이라도 허가해달라고 입을 모은다. 장씨는 “유동인구가 적은 곳에 푸드트럭존 같은 것을 만들려 할 게 아니라, 고객 수요가 있는 아파트 단지 같은 곳에 허가를 내주면 좋지 않겠나”라며 “이런 곳은 지역 주민이나 상권과도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아파트장 허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는 ‘광주시 음식판매자동차의 영업장소 지정 등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아파트를 영업장소로 새롭게 지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례가 없는 나머지 지역에서는 여전히 불법인 상황이다. 최씨는 이렇게 호소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죠. 망망대해에서 돛 잃은 배 같은 느낌이에요. 우리에겐 트럭이 가게지만, 사람들 인식은 그렇지 않네요. 밤 10시까지라는 시간제한도 좋고, 아파트를 떠돌아도 좋으니 불법이라는 꼬리표만 떼주세요. 우리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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