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포커스

한국 핵무기와 핵잠수함에 대한 나쁜 아이디어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2021년은 핵보유국과 핵무기, 잠수함이란 관점에서 중요한 해다. 중국이 전략핵미사일을 대거 배치한 사실이 위성사진으로 확인되었다. 북한은 계속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초기 단계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일본·호주는 장거리 미사일의 정확도를 향상하는 중이다. 미국·영국·호주는 오커스 안보협정을 맺고 호주에 핵 추진 잠수함을 최소 8대 지원하기로 했다. 미 국방부가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위한 리뷰에도 들어갔다.

한국의 학자·언론인·정치인 사이에서도 유의미한 관련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에선 안보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본다.

문정인의 비현실적 한·불 핵잠협력
독자 핵 억지력도 안전 보장 안 돼

일례로,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오커스 동맹이 한국으로 하여금 한층 전략적 자주성을 추구하게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미국이 호주에 핵잠수함을 지원함으로써 중국과의 군비 경쟁을 초래했다는 것인데, 중국의 대규모 군비 증강에 놀란 호주가 프랑스가 제공할 잠수함보다 더 발전된 잠수함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중국은 호주 앞바다인 남태평양 바누아투에 잠수함 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호주에 대규모 경제보복을 했다. 문 이사장은 호주 역시 한국만큼이나 국방을 수호할 권리가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문 이사장은 핵잠수함 획득을 위해 한국이 프랑스와 함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국이 모두 미국에 퇴짜맞았다는데 착안한 듯하다(※트럼프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핵 추진 잠수함 관련 기술·핵물질 이전 요청을 거부했었다). 먼저 호주가 프랑스와의 계약을 파기한 게 자국에 필요한 핵 능력을 프랑스가 제공하지 못해서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보다 프랑스와의 전략적 관계를 선호하는 건 전략적이지도 않다.

다트머스대 대릴 프레스 교수와 제니퍼 린드 교수가 7일 자 워싱턴포스트에 미국이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을 지지해야 한다고 기고한 것도 있다. 중국에 대한 입장차와 북한의 핵 능력 증가 때문에 한미동맹이 위기에 처했고 한국이 안보 면에서 미국에 의지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가정하면서다. 이론적으로 흥미로울진 몰라도 경험적 증거는 없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해외 주둔 미군 철수 주장은 충격적이었으나 그의 안보 보좌진이나 공화당의 반대로 레토릭에 그쳤다. 미 의회 내에 누구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이 공격받았을 때 미군의 지원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대단히 높게 나왔다.

한국에 핵잠수함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해 문 이사장은 설명하지 않았다. 원거리 작전을 해야 하는 호주와 달리 한국은 재래식 잠수함으로도 북한군을 억제할 수 있다. 중국 위협 대비 차원이라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두 교수는 한국이 핵잠수함을 통해 독자적인 핵 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더 안전해지는 건 아니다. 첫째, 일본도 핵무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게 만들 수 있다. 둘째, 미 의회가 핵확산 우려 때문에 한국의 시도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한국에 치명적인, 미국과의 신뢰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중국이 한국을 불신, 사드 배치 때보다 더 큰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미국이 한국 안보에 적극적이지 않으면 독자적인 핵 억지력 확보가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현재 미국은 어느 때보다도 적극 지지한다.

어쨌든 논의는 이뤄져야 한다. 바이든 정부가 핵 태세 검토에 들어간 만큼 한국은 ▶동맹 관계 ▶미국의 핵우산 신뢰 ▶한반도 핵 억제를 강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안은 이들을 약화하는 내용이지만, 차차 논의를 통해 다듬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