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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똑똑해졌지만, 현명해지진 못했다”

중앙일보

입력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라틴어로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우리 인류는 자신에게 슬기롭다는 이름을 붙인 오만함 때문인지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에 직면했다. 기후위기, 자원고갈, 빈부격차, 민족과 국가 간 갈등 등이 그 실상이다. 따라서 인류는 그대로 멸망을 받아들일 수는 없고, 극복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학교법인 경희학원이 제40회 유엔 세계평화의 날 기념 ‘Peace BAR Festival(이하 PBF)’의 일환으로 네 차례의 시리즈 대담을 개최해 인류사회의 문제와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팬데믹 극복 후 일상은 보통(normal)이 아닌 비정상(abnormal)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이번 대담은 두 번째로 10월 15일(금) 서울캠퍼스 네오르네상스관 네오누리에서 개최됐다. 주제는 ‘무한 성장 신화에 갇힌 호모사피엔스 문명의 운명과 그 전환 가능성’으로 경희대 사회학과 송재룡 교수의 개회사로 시작했다. 행사는 강연과 대담으로 구성됐다.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의 저자인 폴 R. 엘리히(Paul R. Ehrlich)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생명과학부 명예석좌교수가 강연을 맡았다. 강연 이후에는 엘리히 교수와 한국의 대표적 행동생태학자인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가 대담을 나눴다. 행사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했다.

엘리히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의 상승으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류의 방심을 우려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상태, 보통의(normal) 시대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새로운 비정상(abnormal)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면서 “인류 행동 양태의 극적 변화는 극소수에게만 논의되고 있다. 이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라고 했다. 이는 코로나 이후의 삶을 대비하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었다.

엘리히 교수는 전 지구적 문제의 시발점으로 기원전 1만 년 전의 농업혁명을 꼽았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기에는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 체계보다 완벽하고 평등한 체계를 갖고 있었으나, 농업혁명으로 잉여생산이 발생하며 문제가 시작됐다는 해석이었다. 산업혁명은 문제를 심화시켰다. 엘리히 교수는 “인류의 역사를 약 30만 년으로 추정한다면 산업혁명은 고작 300년 전에 시작됐다. 전체 인류 역사의 1%가 전 지구를 바꿨다”면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류의 신체와 문화가 모두 변했다. 인류는 정착했고, 토지를 소유했다. 물질과 권력을 축적하고, 타인에 대한 지배도 나타났다. 욕망과 탐욕이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장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지구를 병들게 하는 암

‘부의 축적과 과시’는 현대인의 단면이기도 하다. 끝없이 출시되는 신제품은 소비자를 유혹한다. 운송 수단의 발전은 지구를 하나의 마을로 만들었다. 더 많은 차량과 항공기가 필요하다. 더 많은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서 성장이 강조되는 국면에 이르렀다. 엘리히 교수는 “성장은 정치인의 생각처럼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과학자가 경고해온 성장이 지구의 입장에서는 질병이다. 영속적 성장은 암세포 증식과 같다”라며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결국 인류는 지구상에 악영향을 준다. 현재 인류를 위협하는 현상이 악화하면, 인간 종이 멸종할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국가 성장의 기반 중 하나는 인력이다. 출산율이 감소한 국가의 정치인들은 출산을 장려해 위기 상황을 대비하려 한다. 하지만 엘리히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우리는 유전적으로 진화할 새도 없이 수렵과 채집을 하던 인류에서 SNS로 연결된 세계로 변화했다. 그 파급효과는 끔찍하다. 기후변화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이어 “기후변화는 궁극적으로 농업을 위협한다. 안정적 기후환경이 우리의 농업을 가능하게 했다”라며 “인간은 생물 다양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기후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면 식물, 동물, 미생물이 생존할 수 없고, 인류도 생존할 수 없다. 우리의 실천적 활동이 시급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엘리히 교수가 기후변화와 함께 언급한 실존적 위협은 ‘토양 오염’ ‘물 부족’ ‘일부 인류의 영양부족’ ‘핵전쟁 위기’ 등이다. 인류가 개발한 화학물질이 토양을 오염시켜 생물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 우리는 지하수가 고일 시간도 없이 물을 쓰고, 지력이 회복될 사이에도 토양을 훼손하고 있다. 이로 인해 80억 명의 인류 중 약 20억 명의 영양이 부족한 실정이다. 음식물 쓰레기가 넘치지만, 지구 한 편에는 필요영양소도 채우지 못하는 많은 이웃이 있다. 엘리히 교수는 핵전쟁도 눈앞에 있으나 깨닫지 못하는 위협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국가 간 갈등은 전쟁과 핵 사용으로 인류를 절멸의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

