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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사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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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10여 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박배일 감독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그곳의 사람들이 그의 주인공이다. ‘사상’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풍경은 익숙하다.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부산 사상구. 거주민들은 쫓겨나고 힘겨운 투쟁은 이어진다.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 반복됐던 ‘개발’의 모습이다.

여기서 다큐 감독 박배일은 매우 사적인 인물을 카메라에 담는다. 자신의 아버지 박성희다. 공장 노동자인 그는 IMF 금융위기 때 실직해야 했고 삶의 터전을 위협받았으며 손가락이 잘리는 산재를 입고 우울증에 시달린다.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5년간의 투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포크레인 기사 최수영이다.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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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엔 인상적인 비주얼이 여럿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폐허’로 수렴된다. 그 폐허는 단지 공간적 이미지가 아니다. 9년 시간 동안 ‘사상의 시간’을 겪으며, 풍화작용을 겪듯 서서히 부서져 간 박성희와 최수영의 육체야말로 이 다큐가 보여주는 폐허의 실체다.

여기서 감독은 매우 대담한 스펙터클을 시도한다. 아버지의 몸을 찍은 엑스레이 사진과 사상을 내려찍은 사진을 겹쳐 놓았다. 이것은 육체에 아로새겨진 폐허의 공간이며, 이 압도적인 장면은 이 다큐의 메시지를 날카로우면서도 압축적으로 전하며, “자본의 폭력은 어떻게 육체를 파괴하는가”라는 질문에 명료하게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