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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타수 무안타 이정후에게 무슨 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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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정후

이정후

미국 메이저리그(MLB) 마지막 4할 타자는 1941년 테드 윌리엄스(당시 보스턴 레드삭스)다. 윌리엄스는 그해 143경기에 출전, 타율 0.406로 시즌을 마쳤다.

윌리엄스의 4할 타율이 가치 있는 건 결과만큼 투명한 과정이 한몫한다. 그는 1941년 9월 28일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조 크로닌 감독으로부터 “쉬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그의 타율이 0.39955(448타수 179안타)로 반올림하면 정확히 4할이었다. 마지막 경기를 뛰지 않아도 4할 타자가 되는 거였다. 마지막 경기는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와 원정 더블헤더였다. 한 경기도 아닌 두 경기에서 4할 타율을 유지한다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감독의 제안을 거절하고 두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 8타수 6안타를 때렸다.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은 훗날 ‘대부분의 선수가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정당화했을 테지만, 윌리엄스는 아니었다. 그가 테드 윌리엄스인 이유’라고 했다. 윌리엄스의 4할 타율은 조 디마지오가 달성한 56경기 연속 안타, 사이 영의 개인 통산 511승과 함께 깨지기 힘든 MLB ‘꿈의 기록’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021년 KBO리그 타격왕 경쟁이 치열하다. 20일까지 이정후(키움 히어로즈)·강백호(KT 위즈)·전준우(롯데 자이언츠)가 0.347로 동률이었다. 타율을 반올림하지 않으면 이정후가 1위이지만, 안타 1개에 희비가 엇갈릴 정도다.

타격왕 경쟁을 미궁 속에 빠트린 건 이정후다. 그는 지난 15일까지 타율 0.362를 기록해 2위 강백호(0.348)에 1푼 이상 앞선 선두였다. 그러나 16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부터 20일 잠실 LG 트윈스전까지 5경기 18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타격감이 식은 가장 큰 이유는 부상이다. 지난주 대구 원정 때 이정후의 옆구리 근막통증이 재발했다. 지난 8월 그를 괴롭혔던 부상이다. 구단 트레이닝 파트는 이정후에게 휴식을 권유했다. 경기에서 빠져도 타율은 유지되기 때문에 타격왕에 유리할 수 있었다. 때마침 강백호의 타격감이 부침을 보일 때였다. 하지만 이정후는 통증을 참고 지명타자로 뛰고 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이정후의 경기 출전 의지가 강하다”고 했다.

한 구단 트레이너는 “이정후 같은 왼손 타자는 타격할 때 왼쪽 복사근이 오른쪽보다 더 강한 힘을 내야 한다. 오른쪽 복사근을 다쳐서 그나마 타격할 때 부담이 덜할 수 있지만, 통증이 아예 없지 않다. 잘 참고 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00% 몸 상태가 아닌 만큼 기록에서 계속 손해를 본다.

타격왕은 이정후에게 욕심 날 법한 타이틀이다. 1994년 타격 1위(0.393)에 오른 아버지 이종범(당시 해태 타이거즈)에 이어 리그 사상 첫 ‘부자 타격왕’이라는 금자탑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이정후는 개인이 아닌 5강 경쟁 중인 팀을 바라보고 있다. “쉬어도 좋다”고 한 크로닌 감독의 말을 거절한 윌리엄스처럼 그가 선택한 것도 ‘정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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