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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94) 고백하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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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고백하노니
-성춘복 (1936-)

너와 나
나뉘어서
멀리를 바라본들

다음의
둘보다야
더 잘게 쪼개어져

우리 둘
지쳐간 이승
강물로 합치려나.

-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시인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

부부란 한 곳을 바라보고 함께 가는 사람이다. 이 동행은 이승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침내 강물로 합쳐질 운명의 동행이 부부라고 하겠다.

성춘복 시인은 1959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한 이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지내며 문단의 중심을 지켜온 분이다. 1971년 천상병 시인이 실종됐을 때, 선생은 동료 문인들과 함께 『새』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천 시인이 부디 살아 있기를 바라는 기원의 시집이었다.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어 심신장애를 겪고 있던 동료를 위해 시집은 사육배판 초호화 장정으로 꾸며졌다.

이 시집 발간이 보도됨으로써 무연고자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천 시인이 발견됐다. 성 시인은 십시일반 모금을 하여 병원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그때까지 천상병은 평론가로 더 알려져 있어 시집 『새』의 발간으로 많은 시를 쓴 것을 알게 됐다고 허영자 시인은 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