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숏컷? 머리 묶으면 징크스, 경기에 집중 위해서죠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23 00:02

업데이트 2021.10.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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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여자배구 ‘대세’ 김희진 

경기도 기흥 IBK기업은행 연수원 체육관에서 조명을 끄고 촬영을 했다. 김희진의 옆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김현동 기자

경기도 기흥 IBK기업은행 연수원 체육관에서 조명을 끄고 촬영을 했다. 김희진의 옆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김현동 기자

요즘 대세 스포츠는 여자배구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도쿄 올림픽 예선에서 일본에, 8강전에서 터키에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거뒀다.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가장 값진 4등’을 했다. 특히 김희진(30·IBK기업은행)은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눈물겨운 투혼을 펼쳤다.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김희진은 김연경에 이어 여자배구 대세로 자리를 굳혔다. 무릎 부상도, 악플러도 김희진을 꺾지 못했다.

프로배구 V리그 개막에 맞춰 김희진과 인터뷰를 했다. 경기도 기흥의 IBK기업은행 연수원에서 만난 김희진은 쾌활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김연경은 존재만으로 든든한 동료

도쿄 올림픽에서 퉁퉁 부은 오른쪽 다리가 안쓰러웠는데요. 지금은 어떤가요.
“당시는 무릎 수술 후에 안정을 취할 시간이 없었고 수술 부위에 물도 많이 찼어요. 지금은 수술 후 시간도 많이 지났고 안정기도 찾아와서 괜찮습니다. 후유증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걸 생각하다 보면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올 시즌 IBK기업은행의 전력과 가장 껄끄러운 팀은?
“자신감은 있되 확신은 하지 않습니다. 봄배구(플레이오프) 갈 거다 못 갈 거다 예상하기보다 한 경기 한 경기 좋은 플레이를 하면 결과는 따라올 거고요. 높이가 있는 현대건설과 인삼공사가 껄끄러운 팀이라고 봅니다.”
개막전에 헤어밴드를 했던데 그건 팀 동료 김수지 선수 트레이드마크 아닌가요.
“시즌 전에 머리 자르고 왔어야 하는데 시간을 못 냈어요. 아예 밴드를 해서 머리를 넣어버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밴드가 신경 쓰이더라고요. 머리를 좀 더 자르고 밴드를 빼려고요. 수지 언니는 예쁜 밴드를 했는데 저는 진짜 앞만 보기 위해서 밴드를 한 거죠. TV에 어떻게 나올지는 생각도 안 했어요.”
김희진이 지난 17일 V리그 현대건설과의 경기에서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뉴스1]

김희진이 지난 17일 V리그 현대건설과의 경기에서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뉴스1]

별명이 많은데 얼마 전에는 스스로 ‘비둘기’라고 하셨죠.
“평화의 상징이잖아요. 제가 워낙 싸우는 걸 싫어하고 갈등을 좋아하지 않아요. 누구에게든지 맞춰줄 수 있고, 싫은 소리 잘 못하고…. 비둘기라고 불러주기보다는 김희진은 그런 성향의 선수구나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별명은 ‘곰돌이’입니다.”
실수하거나 잘 안 풀리면 자책하는 경향이 있었죠.
“전에는 저에게 후하지 않았어요. 엄청 잘 풀리는 날도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실수한 거 생각하고, 이럴 땐 더 해줬어야지 하면서 자책을 했거든요. 이제는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못했을 때는 이것만 좀 보완하면 되겠다며 격려하고 있어요.”

김연경-김희진 콤비는 최근 치킨 광고를 찍고, 예능에도 출연했다. 김희진은 “연경 언니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 하는데, 저는 처음이라 너무 어색하고 떨렸어요. 저 때문에 NG도 여러 번 났죠. 언니가 뭐라고 야단치려고 하다가도 제가 너무 떠니까 ‘괜찮아. 잘 하고 있어. 그대로 하면 돼’라고 격려해 줬어요”라며 웃었다.