인류를 위협하는 다양한 위기의 해결책은 인간 문명의 변화이다. 엘리히 교수는 “먼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고 평등한 권리와 권한을 가져야 한다.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고, 피임과 낙태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국가의 지도자가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면서 “소비의 증가도 억제해야 한다. 개인이 더 많은 것을 소비하려 하는데, 이는 인간 문명이 종말에 이를 수밖에 없는 길이다”라고 강변했다. 이어 “지구상에 인구는 이미 충분하다. 비옥한 땅과 인구 간의 비율이 악화되고 있는데,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 비옥한 땅이 황폐화될 것이다”라며 “지금이야말로 대대적 조치가 필요하다. 아직 국제적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라며 강연을 마쳤다.


“선진국의 저출산은 지구에는 좋은 소식, 후손을 위해 인구 조절해야”

강연 이후 이어진 대담은 최재천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최 교수는 엘리히 교수가 출간했던 〈인구 폭탄〉에 관한 질문으로 대담을 시작했다. 1968년 출간된 이 저작은 인구 증가로 자원이 고갈되고 전 세계에 재앙이 닥치리라는 점을 경고했다. 당시에 엘리히 교수는 “인류를 먹이려는 고군분투는 끝났다. 지금 당장 어떤 단기 집중 프로그램을 착수하든 간에 1970년대에 수억 명이 굶어 죽을 것이다. 이미 너무 늦었기에 세계 사망률이 치솟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전망했었다. 최 교수는 이런 주장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엘리히 교수에게 답변을 요청했다.

엘리히 교수는 “인구수가 많다는 주장이 일반적 서구 사고와 맞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구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피임약을 사용하거나 낙태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구가 과잉되면 낙태할 수 있다는 의견으로 받아들여져 비판받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너무 많으면, 어떤 특정 인간을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부류가 있었다”라며 당시의 논쟁을 설명했다. 그는 “이런 오해는 인종차별적인 언급으로 이어졌다. 명확하게 말하면, 이 저작의 주장은 ‘인구를 점진적으로 줄이자’이지 ‘특정 인종을 줄이자’는 주장이 아니다”라고 되짚었다.

최재천 교수는 저출산을 다루는 정치 영역의 관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여러 선진국은 저출산 때문에 국가적 고민이 크다. 하지만 도발적으로 이야기하면 저출산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명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 아닐까 싶다”면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은 일종의 성장 패러독스에 빠진 양태로 보인다”며 답변을 요청했다.

엘리히 교수의 답변은 명쾌했다. 그는 최 교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서구 선진국의 저출산은 전 지구에 좋은 소식이다”라며 “실존적 위협의 대부분은 과잉 소비로 인해 발생하고, 특히 서구 선진국의 과잉 소비가 문제다. 부강한 국가가 출산율을 계속 낮춰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스스로 출산율을 낮춰 소수의 후손에게 최고의 삶을 안겨주지 않으면 자연이 이를 스스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과잉된 인구의 과잉 소비가 전 지구적 문제의 시작
두 명의 대담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선명했다. 과잉된 인구의 과잉 소비가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기후위기 같은 전 지구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생각이었다. 엘리히 교수는 ‘인종차별’도 농업혁명 이후에 생겨난 문제라며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유전적으로 너무나 비슷해 인종차별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엘리히 교수는 “인류의 진화 과정을 보면, 우리는 똑똑해졌지만 현명해지진 못했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 태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면서 “많은 미국인이 ‘미국이 위대한 국가다’ ‘미국인은 훌륭한 국민이다’라고 자평하는데, 이에 동의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똑같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경쟁에 치중해 너무 많은 돈을 낭비하며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최재천 교수는 엘리히 교수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오래전부터 우리의 학명을 호모심비우스(Homo Symbious)로 바꾸자고 해왔다. ‘공생인(共生人)’인데 손잡고 같이 사는 생물로 거듭나자는 의미였다”라고 했다.

