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긴급상황 발생, 당나귀가 거품을 물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22 17:00

업데이트 2021.11.05 17:37

[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8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우와~ 당나귀다. 와우~ 멋질 걸. 길에서 호택이는 스타 중의 스타다.

우와~ 당나귀다. 와우~ 멋질 걸. 길에서 호택이는 스타 중의 스타다.

롱세스바예스를 떠난 우리는 린초아인(Lintzoain)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달했다. 늘 그렇듯 우리에게 하루 목표는 없다. 목표를 정할 수도 없다. 당나귀는 하루에 5시간 이상을 걸으면 무리가 온다고 했다. 한 번에 2시간 정도 걷고 쉰 다음 다시 세 시간 정도를 걸으면 끝이다. 그러니 ‘도착’이 아니라 ‘도달’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이제 첫날인데 우리의 일정은 철저히 당나귀에 맞혀져 있다는 걸 알았다. 5시간을 걷고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어귀에서 노인 한분이 손을 흔들며 미소 지었다.
“이 동네에는 몇 사람이나 살아요?”
마땅히 할 말이 없어 꺼낸 질문이었다. 성당 신부님 느낌이 들었으나 신분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62명이요. 그런데 방금 65명으로 늘었다우. 하하하.”
노인은 당나귀가 머물 좋은 장소가 있다며 언덕 위 풀밭을 가리켰다.
“일 년에 한두 번 파티 할 때나 사용하는 장소예요. 당나귀가 먹을 풀이 가득하니 파라다이스죠.”
맘씨 좋은 노인 말대로 당나귀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게다가 사방에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목줄을 풀어 놓아도 좋았다. 호택이로서는 5성급 럭셔리 호텔이나 다름없다. 다음 날 아침 호택이도 아침밥이 훌륭했는지 배가 불룩했다. 사방에 싸질러댄 오방떡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우리의 몸은 아직도 욱신거렸지만 호택이는 콧노래를 부른다.

호택이랑 같이 다니면 번쩍이는 세단이 조금도 부럽잖다.

호택이랑 같이 다니면 번쩍이는 세단이 조금도 부럽잖다.

역시나 호택이 발걸음은 경쾌했다. 40kg 가까운 짐을 지고 걷는데도 우리가 따라잡는데 애를 먹었다. 당나귀는 본능적으로 주도권 싸움을 한다. 이겼다고 생각하면 자기 의지대로 행동한다. 그랬다가는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호택이가 앞서나가려고 하면 목줄을 짧게 잡고 강하게 당기거나 앞길을 막아 귀찮게 했다. 아리츠가 알려준 방법이다.

 길 가운데 참나무가 쓰러져있다. 뭐 이 정도 쯤이야. 호택이가 뛰어넘었다.

길 가운데 참나무가 쓰러져있다. 뭐 이 정도 쯤이야. 호택이가 뛰어넘었다.

예쁜 돌다리가 있는 마을 주비리.

예쁜 돌다리가 있는 마을 주비리.

작은 개울 건너 아름다운 마을이 나왔다. 작은 아치형 다리로 연결된 주비리(Zubiri)라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호택이는 또 허리띠를 풀고 진수성찬을 먹었다. 가축이 없는 곳이어서 냇가에 한껏 자란 풀은 호텔 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호택이 컨디션은 최상을 향했다. 오후 4시경 쥬리아인(Zuriain)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5시간을 넘긴 상태라 이 마을에서 하루를 자야 했다.
“오늘 여기서 야영을 하자. 목장이 많으니 잘 곳이 있을 거야.”
텐트를 치기로 했다. 다리 건너에 작은 카페가 보였다. 이곳은 주비리 마을과 가까워서 일정상 순례객들이 아침 일찍 지나치는 곳이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당나귀가 먹을 풀이 있는 야영지를 물어보았다.
“큰길을 따라서 1km정도 가다 보면 초지가 나옵니다. 거기서 머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손발은 물론 콧구멍까지 씰룩대며 얻어낸 정보였다. 여기서는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도 생소한 바스크 지역이 아닌가. 마을을 벗어나자 잠실야구장보다 넓어 보이는 풀밭이 나왔다. 건물이라곤 덩그런 건초 창고 하나뿐이었다.
“와우! 좋다 저기서 자자.”
“좋아요. 호택이 밥도 많아 보이네요.”
짐을 내린 호택이는 풀을 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호택이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우리가 주는 영양식을 외면하더니 누런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뭔가 몸에 큰일이 난 게 분명했다.
“동훈아. 이 마을은 목축을 많이 하니까 한번 데려가 보자. 모두 가축 박사님들 아니겠어?”
호택이를 끌고 마을로 향했다. 이미 어둠이 깔린지라 사람 찾기가 어려웠다.
“동훈아. 너는 아리츠에게 연락해봐. 나는 저 다리를 건너가서 도움을 청해 볼게.”

카페에도 사람이 없었다. 다리를 건너가 사람을 찾는데 누군가 개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다.
“저기요. 혹시 영어를 할 줄 아시나요?”
“예 가능합니다. 저는 팜플로나에서 왔어요.”
자신의 이름을 존이라고 밝힌 사내가 말했다.
“지금 당나귀가 아파서 그러는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제가 스페인어를 전혀 못합니다.”
“아 저도 여행객이라 잘 모릅니다만...”
그때 다리 건너에서 흰색 밴 한 대가 건너오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저분께 도움을 청해 보죠.”
사내는 차를 세우고 무언가를 의논하더니 나를 불렀다.
“이분이 말 목장을 하시는데 마침 말을 다른 곳으로 옮겼답니다. 거기다가 일단 당나귀를 가져다 놓으라고 하네요. 그리고 그 옆에 텐트를 치면 좋을 거라고 합니다.”
흰 수염이 멋진 주인장은 직접 목장 문을 열어주며 당나귀를 데려오라고 했다. 존과 나는 당나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사이 동훈이는 아리츠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별거 아닐 거래요. 오늘 어떤 분이 주신 사과가 문제였을 거라네요. 곧 나을 거래요.”

“참 아부지. 짐을 가져와야하는데 어쩌죠?”
“걱정하지 마 내가 짐 싣고 올 차를 준비했어. 존이 차를 가지러 갔거든.”
잠시 후 존과 나는 풀밭에 두고 온 짐을 싣고 돌아왔다.
텅 빈 목장에서 호택이는 목줄도 없이 자유롭게 놀았다. 이놈은 무슨 복을 타고 났기에 어제는 5성급 호텔이고 오늘은 7성급 호텔이다. 그것도 독채로 말이다.
동훈이와 나는 말똥 냄새 진동하는 목장 한구석에서 또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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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잘못먹고 고생한 호택이.

사과를 잘못먹고 고생한 호택이.

동훈아. 오늘 큰일나는 줄 알았지? 호택이가 아프면 우리는 망하는 거야.

동훈아. 오늘 큰일나는 줄 알았지? 호택이가 아프면 우리는 망하는 거야.

지나가다가 허둥대는 우리를 구해준 존 아저씨. 복받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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