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로 시작해 75t 액체로켓…누리호 '30년 기적'이 날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2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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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진행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1단 추진기관이 2차 연소시험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진행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1단 추진기관이 2차 연소시험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30년 축적의 시간이었다.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첫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가 우주로 올라가기까지 걸린 세월과 그 의미다. 21일 발사에서 3단 75t 엔진의 연소가 조기종료되면서 목표 속도인 초속 7.5㎞에 도달하지 못해 마지막 궤도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우주발사체의 핵심인 1단부의 75t 엔진 4개 묶음과 2단부 연소과정까지는 완벽했다. 1957년 당시 소련이 세계 최초로 우주로켓 발사에 성공한 지 60여 년이 지난 뒤였지만, 한국은 그간 자체기술도 없었고, 미국이 한국의 우주로켓 개발을 원치 않아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공식 역사에는 없지만 국산 액체로켓 개발의 시작은 1991년이었다. 당시에도 고체로켓 기술은 있었지만, 사거리를 제한하는 한ㆍ미 미사일지침 때문에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만한 고성능의 로켓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다. 방법은 미사일지침 규제에서 자유로운 액체로켓을 자력으로 개발하는 것이었다.

당시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엔진개발실장을 맡은 채연석 전 항우연 원장(70ㆍ2002~2005년)은 “정식 연구비가 없어서 연구소 내ㆍ외부 돈을 그러모아 액체로켓을 개발을 시작했다”며“당시 외국에 공개된 연구보고서에 로켓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이 나와있지만, 상세한 것은 자체적으로 연구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추력 180㎏, 길이 20㎝의 인공위성용 추력기로나 쓸 수 있는 초소형 액체엔진이었지만, 원점에서 출발한 연구였기에 완성까지 4년이 걸렸다. 1995년 6월 당시 한국화약(현 한화) 대전공장 빈터에 컨테이너를 마련해 4초 동안 연소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항공우주연구원 최초의 액체로켓 엔진 시험. 1995년 6월 한국화약(현 한화) 대전공장 빈터에 컨테이너를 마련해 4초 동안 연소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최초의 액체로켓 엔진 시험. 1995년 6월 한국화약(현 한화) 대전공장 빈터에 컨테이너를 마련해 4초 동안 연소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추력 180㎏ 짜리 초소형 액체엔진 개발의 경험은 이후 한국의 공식 첫 ‘액체추진 과학로켓’KSR-3(Korean Sounding Rocket-III)로 이어졌다. KSR-3는 애초 액체가 아닌 고체로켓이었다. 1997년과 1998년 발사된 2단형 고체 과학로켓 KSR-2의 후속모델로, 3단형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항우연은 1995년 초소형 액체엔진 연소시험을 참관했던 당시 과학기술처 담당 국장을 설득, 액체로켓 개발로 방향을 틀 수 있었다. 1단형인 KSR-3에는 추력 13t급 가압식 액체엔진을 개발ㆍ장착했다. 1997년 12월 시작한 KSR-3는 당시 외환위기 상황이었지만, 7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5년 만에 개발에 성공했다. 1998년 8월 북한이 쏘아올린 대포동 1호도  KSR-3 개발의 자극제가 됐다. 당시 북한은 대포동 1호를 북한 최초의 인공위성인 광명성 1호를 실은 우주로켓이라 주장했다. 2002년 11월 충남 태안 안흥종합시험장에서 시험 발사한 KSR-3는 고도 43㎞, 거리 80 ㎞를 비행했다. 과학로켓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구 저궤도에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수준이 못됐다.

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13t 액체로켓과 30t로켓(오른쪽). 실제 발사까지 한 13t과 달리 30t은 터보펌프와 연소실 등 주요부품을 따로 개발하는 수준에 그쳤다. 사진 속 30t은 모형이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13t 액체로켓과 30t로켓(오른쪽). 실제 발사까지 한 13t과 달리 30t은 터보펌프와 연소실 등 주요부품을 따로 개발하는 수준에 그쳤다. 사진 속 30t은 모형이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어 개발된 게 2013년 1월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발사체 KSLV-1, 즉 나로호다. 2단형으로 구성된 나로호는 정식 위성 발사체이지만, 1단을 러시아의 최신형 안가라 로켓엔진을 그대로 들여왔다. 2단에는 고체 킥모터 엔진을 달았다. 그간 자력으로 개발해온 액체엔진은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여기엔 사연이 있었다. 1998년 2단형 고체 과학로켓 KSR-2 발사 성공 후 정부는 “2005년까지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장담은 했으나 시간도 기술력도 부족했다. 2002년 말 KSR-3 발사에 성공하고 남은 시간은 고작 2년. 그래서 생각해 낸 게 해외와 공동개발하는 방법이었다. 그 당시 소련 붕괴 직후 혼란스러웠던 러시아 외에는 협력에 응하는 나라가 없었다. 러시아도 처음엔 액체엔진 공동개발을 통해 기술이전을 해줄 것처럼 했다. 하지만 이후 의회의 반대 등으로 러시아의 로켓엔진을 들여와 쓰는 방향으로 최종 결정됐다. 2002년 KSR-3 발사 성공 이후 나로호까지 10년 이상 세월이 흐른 이유다.

항우연으로서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국가 프로젝트인 나로호와는 별도로 30t급 액체 로켓엔진 개발에 나섰다. 러시아와 협력이 무산될 경우를 대비한 B플랜이기도 했다. 2003년 개발팀을 만들어 자체 연구를 시작했다. 로켓엔진의 핵심인 터보펌프와 연소실까지 개발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합쳐서 하는 시험을 할 수 없었다. 당시 국내에는 연소시험 설비조차 없었다. 결국 터보펌프와 연소실을 러시아까지 가져가 시험을 해야했다. 설상가상 러시아 현지 연소시험에서 폭발사고가 생겨, 펌프와 관련 장비들이 까맣게 타버렸다. 러시아 측의 협조도 중단됐다. 그렇게 30t 액체 로켓 엔진 개발은 중단됐다. 하지만, 30t 액체엔진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자들은 누리호 75t 엔진개발 프로젝트에 그대로 이어졌다. 지난 세월 미완의 프로젝트들이 한국 독자개발한 첫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밑바탕이 된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75t 엔진 1기.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75t 엔진 1기.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 프로젝트의 최고책임자인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21일 오후 최종단계의 실패를 확인한 후 아쉬움의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로켓엔진 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도 외국에 가르쳐주지 않는 안보 기술이라 개발 초기에는 미국 등 우주강국의 우주박물관에 전시된 로켓엔진을 보기도 하면서 구조를 익혔다”며 “나로호 때도 기관단총을 든 러시아 보안요원의 살벌한 감시를 피해가며 러시아 과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액체 로켓엔진 기술의 힌트를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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