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담화 발표 내용 뒤집고, 대남 비방 담화에도 변화

중앙일보

입력 2021.10.22 00:29

업데이트 2021.11.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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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부쩍 잦아진 김여정의 담화문 정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둘째)이 지난 2019년 8월 24일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 현장을 찾았다. 김 위원장의 책상 위에 미국 애플사가 제작한 아이패드(원 안)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둘째)이 지난 2019년 8월 24일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 현장을 찾았다. 김 위원장의 책상 위에 미국 애플사가 제작한 아이패드(원 안)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1971년 8월 20일 남북적십자 파견원 1차 접촉을 시작으로 남북은 지금까지 667차례 만났다. 특사 교환이나 비공개 접촉을 제외하고, 통일부가 집계한 공식 회담 개최 횟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공식 창구 역할을 했던 장관급회담이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대표단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숙박회담을 했다. 합의문 문구를 놓고 동이 틀 때까지 거의 매번 밤을 새우며 협상을 했다. 남측 대표단을 태우러 평양에 갔던 항공기 승무원들은 비행기 안에서 15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회담에 참여했던 남측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에 비해 북측 대표단이 자율권이 없어 유연하지 못했다”는 거다.

2000년대 중반 북측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북측은 왜 그리 답이 늦고, 경직됐냐”고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비교적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북한)의 의사결정 구조는 남측과 다르다. (노동)당의 결정은 아주 신중하게 이뤄진다. 당이 한 번 내린 결정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해야 하는 게 대표단의 임무”라는 설명이었다. “남측에선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자리를 내놓으면 되지만 우리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당이 처음에 결정한 지침을 바꾸려면 상부에서 다시 논의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도 했다. 이는 당국간 회담만이 아니라 공식 입장을 내거나 민간을 상대할 때도 적용된다고도 했다. 개인의 목소리가 없고, 일률적인 전체주의의 단면이다.

외무성 부상 담화 후 비판 여론 일자 내용 수정
조용원 위상 낮아졌다 지적엔 정정 기사 내보내
융통성 없던 북, 서방 언론 평가 따라 신속 대응
막가파식 대신 대화 의식해 여론 관리 나선 듯

그런데 최근 북한의 움직임에선 과거와 다른 모습이 엿보인다. 언론으로 따지면 오자나 잘못된 팩트를 사후에 알리는 ‘바로잡습니다’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 매체들이 지난 8월 21일 오전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보통강변 살림집 건설현장 방문 소식을 다룬 게 대표적이다. 당초 보도는 정상학·조용원·이히용 등 노동당 간부들이 현지에서 김 위원장을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은 통상 서열순으로 호명한다는 점을 토대로 국내 언론들은 문고리 권력이자 정치국 상무위원인 조용원이 한 급 아래인 정상학 정치국 위원보다 위상이 낮아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자 3시간 뒤 북한은 “조용원이 동행했다. 정상학·이히용이 현장에서 맞이했다”라고 수정기사를 내보냈다.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사전 검열이 철저한 북한 관영 매체가 기존 기사를 정정하는 건 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건 최근 북한이 내놓은 ‘바로잡습니다’성 담화다. 북한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지 사흘 만(지난달 24일)에 공식 목소리를 냈다. 외무성 부상(이태성) 명의의 담화를 통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이태성 담화 7시간 뒤 김여정 당 부부장이 나섰다. “종전선언은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는 담화였다.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북한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는 남측 언론의 평가가 이어지자, ‘그게 아니고’라는 식의 진화성 담화를 낸 것이다.

한국 정부를 비판하던 김여정의 톤도 달라졌다. 김여정은 지난달 15일 한국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장면을 보고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에 충분하다”는 문 대통령의 언급을 향해선 4시간 만인 밤 10시에 화살을 날렸다. 그런데 지난달 24일과 25일 연이어 내놓은 담화는 조건부이긴 하지만 정상회담까지 언급하며,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지 열흘 만에 ‘셀프 바로잡습니다’를 내보낸 셈이다.

