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은화의 생활건축

원정수·지순 부부건축가를 기리며

중앙일보

입력 2021.10.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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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원정수(1934~2021)와 지순(1935~2021).

두 사람은 1959년 결혼해 62년간 부부이자 동료 건축가로 살았다. 서울대 건축공학과에서 만났고 간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등을 설립했으며 한국은행 본점, 포스코센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자택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숱한 건물을 세웠다. 지난달 21일 아내가 별세했고, 19일 뒤인 지난 10일 남편이 아내 곁으로 떠났다. 그날은 결혼 62주년이었다. 일평생을 동반자로 살았던 두 사람은 마지막 가는 길조차도 그랬다.

5년 전 간삼건축 상임고문인 부부를 인터뷰했을 때 남편 원정수 고문은 “지순 없는 원정수는 상상할 수 없고 원정수 없는 지순은 무의미해진다”고 했다. 목천문화재단의 건축 아카이브 작업으로 일생의 이야기를 담은 『원정수·지순 구술집』이 나온 직후였다. 당시 아내 지순 고문이 입원한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에서 부부를 만났다. 인터뷰 첫머리부터 끝까지 ‘역경을 딛어낸’ 이야기가 굽이굽이 흘렀다.

원정수·지순 건축가의 생전 인터뷰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원정수·지순 건축가의 생전 인터뷰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 고문은 대한민국 여성 1호 건축사다. 대학교에 여자 화장실이 따로 없어 망보며 화장실을 다녔던 시절을 지나, 공사현장에 여자가 드나들면 재수 없다 해서 전달사항만 벽면에 적어놓고 돌아오던 시절을 또 지나 1967년 건축사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아이 셋을 둔 주부가 여성 최초 건축사가 됐다며 일간지에 기사가 났다. 건축사 취득 후 첫 프로젝트의 건축주는 육영수 여사였다. 육 여사를 주축으로 고관 부인들이 돈을 걷어 집창촌 여성을 위한 건물인 ‘양지회관’을 지으려는데 지 고문이 이 프로젝트를 맡았다.

부부의 건축 인생에서 한국은행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은행 본점은 1960년대 시작해 80년대까지 약 20년에 걸쳐 무려 세 차례 현상설계 공모전을 연 뒤에 지을 수 있었다. 세 공모전 모두 원 고문이 1등으로 당선됐다. 첫 번째 당선 이후 수도 이전 이슈로 무산됐고, 두 번째에는 총재가 바뀌면서 중단됐고, 세 번째에서야 프로젝트가 현실화됐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은행 총재만 8명이 바뀌었다. 건축을 건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런 일을 다 당하고도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눈물겨운 완주를 했다.

스마트 빌딩인 포스코센터를 설계하면서 유럽산을 주로 쓰던 외벽유리를 국산화하는 등 수많은 족적을 남겼지만, 두 건축가의 이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욕심 안 부리고” “열심히 연구하며” “최선을 다해”와 같은 말을 부부는 참 많이 했다. 환갑을 맞아 떠난 싱가포르 여행에서조차 땡볕을 뚫고 우리나라 건축현장을 찾아다녔다는 부부는 타고난 건축인이자 천생연분이었다. 두 분이 하늘나라에서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집을, 함께 재미나게 지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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