대담은 전 지구의 최대 화두 중 하나인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에 관한 대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두 대담자는 바이러스 창궐이 기후변화로 인한 종 다양성의 파괴와 연관됐다는 논지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최재천 교수는 올해 초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이 학계에 발표한 논문 내용을 소개했다. 지난 100년간 열대지방에 살던 박쥐들이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오른 온대지방으로 서식지를 넓혔고, 온·아열대 지방에 박쥐의 주요 서식지가 생겼다는 연구였다. 주요 서식지 중 한 군데가 중국 남부지역이었고, 지난 100년 동안 40종의 열대 박쥐가 유입됐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최 교수는 “박쥐 한 종이 대개 코로나 바이러스를 두 세종 갖고 있으니 약 100개에 가까운 바이러스가 중국 남부로 유입됐다”라고 소개했다.

인간의 무모한 자원 개발과 남용으로 지구온난화가 촉발됐고, 야생 동물의 서식지가 옮겨져 인간과 야생 동물의 서식지가 겹치게 됐다. 결국, 인류가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 제공자인 셈이다. 두 대담자가 이런 부분을 공히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후의 상승보다 생물 다양성의 고갈이 어쩌면 더 직접적이고 위협적이며, 우리를 곧장 위험에 빠뜨리는 문제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엘리히 교수는 “생물 다양성은 더 큰 시스템의 일부다. 한 예로 설치류는 다양한 종류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전파하는데, 설치류의 증가는 수인성 전염병이 인간에게 확산할 가능성을 높인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될수록 바이러스의 전파도 늘어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지구적 문제의 해결 방안은 교육과 정치의 전환

대담은 지구적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마무리됐다. 엘리히 교수는 교육과 정치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팬데믹을 겪으며 놀란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교육자와 정치인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인데, 인류의 폭발적 성장이 장밋빛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서 “과학에 대한 이해도 너무나 부족하다. 과학의 효능과 필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지도자와 정치인의 관심이 너무 부족한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협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교육의 변화로는 실천 활동을 위한 교육을 언급했다. 엘리히 교수는 “우리 모두 위대한 비정부단체가 돼야 한다. 개개인이 최선을 다해 교육받아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을 취할지 배우는 교육이다”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영화 〈곡성〉의 대사를 인용해 설명했다. 최 교수는 “‘뭣이 중한디’라는 대사가 있었다. 학교에서 우리가 가르치던 지식보다 인류가 어떻게 지구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를 함께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시점이라 생각한다”라며 대담을 마무리했다.

학교법인 경희학원은 앞으로도 두 번의 대담과 마무리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세 번째 대담은 오는 10월 29일(금)에 개최된다. 아비 로브(Avi Loeb) 하버드대 천문학과 교수와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과 교수가 ‘외계 지적 생명체의 태양계 방문, 지구(인)의 정체와 운명을 다시 쓰게 될 것인가’를 다룬다. 근대 인간 지식의 체계와 이를 만들어온 우주관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 지식을 탐색하는 자리다. 11월 26일(금)에는 한스 요하임 쉘른후버(Hans Joachim Schellnhuber)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초대 소장과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미래인간과학스쿨 특임교수가 ‘기후변화 시대, 우리의 생존은 어떻게 가능할까’를 주제로 대담한다. 기후재앙 시나리오를 극복할 방안과 미래 지구를 위한 일을 논의할 것이다.

12월에는 대담의 마무리로 ‘전환문명의 전위,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다룬다. 이전 대담의 내용들을 정리하고 ‘세계시민사회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전환’을 요구할 예정이다. 전 지구적 문제 해결에 시민사회와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희학원은 인류문명이 마주한 긴급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환문명의 방향성을 재설계하고, 미래 인류사회 건설을 위한 지구적 거버넌스 창출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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