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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죄니 자영업자 대출 급증…커지는 ‘수면밑 뇌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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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자영업자 대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 8월 말을 기준으로 금융권의 개인사업자 대출액은 610조9902억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오가는 사람이 적어 한산한 모습. [뉴스1]

자영업자 대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 8월 말을 기준으로 금융권의 개인사업자 대출액은 610조9902억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오가는 사람이 적어 한산한 모습. [뉴스1]

김모(49)씨는 대전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상호저축은행과 캐피탈회사 등에서 1500만원을 빌렸다. 지난해 은행에서 5000만원을 대출받은 김씨는 은행에서 추가로 돈을 빌리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다 보니 신용점수가 떨어졌다. 이젠 갈 곳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자영업자 대출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나이스평가정보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을 기준으로 금융권의 개인사업자 대출액은 610조9902억원이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54조1314억원(9.7%), 지난 6월 말과 비교하면 15조4045억원(2.6%) 증가했다.

개인사업자 기업 대출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개인사업자 기업 대출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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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의) 가계대출 문턱이 갑자기 높아지다 보니 자영업자들이 개인사업자 대출의 문을 다시 두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이 쉬운 곳(개인사업자 대출)으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개인사업자 대출이 불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특히 은행에 비해 대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을 찾는 자영업자들이 적지 않다. 자영업자 가운데 다중채무자도 빠르게 늘면서 대출의 질이 나빠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금융계에서 나온다.

나이스평가정보의 지난 8월과 지난해 말 개인사업자 대출액을 비교하면 은행은 27조7204억원(6.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제2금융권의 개인사업자 대출액은 26조4109억원(16.8%) 늘었다. 제2금융권의 대출 증가율이 은행보다 훨씬 높았다는 의미다.

업권별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업권별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제2금융권 중에선 상호저축은행의 대출 증가율(22.8%)이 가장 높았다. 지역 농·수협,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14.8%)과 신용카드·캐피탈회사(15.3%)에서도 개인사업자 대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대부업체(16.5%)를 찾는 자영업자들도 크게 늘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가계대출의) 총량 규제를 하다 보면 (자영업자들은) 결국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 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들도 많아졌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을 기준으로 자영업자 가운데 다중채무자는 140만6000명이었다. 이들이 금융회사에 빌린 돈은 589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다중채무자는 26.7%(29만7000명), 이들의 채무액은 23.7%(113조3000억원) 늘었다.

소득이 일정한 급여생활자에 비해 자영업자 대출은 부실 위험은 크다. 나이스평가정보의 지난 5월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 다중채무자의 잠재부실률은 15.9%였다. 임금근로자(5.7%)와 비교해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금융권에선 자영업자의 이자 상환 유예와 대출 만기 연장 등 금융지원 조치를 종료하는 내년 3월 말이 고비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지원 조치로 가려져 있는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이 한 번에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 교수는 “자영업자 부채의 연착륙을 위해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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