오랜 시간 지켜본 김연경은 어떤 선수인가요.
“코트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리더십을 갖고 있어요. 연경 언니 같은 선수가 대표팀에 한번만 더 나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정도로요. 전 세계 배구팬이 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존재만으로도 동료가 든든하고 자신감 생기고, 더 기량을 높일 수 있는 선수잖아요.”
중성적인 매력으로 여성들이 더 좋아하는 선수라는 평판이 있는데요.
“예전에는 외모로 그렇게 봐 주셨다면 요즘은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몰두하는 모습을 멋있다고 해 주시는 것 같아요. 댄스 배틀 프로인 ‘스우파’(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출연자들을 좋아하는 것처럼요. ‘언니를 보면서 삶을 다시 돌아보고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하는 메시지도 많이 받아요.”
도쿄 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가 숏컷 스타일 때문에 엉뚱한 곤욕을 치렀는데요.
“머리가 짧다고만 할 게 아니라 왜 저 선수가 머리를 짧게 잘랐을까 생각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양궁 선수들은 모자를 쓰잖아요. 야구모자처럼 뒤에 구멍이 있는 게 아니라서 머리를 묶었을 때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선수가 좀 더 양궁에 몰두하기 위해 머리를 잘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김 선수의 스타일도 더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인가요.
“맞습니다. 제 단발머리 시절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그때가 예뻤거든요. 그런데 머리를 묶고 나서 안 좋은 징크스가 생겼어요. 그것 때문에 게임에 집중하지 못 하는 경우가 생겨서 잘랐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머리를 묶어서 얼굴이 좀 더 밝게 보이게 하는 게 어떠냐 하시는데 또 그런 징크스가 생길까 봐 꺼려집니다.”
리우 올림픽 때 엄청난 비난 댓글에 시달렸고 최근엔 악플러를 고소까지 했죠.
“처음엔 약간 언론의 자유? 개인의 자유 정도로 생각했어요. 저 혼자 비난 받으면 ‘저 사람들 아무 말 못하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더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데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욕을 먹고 협박까지 당하는 건 참을 수 없더라고요. 그리고 선수들이 대처를 잘 할 줄 몰라요. 소속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이렇게 함으로써 다음에 그 친구들에게 대답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싶었죠.”

풍선놀이처럼 재미있게 배구 해야

악플러를 만나면 등짝 스파이크 한번 날리고 싶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는 “제가 또 경찰서를 갈 수 있기 때문에…”라고 웃은 뒤 “그분들에게 더 이상 이러지 말아달라는 경고를 하는 거죠. 공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고통을 받을 이유는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이재영-다영 선수 뉴스가 배구팬들을 당혹스럽고 불쾌하게 했는데요.
“그 친구들 때문에 여자배구 인기가 떨어졌다고 느끼진 않아요. 오히려 팬이 더 늘어나고 있고, 선수들은 그런 일 때문에 경각심을 갖고 행동 하나 말 하나를 조심하게 됐죠. 도쿄 올림픽도 그 선수들 출전과 상관없이 모든 선수가 똘똘 뭉쳤어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 팀이 되는 모습에 온 국민이 감동하고 여자배구를 더 사랑해 주시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인 제 딸이 배구를 참 좋아합니다. 예쁜 조카가 배구선수 되고 싶다고 하면?
“실제로 제 조카가 키도 크고 배구도 좋아해서 언니가 ‘배구를 시켜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힘든 길을 안 걸었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부터 무한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생활체육으로 쉽고 즐겁게 하다가 배구가 정말 좋고 선수로 성공하고 싶다는 깨달음이 오면 그때 엘리트 쪽으로 가면 좋겠어요.”
선뜻 “배구 좋으면 선수 하세요”라는 말을 못하는 딜레마가 있네요.
“배구는 정말 재밌는 건데, 너무 어릴 때부터 배구는 힘든 거라고 생각을 할까 봐, 어른이 되어서 배구를 사랑하지 못하게 될까 봐 그런 거죠. 무조건 일등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폭력이 용인돼 왔잖아요. 그런 환경이 바뀌어야죠. 배구가 배우기 어려운 운동이지만 단순히 공놀이라고 생각하고 풍선 같은 걸로 재미있게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중앙UCN 유튜브 채널

중앙UCN 유튜브 채널

인터뷰 막판에 ‘즉문즉답’을 했다. ‘나에게 올림픽 메달은?’ 질문에 김희진은 “이루지 못한 꿈, 이뤄야 할 꿈”이라고 했다. 그는 올림픽에 세 번 나가 4등만 두 번 했다.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우리는 김희진을 대표팀에서 보게 될 것 같다.

라바리니 대표팀 감독, 선수들과 장난…“리더십에 감명 받아”
라바리니에게 장난을 거는 김희진. [중앙포토]

라바리니에게 장난을 거는 김희진. [중앙포토]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을 이끌었던 이탈리아 출신 라바리니 감독과 김희진이 장난을 치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다. 코보티비가 촬영한 이 영상에서 체육관 입구 바닥에 앉아 있던 라바리니가 옆에 앉은 김희진을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건다. 잠시 후 김희진이 라바리니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맞받는다.

이 장면을 본 통역이 “한국에서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의 어깨를 치면 큰일 난다”고 하자 라바리니는 “야, 너 일어서 봐”라며 김희진을 일으켜 세운다. 키를 재 보는 시늉을 한 라바리니가 “나보다 높네. 됐어”라며 쿨하게 돌아선다. 감독과 선수가 얼마나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사이인지를 잘 보여준 영상이었다.

김희진은 라바리니에 대해 “코트에 있는 선수보다 배구를 더 사랑하고 항상 공부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어요. 감독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배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돌아보게 되고, 배구가 얼마나 재미있는 운동인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게 바로 리더십이 아닐까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탈리아로 돌아간 라바리니가 한국 대표팀을 계속 맡을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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