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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면 어떤 의혹도 무마됐다, 李·尹이 몰고온 사생결단 대선

중앙일보

입력

“어차피 사생결단(死生決斷)이다. ‘이겨야 살고, 지면 죽는다’는 걸 모두 알고 하는 싸움이다.”

정부 관계자가 20일 불쑥 이런 애기를 했다. 여야의 유력 주자들 관련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 대선 정국에 대한 관전평이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 질의 도중 피켓을 들어 보이자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 질의 도중 피켓을 들어 보이자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그는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찰은 역대 대선에서 유력주자와 관련한 사건의 명확한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며 “이재명 후보 관련 대장동 수사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고발사주ㆍ처가 관련 의혹 등도 결론 없는 상태에서 ‘진흙탕 대선’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한 재선 의원도 “어차피 의혹을 안고 가는 싸움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상대방 흠집내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이번 대선은 최선(最善)이나 차선(次善)도 아닌 차악(次惡)을 택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선거가 끝나면 수사의 칼날이 패배한 쪽을 향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대구 수성구 대구MBC에서 열리는 대구·경북 합동토론회에 참석하며 응원 나온 지지자들과 인사 나누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대구 수성구 대구MBC에서 열리는 대구·경북 합동토론회에 참석하며 응원 나온 지지자들과 인사 나누고 있다. 뉴스1

실제 역대 대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92년엔 여권 인사들이 초원복국에서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모의했다는 도청 녹취록이 공개됐다. 선거 전까지 침묵했던 검찰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관련자를 불구속 기소하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1997년엔 ‘김대중 후보가 처조카를 통해 비자금을 관리한다’는 의혹이 일었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수사를 대선 이후로 공식 유보시켰고, 김대중 정부 출범 뒤 발표된 수사의 결과는 무혐의였다.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선 각각 이명박 후보의 BBK의혹과 국정원의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일었다.

검찰은 2007년 대선 14일 전 BBK의혹에 대한 관련 증거부족으로 이명박(MB) 후보를 불기소했다. 2012년엔 대선을 사흘 전 국정원 사건에 대한 경찰의 무혐의 결론이 발표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여야가 바뀌자 반전이 생겼다. 2018년 대법원은 2012년 대선과정에서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대선 개입을 인정했고, 2020년엔 BBK의혹과 관련해 MB가 다스의 실소유주로 252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정치권에서 “선거에서 지면 죽는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도 이러한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현재 유력후보의 상황을 보면 여야 모두 비전이나 정책 대결이 아니라 서로가 살기 위해 상대의 흠을 들추는 죽기살기식 대선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데 이러한 사생결단 선거의 결과는 상대진영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지거나 협치 실종으로 대표되는 정치퇴행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8일 오후 6시15분 부산 부산진구 서면 NC백화점 앞에서 '대장동 게이트 더불어민주당 특검 수용 촉구' 1인 도보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8일 오후 6시15분 부산 부산진구 서면 NC백화점 앞에서 '대장동 게이트 더불어민주당 특검 수용 촉구' 1인 도보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미 “내가 대통령 되면 화천대유의 주인은 감옥 갈 것”(윤 전 총장), “구속될 사람은 윤 전 총장”(이 후보)이라며 서로를 ‘구속될 사람’으로 지칭하는 거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경선후보인 홍준표 전 대표도 “내가 야당 후보가 되면 둘다 감옥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20일 페이스북)며 두사람을 동시에 겨냥한 ‘구속 논쟁’에 가세했다.

'목숨'을 건 상호 비방이 과열되는 사이 후보들의 비호감도만 급상승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9월 조사에서 이 후보와 윤 전 총장의 비호감도는 지난 3월에 비해 각각 15%포인트(43→58%)와 13%포인트(47→60%) 상승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고발사주 진상규명 TF 소속 의원들이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 씨와 김웅 의원의 통화 녹취록 내용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검찰과 국민의힘 모두 국기문란 수준의 위중한 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고발사주 진상규명 TF 소속 의원들이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 씨와 김웅 의원의 통화 녹취록 내용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검찰과 국민의힘 모두 국기문란 수준의 위중한 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현동 기자

이에 대해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유력후보들이 수사 대상이 올라있고,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압도하는 극히 이례적 대선”이라며 “후보 확정 직후 지지율 급상승으로 이어졌던 컨벤션 효과마저 나타나지 않은 배경도 유권자들은 이미 이번 선거를 중도층을 향한 확장 대결이 아닌 극단적 진영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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