김 위원장 남매는 청소년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냈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하는 사진 속에 두 남매의 스마트폰이 종종 포착된다. 김 위원장 주변에 태블릿 PC가 놓여 있는 장면도 나온다. 북한 최고지도부가 실시간으로 서방 언론을 접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는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전에 없이 남측이나 서방의 여론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여정의 ‘바로잡기’가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지는 교란전술인지, 내부 혼선의 결과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단, 그 중심에 북한이 최고 존엄으로 여기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때로는 “내 생각에는”이라는 표현을 쓰며 독단적인 듯한 인상도 던진다. 하지만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북한 사회의 특수성, 그리고 고위 간부들의 분위기를 인식한다면 그의 말 한마디도 김 위원장과 교감을 거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임기말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들이기 위한 한·미·일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지난주엔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장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북핵 회담 대표인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이번 주말 서울을 방문한다. 한·미·일 정보수장은 지난 19일 서울에서 회동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백악관은 “조건없는 대화 촉구”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한·미·일 정보수장이 만난 19일 신형 SLBM을 쏘는 등 미사일 카드를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름 ‘선’을 넘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김 위원장이 무기 발사 현장을 찾지 않거나, 사거리를 조절해 발사한 미사일이 북한 배타적경제수역(EEZ)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것들이 그렇다. 과거 괌을 공격하겠다고 엄포를 놓던 일이나, 일본 상공으로 미사일을 날렸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1월 8일)던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에서 통신선 연결을 지시(지난달 29일)하고, 한국과 미국이 공격대상이 아니라고 공개 연설(11일) 한 것도 주변을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김 위원장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이중적 잣대’ 및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선결조건으로 명확히 걸고 있다. 서로 접촉과 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디테일에는 차이를 보인다. 악마가 숨어 있는 모양새다. 중재자로 나선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6개월 여 남았다. 내년 3월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임박해 북한이 대화에 응하고 나선다면 북풍 논란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2007년 남북은 대선 2개월을 남겨두고 10·4선언에 전격 합의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후속 협상등 진전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조급해하는 이유다. 북한이 정녕 바로 잡을 건 2007년의 교훈이 아닐까.

미사일 발사현장에서 모습 감춘 김정은의 노림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년 7개월째 미사일 발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집권 직후부터 미사일 개발에 집중해온 김 위원장은 미사일 발사 현장의 단골손님이었다. 모니터가 부착된 특별차량을 제작해 탑승하기도 하고, 배를 타고 현장을 찾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열린 8차 당대회에서 군사 분야 5개년 계획을 제시했다. 극초음속 미사일과 군사위성 등 무기 개발 과제도 던졌다. 지난 11일 당창건 기념일(10일)을 맞아 진행한 국방발전전람회(무기전시회) 개막연설에선 “우선 강해지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정작 김 위원장은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현장(지난달 28일)에도,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장(19일)에도 걸음하지 않았다. 발사 다음날 북한 매체가 “당중앙에 성공의 소식을 보고했다”는 식의 보도가 전부다. 그가 미사일 발사장면을 현장에서 관찰한 건 지난해 3월 21일이 마지막이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의 대외 메시지 관리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은 2019년 이후 대부분 한국을 겨냥하는 단거리 미사일을 쐈다”며 “김 위원장의 참관이 자칫 도발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 있어 한국과 미국을 의식해 참석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을 제외한 박정천 당 비서(전 총참모장)와 노동당 군수공업부장(유진) 등이 현장을 대신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통치방식의 변화라는 지적도 있다. 김 위원장이 인민경제 개선을 강조하면서도 경제 현장을 김덕훈 내각 총리가 챙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시험발사 현장에 모두 참여하는 건 일반적인 지도자 행태가 아니다”라며 “김 위원장은 중요 사안만 챙기고 나머지는 위임통치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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