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내 탓이 아니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지난 14일 기획재정부는 보도참고자료 하나를 냈다. 전날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연구결과를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한경연은 통계청 자료를 근거로 30대와 40대 일자리가 지난 5년간 연평균 1.5% 줄었고, 이들 세대 고용률은 지난해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30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짚었다. “취약계층인 청년층이나 노년층 대상 일자리 정책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외면 받는 3040 실업자를 위한 직업교육·훈련도 강화해야 한다” “30~40대가 가장 많이 종사하는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도록 기업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웠는데 고용은 바닥인 현실이라, 정부로선 아플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랏돈을 퍼부어 만든 노년·청년 일자리는 ‘풀 뽑기’ ‘디지털 시대 인형 눈알 붙이기’라고 조롱받는 때이니만큼 더 그렇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 플러스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뉴시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 플러스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뉴시스]

보통 정부부처 반박자료는 한두 쪽 분량에 그친다. 이번 기재부 자료는 달랐다. 4쪽 길이에 각종 통계자료까지 곁들여 풍성했다. 한경연의 비판을 기재부는 다른 각도의 분석을 통해 반박했다. 성별 분류를 통해서다. 기재부는 “지난해 기준 남성의 고용률은 89%로 OECD 평균보다 높은 반면, 여성 고용률은 62.7%로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재부는 한경연을 향해 한 방을 날렸다. “20대 여성 고용률은 남성보다 높지만, 30대 이후 출산 및 육아, 기업의 관행 등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며 조기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적 문제가 지속하고 있다”며 “일자리의 양과 질 개선은 단순히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므로, 고용의 주체인 기업에서도 경력 단절 방지, 신속한 노동시장 복귀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함께 노력해 주시길 요청드린다”고 했다.

한경연은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연구기관이다. 결국 기재부 반박의 요지는 정부 정책 탓만 하지 말고 여성 경력 단절 없게 기업부터 잘하라는 얘기다. 이런 한심한 ‘티키타카’를 보고 있자니 황희 정승이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한국의 고용시장은 클라우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주목한 탐욕스런 일자리(Greedy work) 그 자체다. 더 많이 더 오래 근무해야 한다고 몰아치는 현실 아래에서 전체 일자리가 줄면 고용 약자(여성·청년·노인)부터 타격을 입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일자리 문이 점점 좁아지는 가운데 모두가 밥벌이의 무서움과 고군분투 중이다. 별다른 대책이나 변화 없이 네 탓 공방에 한창인 이들 모습이 더 씁쓸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